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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0 15:29 수정 : 2018.01.12 11:28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용주 진실의힘 재단 이사(의사, 아나파의원장). 강 씨는 5공화국 정권의 대표적인 고문 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4년을 복역한 뒤 1999년 출소 이후 보안관찰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벌여 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최연소 비전향장기수’ 강용주 진실의힘 재단 이사
“안유 당시 보안계장, 1992년 전향 강요한 고문가해자”
“영화 ‘1987’서 미화…‘훈장 주자’ 주장 말도 안 돼”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용주 진실의힘 재단 이사(의사, 아나파의원장). 강 씨는 5공화국 정권의 대표적인 고문 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4년을 복역한 뒤 1999년 출소 이후 보안관찰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벌여 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1987>을 ‘보이콧’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980년대 국가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리면서 ‘최연소 비전향장기수’가 된 강용주 진실의힘 재단 이사입니다. 영화 속 ‘안 계장’으로 등장하는 안유 전 서울교정청장이 영화 속에서 지나치게 ‘의인’으로 미화됐다는 이유입니다.

안유 전 서울교정청장은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으로 근무할 때 수감되어 있던 당시 이부영 민통련 사무처장(전 국회의원)에게 박종철 열사를 물고문으로 숨지게 한 경찰관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영화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지요. 그런데 강 이사는 왜 안유 전 청장을 비판하고 나섰을까요.

강용주 이사는 1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992년 대구교도소에 수감됐던 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어느 정도 민주화가 진전됐을 때잖아요. 당시 법무부장관이 김기춘이었는데, 교도소에서도 전향을 강요하는 직접적인 폭력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는 때예요. 1992년, 비전향수들이 최초로 사상전향제도가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는 헌법소원을 냈어요. 그랬더니 김기춘 당시 장관은 대전교도소에 모여있던 비전향수, 특히 (저를 포함) 주동적으로 (헌법소원을) 하고 젊은 사람들을 광주, 전주, 대구 등으로 분산 이감 시켰습니다. 제가 대구교도소로 이감을 가자마자 그 사람(안유·당시 대구교도소 보안과장)이 나를 교도소의 ‘중징벌자 수용 완전폐쇄독거실’에 수용했습니다. 중징벌자, 정신이상자, 난동주모자들이 있던 곳이예요. 창문도 없고, 햇빛도 없는 곳이었죠.

‘나는 못 들어간다. 나는 징벌자가 아니다’라고 하니까 그 사람은 나를 꽁꽁 묶어서 집어넣고 개밥(손을 뒤로 묶은 채 입을 대고 밥을 먹게 하는 징벌)을 먹이곤 했어요. 그러면서 ‘야, 강용주, 너 전향해. 그럼 내가 다시 풀어줄테니까. 좋은 데 보내줄게’ 이랬죠. 부당한 처우가 당시 <한겨레> 기고글을 통해 알려지자 박계동 당시 국회의원이 찾아와 면회를 하려고 하는데도 2시간 동안 막았어요. 이야기를 들은 박 전 의원이 ‘당장 방을 옮겨라’라고 요구했는데도, 그 사람은 그 이후로 2주를 더 묶어놓고 있었습니다.”

강 이사는 “전기고문, 물고문만이 고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고문방지협약’을 보면,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또는 국가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 가혹행위를 하는 모든 육체적·정신적·심리적 가혹행위 자체를 고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당시 법무부 지시였다면 다른 광주·전주 교도소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텐데 유독 대구에서 그 사람만 그랬다”라며 “그 사람은 고문 가해자다. ‘적폐청산’의 대상자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 이사의 이런 주장은 1992년 <한겨레> 기사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29일 “사상전향제와 관련해 지난 2월 15일 헌법소원을 낸 강용주씨 등 비전향장기수들이 최근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고 징벌방에 수용되는 등 보복조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1992년 6월 30일 <한겨레> “비전향 장기수 이감 등 보복받아”

특히 이들 가운데 최연소 무기수이며, 헌법소원을 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강용주씨를 대구교도소로 이감하고 공장 일부를 개조한, 창문조차 없는 ‘중징벌자 수용 완전폐쇄독거실’에 수용했다고 한다. (중략)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징벌방에서의 전방을 요구하는 강씨에게 대구교도소 보안과장 안유씨는 “여기에서 전방갈 생각을 하지 말고 전향서를 쓰고 빨리 나갈 생각을 하라”며 전향서를 쓸 것을 강요하고 전방을 아직껏 허가하지 않고 있다.

-1992년 7월 8일 <한겨레> “되살아난 ‘전향공작’ 중단하길”

1992년 7월 8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고글
그는 안유 전 청장에게 “훈장을 주자”고 주장한 이부영 전 의원도 비판했습니다. 이부영 전 의원은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유 전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과의 인연을 소개했습니다. 이 전 의원은 “저는 안유, 한재동 두 사람이 이 사건에 함께 했다는 사실을 25년이 지난 2012년 1월 14일 박종철 군 25주기에 남영동 대공수사단 마당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밝혔다”며 “(당시 함께한 교도관들은) 모두 헌신적인 동지들이었다. 이런 분들에게 그 흔한 훈장 한 개라도 줬으면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강용주 이사는 “(안유 전 청장이) 당시 잘 나가고 유명한 사람들, 민주 인사들한테는 잘해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학생이었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한다”며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 전 청장에게 훈장을 주면 고문 가해자에게 상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습니다.

당시 대전교도소 옥중투쟁위원회 제1기 운영위원장이었던 정치수 이경걸 씨도 이부영 전 의원의 글에 “박종철 사건 당시 그(안유 교도관)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민주인사에 대한 폭압적인 전향공작을 주관했던 이중성도 그의 두 얼굴 중 하나일 것”이라며 “역사는 냉정하게 기록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훈장’을 제안한 이부영 전 의원은 강 이사의 지적에 대해선 “1987년 이후 안유 전 청장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1990년대 초) 시대적인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노태우 정부가 당시 김기춘 법무부장관을 필두로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신공안정국’을 만드는데 나섰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이 여전히 심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전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김기춘과 같은 공안세력에 맞춰서 교도소 안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전향작업이 엄청나게 진행이 됐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당시 교도소가 김기춘 아래에서 몸살을 앓은 건데 그 맥락에서 함께 봐야지 안유 개인이 유달리 ‘악질’라고 볼 수는 없다. 당시 광주·전주·대전·대구 등 교도소에서 모두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보안과장 맡고 있던 사람들은 그런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1987>에서 이부영 전 의원(김의성 분)은 영등포교도소 안 계장에게 박종철열사 고문사건이 은폐·조작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진 영화 <1987> 스틸컷
그렇다면 1987년 영등포교도소 교도관들이 기억하던 안유 전 청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2010년 10월 <월간조선>의 기사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 내부고발자, 23년 만에 밝혀져’에 나온 증언은 이렇습니다.

또 다른 현직 C 교도관은 이런 얘기를 했다.

“안유씨가 그런 정보를 흘렸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현직 교도관들 사이에 반응이 무척 엇갈렸습니다. 놀라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해요. 그럴 분이 아니라 생각했거든요. 현직에 있을 때 이런저런 구설에 오른 적도 있어서 교도관 사이에 평판이 엇갈린다고 할까요? 그러니 놀랄 수밖에요. 철저히 자신을 숨기기 위해 그랬을까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전직 교도관 D씨는 안유씨를 이렇게 평가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다 끌려온 사람에게 반드시 좋게만 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친한 사람 몇몇하고만 대화를 했던 것으로 압니다. 운동을 하다 잡혀 온 대학생들을 혹독하게 다루기도 했어요. 심하게 때리기도 하고 묶기도 하고…. (지금 안유씨가 그런 일을 했다고 하니) 뭐가 진짜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안유 전 청장은 이같은 비판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미화됐다”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답했습니다. (▶관련 기사 : [커버스토리 - 1987 그리고 나]보안계장은 그가 ‘비둘기’인지 몰랐다)

- 영화에서 보안계장의 역할이 미화돼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안유 = “전 의인이 아닙니다. 대학생들은 저를 가리켜 ‘전두환의 주구, 사냥개’라고 했어요. 학생 수형자들은 제 얼굴에 짬밥을 뿌리기도 했죠. 그때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당시엔 수형자들이 고성 등 문제를 일으키면 포승과 수갑을 채우고 입을 막는 방성구를 씌웠어요. 그게 규정이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18년간 삶 옥죈 보안관찰법에 맞서는 #내가 강용주다! <한겨레>, 2017년 5월 12일

[이명수의 충분한 사람] ‘생존자’의 든든한 ‘빽’ <한겨레>, 2013년 12월 19일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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