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16 17:39
수정 : 2017.01.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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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폭력과 ‘관심병사’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 연상호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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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잡는 해병대…‘악기바리’ 폭력 대물림
인권위, 작년 취식강요 사건 조사결과
강제로 음식 먹이며 성추행까지
목표체중 정해 도달할 때까지 먹여
“피해자가 가해자로…군폭력 속성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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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폭력과 ‘관심병사’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 연상호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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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해병대에 입대한 ㅂ(21)씨는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7기수 후임병 ㄹ(21)씨가 ㅂ씨를 상대로 낸 진정 사건이었다. ㅂ씨가 목표 체중을 정해놓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음식을 강제로 먹였다고 ㄹ씨는 주장했다. 해병대 은어로 ‘악기바리’라는 것이었다.
ㅂ씨는 양쪽 주머니에 초코바를 각각 7개, 9개씩 넣어놓고 한쪽을 고르게 한 뒤 그걸 다 먹게 했고, 지속적으로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를 재도록 했다. ㄹ씨의 몸무게는 75㎏에서 84㎏으로 늘었다. ㅂ씨는 ㄹ씨의 성기를 만지면서 그것이 총인양 병기번호를 복창하도록 하거나, 다른 이의 성기를 만지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식단표 등 자차분한 것을 못 외우면 욕설을 했다.
ㅂ씨는 ㄹ씨의 주장 일부를 부인했지만 일부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고는 “악기바리는 해병대의 관행”이라며 자신이 선임병에게 당한 것에 비하면 아주 약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ㅂ씨는 인권위 조사관에게 자신이 선임병한테서 당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놨다. 하루에 매점을 4번도 갔고, 점심 때 나온 떡을 18개까지 먹었다. 2015년 추석 때 대통령 특식으로 나온 초콜릿 넛바를 이틀 동안 180개나 먹은 일도 있었다. 처음 61㎏이었던 몸무게는 81㎏까지 늘었다.
ㅂ씨의 성추행도 선임병들한테서 당하면서 배운 것이었다. 선임병이 자신의 군복 속으로 손을 넣어 성기를 만지는 등 추행 수준도 더 심했다고 주장했다. 암기사항을 못 외우면 앉은 의자를 발로 걷어차고 목을 졸랐다고 했다. 선임병 앞에서 1시간 만에 담배 반갑을 억지로 피운 일도 있었다. ㅂ씨는 “인권위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해병대 악습을 개선하는 데 노력해 주기 바란다”면서도 이미 전역한 선임병에게 “아무런 조처도 취하고 싶지 않다”고 조사관에게 말했다.
ㄹ씨는 복무 도중 무릎을 심하게 다쳐 전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 조사관은 “전역 뒤에도 정신적 후유증이 남아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피해 정도로만 보면 가해자인 ㅂ씨가 가장 큰 고통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피해자가 훗날 가해자로 바뀌는 군 폭력의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2개 해병부대에서 발생한 ‘취식 강요’ 사건에 대한 3건의 진정 사건을 접수해, 5개월 동안 해당 부대원들을 전수조사 수준으로 심층 면접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의사소통 전문가와 함께 세부 내용을 조사한 결과를 16일 공개했다. 인권위는 해당 부대들은 악기바리 사건을 ‘군 기강 해이’의 문제로 보고 구보, 총검술, 제식훈련 등을 실시하는 등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국방연구원 등 외부 전문기관이 참여하는 조직진단 실시를 해병대 사령관에게 권고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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