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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6 05:01 수정 : 2018.11.06 11:10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 중인 아빠가 유모차를 끌고 나와 카페에서 라테를 마시고, 공원에서 아이와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라테 파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 기자단 제공

독일·스웨덴·네덜란드 가보니

“아이 키우고 싶은 제도 만들자”
저소득층엔 보조금 추가 지급

독일 만 18살까지 매달 25만원
네덜란드 27만원~38만원 아동수당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 중인 아빠가 유모차를 끌고 나와 카페에서 라테를 마시고, 공원에서 아이와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라테 파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 기자단 제공

여섯살 지아(가명)는 2017년 독일에 거주할 때 아동수당으로 매달 192유로(약 25만원)를 받았다. 아빠의 연수차 1년 동안 독일에 머물렀던 지아네 가족은 이민자도, 시민권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아와 동생, 두 아이의 아동수당 384유로(약 50만원)는 매달 꼬박꼬박 나왔다. 이 돈으로 지아의 유치원 수영, 발레 강습료를 내고, 자전거와 학용품도 샀다. 킨더겔트(Kindergeld)라는 독일의 아동수당 제도 덕분이었다.

독일에 거주하는 모든 양육자는 아동수당을 지급받을 ‘권리’가 있다. 아이가 만 18살이 되기 전까지 기본 지급되고, 학생이거나 직업훈련을 받는 중이면 만 25살까지 연장된다. 2018년 현재 두 자녀까지는 자녀 1명당 월 194유로(2018년 기준), 셋째 자녀는 200유로, 넷째부터는 225유로(약 29만원)로 금액이 늘어난다. 부모의 소득·자산과는 상관없다. 다만 저소득층의 경우엔, 170유로(약 22만원)의 추가 아동수당이 지급된다.

최근 국회에서 아동수당이 쟁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자유한국당은 만 6살 미만인 모든 아동에게 월 10만원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넘어, 초등학교 6학년(만 12살)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자고 나섰다. 중학생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자는 ‘청소년 내일 수당’까지 합치면, 만 15살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자는 파격 제안이다.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가 이미 모든 아동에게 성인이 될 때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한겨레>는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사회보장제도 연수 과정 중 아동수당 제도를 담당하는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의 정부 관계자 등을 만났다. 이들 세 나라는 모든 아동에게 만 16~25살이 될 때까지 적게는 월 13만원에서 많게는 38만원을 지급한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아동수당은 자유한국당의 주장과는 결이 달랐다. 아동수당 등의 정책을 설명하면서 이들은 ‘저출산 극복’을 내세우기보다 ‘아이를 키우고 싶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제도와 사회적 인식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왕의 자녀에게도 아동수당을 줘야 하냐는 논쟁이 있었다.” 지난 10월16일 만난 스웨덴 사회보험청 가족경제과의 니클라스 뢰프그렌 대변인이 말했다. 1948년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해 ‘보편 복지’의 틀을 일찌감치 갖춘 스웨덴에서도 ‘선별 복지’ 논란은 있었다. 하지만 ‘선별 지급’은 없었다. 만 16살 미만의 아이를 키우며 스웨덴에 거주하는 부모는 월 100유로(약 13만원)의 아동수당을 받는다. 자녀수가 늘어날 때마다 금액이 400유로(약 52만원) 이상까지 늘어난다. 뢰프그렌은 “아동수당만으로 아이를 키우기 곤란한 저소득층에게는 ‘아동수당 보조금’을 추가로 준다”며 “아동소득의 재원은 소득세로 충당된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의 합계 출산율은 1.85명(2016년 기준)으로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높다. “스웨덴 정부는 직접적인 출산율 제고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펴지 않았다.” 군나르 안데르손 스톡홀름대학교 교수(인구통계학과)는 “일-가정 양립 정책이나 양성평등 정책이 오히려 더 큰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여성 고용률은 80%가 넘고, 아빠 육아휴직 참여율도 25%에 이른다. 1970년대까지 여성을 노동시장에 붙잡아두는 정책이 중심이었다면, 1990년대부터는 ‘육아의 공동책임’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간 덕분이다. ‘육아휴직 남성할당제’와 최대 480일까지 가능한 육아휴직이 대표적이다. 스웨덴의 거리에서는 육아휴직 중인 아빠가 유모차를 끌고 나와 카페에서 라테를 마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라테 파파’다.

지난해 11월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오이시디(OECD) 국가의 아동수당 제도가 출산율에 미치는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아동수당의 비중을 1% 증가시키면 출산율이 저조한 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03%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아동수당보다 출산율을 높이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여성 고용률 상승, ‘일-가정 양립’을 나타내는 모성보호 휴가기간 확대 등이었다. 아동수당처럼 ‘현금’만 지원해준다고 사람들이 당장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양성평등·사회보장 정책이 패키지로 제공될 때라야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 사회’라는 믿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실제로 프랑스, 스웨덴과 같이 출산율이 높은 나라들은 아동수당뿐만 아니라 보육·교육·의료서비스 등 ‘더 나은 삶’을 위한 전방위적인 정부의 지원이 뒤따른다.

“저출산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즉 일-가정 양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독일 연방정부의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에서 인구변화 관련 부서를 총괄하는 스벤올라프 옵스트 박사는 보육서비스와 같은 구조,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 일하는 여성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지난 10월19일 만난 기자에게 말했다.

아동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는 네덜란드에서는 국가아동수당법에 따라 18살 미만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6살 이하는 202유로(약 27만원), 6~12살 245유로(약 33만원), 12~18살은 288유로(약 38만원)를 받는다. 네덜란드 노인연금과 아동수당 등을 총괄하는 사회보험은행의 빔 베르벤 전략·대외관계 담당 매니저는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소득·자산조사 등을 거쳐 추가로 아동부조를 지급한다”고 소개했다. 네덜란드는 외국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도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지난달 16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의 한 카페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빠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 기자단 제공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05명(2017년 기준)이다. 올해는 1.0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관련 법안과 예산을 초당적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한 배경이다. 2006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처음 나온 뒤 역대 정부는 지난 11년간 총 126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출산율 하락세를 멈추지는 못했다. 오히려 출산율 높이기에만 급급해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삼는다는 역풍까지 맞았다.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하려는 보편적 아동수당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책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유럽의 경험을 나침반 삼아,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겠다. 유럽에서 아동수당은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저출산 극복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 아니었다. 아동수당은 다른 양성평등 또는 사회보장 정책과 결합해야 비로소 ‘묘약’이 될 수 있다. 아동수당의 진짜 목적은 저출산 극복이 아니다. 아동의 권리 보장과 복지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아동수당법 제1조)이다.

암스테르담 베를린 스톡홀름/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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