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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26 16:05 수정 : 2017.10.26 22:05

25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청소년 드림센터’에서 진행자(왼쪽 두번째)를 따라 연극집단치료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가출 청소년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서울 강북 가출 청소년 쉼터 ‘드림센터’ 아이들
여성가족부가 정한 ‘청소년 쉼터 주간’ 맞아 공개
연극치료 중 ”필요 없으니까 버려진 것…내 얘기”
신산한 삶 사는 이들에게 의지할 곳은 쉼터 뿐
“좌절하지 않았으면…가능성·기회 열렸으면

25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청소년 드림센터’에서 진행자(왼쪽 두번째)를 따라 연극집단치료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가출 청소년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필요 없으니까 버린 거겠지”, ”난 쓸 데가 없어…다 썩어문드러졌는데 뭘”.

승규(18·가명)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서너평 남짓한 실내는 아홉명의 관객과 각종 카메라들로 붐볐다. 승규의 배역은 바다 속 ‘미역’이다. 미역은, 바다에 버려진 나무궤짝이 육지의 주인에게 돌아가도록 돕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상대역인 궤짝이 할 법한 대사를 승규가 했다. 버려진 궤짝을 보며 승규는 순간 자신을 ‘온 몸이 썩어 문드러져 물고기 밥조차 되지 못하는, 쓸모 없는 해조류’로 상상했다. 한 달 전 대전 집을 나온 승규는 어색한 연극이 끝난 뒤 “내 얘기인 셈”이라 했다. 승규는 “집을 나간 엄마를 나무라는 할머니가 못마땅했고, 할머니만 두둔하며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가 지긋지긋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가출 청소년(9~24살)을 일시 보호하는 ‘서울시립 강북청소년 드림센터’에서 승규는 25일 이틀째를 맞았다. 친구나 아는 형들을 따라 대전·전주·수원·천안·인천을 거쳐 온 승규는, 자신보다 먼저 집을 나온 한 친구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성가족부가 정한 ‘청소년 쉼터 주간’을 맞아 <한겨레>를 비롯해 두 곳의 방송사가 찾아간 이날 센터엔, 승규 말고도 3명의 가출 청소년들이 머물고 있었다. 모두 18~23살의 ‘후기 청소년’이었다.

센터는 대로변에서 벗어난 주택가 4층 건물이었다. 1층엔 지역주민들과 함께 이용하는 카페가, 2층엔 가출 청소년들의 숙소와 부엌이, 3층엔 10명의 상근자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4층 다목적홀에선 연극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2015년 6월 서울시 땅에 포스코 나눔재단이 지어 총신대학교가 위탁받아 운영 중이며, 남자 청소년 최대 10명을 일시(최대 7일) 보호한다. 찾아오는 아이들은 서류를 작성하고 상담을 받은 뒤, 매일 1~2개씩 이뤄지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돌아갈 가정이 있다면 가족과 연락해 상담하고, 그렇지 않으면 중장기 쉼터나 자립지원기관을 소개해 인도한다. 이날 기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연극집단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피자와 치킨을 시켜놓고 얘기를 나눴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말문을 튼 아이들의 삶은 신산했다. 목에 문신을 두르고 얼굴 피어싱을 한 주형이(19·가명)는 엄마가 어린 나이에 자신을 낳았다. 친척에게 맡겨져 자랐고, 각종 문제행동이 범죄수준으로 비화하자 지리산 청학동에 보내졌다가 2년 전 결국 집을 나왔다. 정환이(23·가명)는 지적장애 3급이다. 말이 어눌하고 의사소통이 또렷치 않다. 이혼 한 엄마 아래 자랐으나 20살이 넘자 버림받았다. 엄마는 정환이한테 ‘집을 나가줬으면 좋겠다, 이사할 거다’라고 했다. 2년 전부터 정환이는 보호소들을 전전하며 강남의 클럽에서 잔심부름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들에게 당장 믿고 의지할 곳은 보호소 뿐이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25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청소년 드림센터’에서 진행된 연극집단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중 한 가출 청소년이 피곤한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집보다 여기가 편해요. 밖에서 안 떨고 잘 수 있잖아요.” 승규가 먼저 답했다. “나도 그래. 그래도 난 놀이터 정자에서도 잘 자.” 카드를 분실했다고 하거나, 화장실 핑계를 대는 등의 지하철 무임승차 노하우(?)를 늘어놓으며 정환이가 말했다. “그래도 집이 최고지.” 내내 입을 닫고 있던 주형이도 거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연락만 안 끊겼으면 돌아갈 수 있는데. 쉼터가 편하긴한데… (쉼터 선생님들이) 다 봐주진 못하잖아요. 집이 그리워요.” 엄마에게 버려진 정환이가 말했다. 승규는 ‘언제 대전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냐’는 물음에 “나중에 돈을 벌고, 집 마련하고, 명절 같은 때 한 번 가서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그러고 싶다”고 답했다. 표정이 진지했다.

25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청소년 드림센터’에서 진행된 연극집단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중 한 가출 청소년이 연극에서 보여줄 본인의 상황을 종이 위에 적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16년 여성가족부 자료를 보면, 최근 1년 사이 가출한 청소년은 2.7%였다. 청소년 인구 925만명 가운데 25만명이 가출을 한다. 청소년 가출은 1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점차 횟수도 늘고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만큼 범죄에 노출되거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런 쉼터의 필요가 더 긴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호시설을 아는 청소년은 47%에 그친다. 이용 경험이 있는 청소년도 9%에 불과했다. 정부는 현재 123곳인 전국 쉼터를 내년 7곳 더 늘리기로 했다. 강북청소년 드림센터의 배진성 팀장은 “아이들이 지금 처해진 환경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가능성과 기회가 많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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