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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3 20:31 수정 : 2005.12.13 20:31

서울고법 판결 “히로뽕 성분 나와 책임 70%로”

경찰이 절도 혐의로 잡힌 피의자에 대해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도 방치하는 바람에 숨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서울고법 민사21부(재판장 이동명)는 유치장에서 숨진 정아무개(당시 23)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에게 위자료 등 1억6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정씨는 2003년 6월1일 오후 인천 남구의 한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와 라이터를 빼앗고 이어 근처 길가에서 행인의 지갑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혀 인천 중부경찰서로 연행됐다. 정씨는 2일 오후까지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로또” “월드컵”이라는 혼자말을 하고 만화 주제가와 월드컵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조사 경찰관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기도 했다. 경찰은 정신이상 증세로 판단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이날 오후 검사 지휘를 받아 정씨를 서울 ㅇ병원에 감정유치하는 내용의 ‘감정유치영장’을 발부받은 뒤 이날 밤 유치장에 입감시켰다.

정씨는 유치장에서도 “대한민국과 월드컵이 언제냐”는 등 횡설수설하고 심지어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엽기적인’행동까지 하다 갑자기 탈진 증세를 보였다. 경찰은 정씨를 인근 ㅇ의료원으로 데려갔다. 정씨를 진찰한 ㅇ의료원은 “동공반사가 없고 심각한 탈수현상을 보이는 등 입원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감정유치영장을 신청했기 때문에 내일 입원시켜야 한다”며 안정제 및 포도당 주사만을 투여한 뒤 다시 유치장에 입감했다.

그러나 정씨는 다음날인 3일 오전 7시25분께 희미하게 숨을 쉬며 누운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곧바로 정씨를 119구급차로 인근 ㅇ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정씨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숨졌다.

부검 결과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혈액·위·모발에서 ‘히로뽕’ 등의 약물 성분이 나왔다. 정씨 가족들은 재판 과정에서 “정씨가 평소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씨가 경찰서 인계 당시부터 이상한 징후를 보였고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는데도 경찰이 유치장에 입감한 점, 정씨가 의식을 잃은 뒤에야 발견된 점을 볼 때 경찰이 피의자의 생명·신체 위험을 방지할 의무를 위반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약물복용에 의한 환각과 정신불안도 정씨가 사망에 이르게 한 시점을 앞당기게 했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70%로 제한한다”고 판시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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