등록 : 2005.12.20 19:37
수정 : 2006.01.0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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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꿈꾸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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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대부분 단체 보호시설로 보내져…소년소녀 가정 5천여명
부모 있어도 방치·학대받는 어린이 상당수 통계 안잡혀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 제1조는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따뜻한 가정을 잃은 아이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민호(7·가명)와 민희(6·가명)는 지난 11월 초 아버지의 손에 끌려 한 지역 아동복지센터로 왔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는 아이들을 혼자 돌볼 수 없었다. 가끔은 지방까지 가서 일을 해야 했다. 희연(8·가명)이도 지역 아동복지센터에 머물고 있다.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가 맡아 키웠지만, 식당일 등 닥치는대로 일감을 찾아야하는 어머니는 희연이를 키울 수 없었다. 희연이는 11월 중순 지역 아동복지센터에 임시로 넘겨졌다. 아이들은 모두 어린이 보호시설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
보호자가 없거나 키울 능력이 없는 18살 미만 어린이를 가리키는 ‘요보호아동’은 한해 평균 1만명 정도가 발생하고 있다. 2003년은 1만222명, 2004년은 9393명이 발생했다. 올해는 지난 6월 말까지 4706명이 발생했다. 발생 원인별로 보면, 빈곤 및 실직 등이 55%(2608명)로 가장 많고, 미혼모아(29%, 1388명), 비행·가출·부랑(9%, 414명), 버려진 아이(6%, 269명), 미아(1%, 27명) 등의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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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보호 아동’ 발생 현황, ‘요보호 아동’ 보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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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은 부모 품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단체생활을 하는 보호시설 등으로 보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요보호아동에 대한 조처는 시설보호가 45%(2109명)로 가장 많다. 이처럼 시설보호가 많다보니 2004년 말 현재 279개 아동복지시설에서 1만9014명이 보호받고 있다. 조부모, 친인척 등에 의한 가정위탁은 35%(1667명)이며, 14%(653명)가 입양됐고, 6%(277명)는 소년소녀가정으로 남았다. 2004년 말 현재, 모두 5444명이 소년소녀 가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보건복지부 통계에 잡힌 아이들만 보여준다. 부모가 있지만 사실상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경우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방임 및 신체학대 등의 수준이 심각해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에 집계된 어린이만 지난 한해동안 3891명에 이르렀다. 학대 유형별로는 방임(35.1%), 정서학대 (29.2%), 신체학대(27.5%)의 순이었다. 피해 어린이는 10~12살이 24.3%로 제일 많았다.
지난 11월 비닐 하우스에서 개에게 참혹하게 물려 숨진 어린이(9)는 부모가 돌봐주는 따뜻한 가정이 해체된 뒤 ‘방임’된 어린이의 극단적 사례다. 숨진 어린이의 부모는 이혼했고, 아이는 외조부모가 주말에 들러 밥을 해주면 그걸 1주일 내내 나눠 먹었다.
인준경 서울아동복지센터 보호팀장은 “친척이나 주위에 맡아줄 사람을 찾다가 없어서 마지막에 우리한테 오는 경우가 많다”며 “무너진 가정의 밑바닥에는 빈곤이 있다보니, 센터에 맡겨진 아이 가운데 원래 부모한테 돌아가는 경우는 10명 가운데 1명도 안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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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와 닷새를 겪어보니 엄마 손 잡은 또래 ‘물끄러미’
70대 할아버지로는 역부족… 응석 받아줄 ‘사랑의 품’ 절실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작았지만, 먹고 자는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하고 있었다. 동사무소는 정부 양곡을 배달해줬고, 복지관은 1주일에 두번 아이들에게 바나나, ‘핫도그’, 순두부, 소시지, 순두부, 오징어젓 등을 건네줬다. 한달에 한번 종교인들이 찾아올 때면 아이들은 고기도 먹었다. 동사무소는 아이들 집에 김치 냉장고도 놓아줬다.
그러나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처럼, 응석을 부릴 엄마와 아빠의 품이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오늘 뭐 배웠어?”라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엄마는 없었다. 아이들은 문구점에 필통을 사러갔다가,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또래 아이들을 바라봐야 했다. 연희가 따돌림 당한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어린 동생 민우뿐이었다.
아이들은 좀체 엄마 아빠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아이가 쓴 수기에는 엄마 아빠의 사랑이 얼마나 그리운지 배어났다. 할아버지는 최선을 다했지만, 엄마와 아빠의 따스한 품과 세심한 배려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도 이제 보호받아야 할 70대 노인이다. 결국 문제는 상처받는 아이들의 정서였다. 사춘기로 접어드는 연희가 걱정스러웠다.
전국적으로 연희네와 같은 ‘조손가정’은 4만5천여가구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는 서류상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안전망에도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경제적 후원을 받아 생계를 해결하더라도 부모가 돌봐주는 아이들에 비하면 궁색한 생활을 면할 수는 없다.
더구나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 아빠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점을 안고 살아간다. 유미숙 숙명여대 교수(아동복지학)는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먹고 자는 기본적 생존의 문제조차 해결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연희네의 경우도 할아버지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복지관, 학교 등이 제공하면서 아이를 사회에서 같이 키워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혜련 숭실대 교수(사회사업학)는 “빈곤하고 해체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양육자의 부재를 채워주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아동보호 프로그램이 지원돼야 한다”며 “여기에는 단순한 보호나 학습지도뿐 아니라 준비물 챙겨주기, 등하교 지도, 식사 제공, 병원 진료, 문화생활 지원 등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모든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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