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르포
파업 한 달, 용인정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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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용인정신병원의 한 환자의 뒷모습. 환자복 왼쪽 어깨 부위가 찢어져 있다. 이 병원 노조는 일반 건강보험 환자와 달리 연고가 없거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병원 쪽이 온수를 제한하고, 얇은 이불과 형편없는 급식을 주거나 찢어진 환자복을 그대로 입은 채 생활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 용인병원유지재단 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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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표적인 민간 정신병원인 용인병원의 간호사와 보호사들이 한 달째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으레 제기되는 환자들의 인권 문제는 국내에서 가장 좋은 환경을 갖췄다는 이곳에서도 불거져 나옵니다. 사회의 최약자라 할 정신과 환자들을 우린 어딘가로 계속 내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용인정신병원 문제를 제기한 윤소하(정의당), 정춘숙(더불어민주당) 두 의원을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정춘숙 의원(이하 정) “이사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이효진 이사장(이하 이) “예?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데요?”
정 “아니 지금, 윤 의원님 얘기하시는데 나가려고 하셨잖아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 “화장실도 못 갑니까?”
정 “그런 게 아니잖아요. 지금 얘길 하고 계시잖아요.”
이 “듣고 있었습니다.”
정 “제가 지금 눈이 없습니까? 윤소하 의원 얘기하고 계시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나가시려고 하니, (옆에 앉은) 진료원장님이 손을 잡으셨잖아요. 제가 그 장면을 목격했어요.”
대화가 시작된 지 1시간쯤 지났다. 양쪽에 조금씩 쌓이던 답답함과 짜증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회의실에 긴장이 감돌았다. 윤소하 의원이 하던 말을 다시 잇고, 이를 받아 안은숙 진료원장이 ‘병원 내 착취와 인권 문제는 없으며, 우리도 억울하다’는 취지의 항변을 이어가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상하동 용인정신병원 신관 4층 회의실에 마주 앉은 이들은 그렇게 다시 30분가량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쪽에 이효진 용인정신병원유지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병원 쪽 관계자 6명이, 맞은편에 두 명의 국회의원과 유지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이영문 전 국립공주병원 원장 등이 앉았다. 보건복지부와 경기도, 용인시 관계자도 배석해 있었다.
용인정신병원의 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용인병원유지재단 지부)은 지난달 9일부로 파업에 들어갔다. 꼭 한 달이 지났다. 노사 갈등은 병원 쪽이 올해 2월 전체 520여명의 직원 중 희망 퇴직자 43명을 모집하면서 시작됐다. 5월에 노조 간부 등 20명을 먼저 정리해고하면서 본격적인 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 병원 쪽은 정리해고 규모를 150명으로 밝혔다. 쫓겨나는 건 직원뿐만이 아니었다. 1300여명에 이르는 환자 가운데 200여명이 두 달 사이 퇴원했다. 주로 ‘돈이 안 되는’ 의료급여 환자들이었다. 병원 쪽은 앞으로도 300명을 더 퇴원시킬 계획이다. 노조는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 정리해고이며, 인권을 무시한 강제퇴원”이라 반발했다. 20대 국회의 보건복지위원회가 용인정신병원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국회에 출석해 “(용인정신병원을) 철저하게 지도감독하겠다”고 말했다. 두 국회의원은 복지부의 지도감독에 앞서 이날 이곳을 찾았다.
이곳만 환자를 내보낸다
병원은 온통 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을 달려 경부고속도로 수원신갈 나들목을 빠져나온 차량은 좌우로 온통 수풀뿐인 도로에 멈춰섰다. 병원 터 뒤로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1971년 설립된 용인정신병원은 민간 정신병원 가운데 규모와 시설 면에서 손에 꼽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 인권, 노동 착취, 노동자 탄압 이 세 가지 문제잖아요? 환자 인권이란 문제에 대해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책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노동자 탄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지만,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달째 파업 중인 병원에서
직원과 환자가 쫓겨난다
“일방적 정리해고에
강제퇴원” 반발해도
“책임 느낄 필요 없다”
병원은 환자로 돈 벌고
건보재정 부담된 정부는
탈원화 방침 밝혔다
돈 안되는 환자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이 이사장이 말했다. 윤소하 의원은 이 말을 두고 “조금이라도 책임감이 있을 줄 알았다…. 안이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발끈한 이사장은 회의실을 아예 나가려 했다.
이사장이 정부 정책에 대해 얘기하려 했다. 그는 “이 사태의 중심은 그런 것보다 왜 이런 문제가 우리 정신병원에서 발생했느냐는 점”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올해 초 복지부가 발표한 ‘탈원화 정책’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지난 2월 복지부는 새 의료수가(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지급하는 돈) 체계가 포함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지역사회로 복귀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각종 인권 문제를 낳고, 치료 효율이 떨어지는 장기수용 방식보다는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센터, 사회복귀시설, 낮병원(주간수용시설)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치료하자는 것이다.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탈원화를 유도하기 위한 수가 체계는 입원 뒤 3개월까진 기준 수가의 115%를, 다시 6개월까지 100%를 지급한 뒤 이후 3개월 단위로 90%, 85% 식으로 수가가 줄어들게 돼 있다. 환자를 6개월 이내에 퇴원시켜야 병원의 수입이 전보다 느는 구조다. 병원 쪽 관계자들은 이런 정부 방침에 따라 환자 수를 줄인 것이고, 환자 수를 줄이는 과정에서 모두 보호자 동의를 받았으며, 환자가 줄었으니 간호사 등 직원도 그에 맞춰 줄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조 주장은 다르다. 정부 방침은 아직 시행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용인정신병원만 환자들을 내보낸다는 것이다. 특히 2009년 27살의 나이로 3대째 재단을 세습한 어린 이사장이 의료 이외의 업무에 직원을 동원하는 등 전횡을 한데다, 경영 잘못으로 적자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메우려고 정부 방침을 핑계 삼고 있다고 했다. 노조는 “이사장이 환자를 돌봐야 할 직원들을 자신의 개인사업에 동원해 젤리에 술을 넣은 ‘젤리샷’을 만들어 록 페스티벌에서 팔게 하거나, 이사장 개인 차를 운전하게 하고, 이사할 때나 생일날 파티식사 서빙, (재단 자회사인) 미술관 관리 등의 일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노조 말을 들어보면, 병원은 환자도 차별대우했다. 일반 건강보험 환자와 달리 연고가 없거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온수를 제한하고, 얇은 이불과 형편없는 급식을 줬다. 찢어진 환자복을 그대로 입혔고 인력이 부족하단 이유로 청소와 세탁물 수거, 배식, 식당 뒤처리 등의 일도 시켰다. 이런 일은 ‘작업치료’ 명목으로 이뤄졌지만 노조는 “보호자나 환자, 주치의의 동의서와 기한, 급여를 비롯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만 계획서도 없는 강제노동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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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기도 용인시 상하동 용인정신병원을 찾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소하(정의당·오른쪽 셋째), 정춘숙(더불어민주당·맨 오른쪽) 의원이 병원 신관 4층 회의실에서 병원 쪽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용인병원유지재단 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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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만 늘고 있나
“(정액 수가가) 의료급여 환자들은 4만7천원 정도예요. 건강보험 환자들은 7만4천원가량이고요. 환자들을 데리고만 있으면 나오는 돈이죠. 아무래도 병원의 이해가 환자를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어요. 노숙자 씻겨서 환자 만들고, 입원 안 했는데 차트만 있고, 심지어 출퇴근하는 환자도 있더라고요.”
용인정신병원을 다녀온 다음날 만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미조직위원장의 말이다. 지난해부터 오산과 서울 송파, 경남 함양의 정신병원 직원들이 보건의료노조로 노조 설립에 대해 물어오기 시작했다. 보건의료노조도 그제야 정신병원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문제가 된 병원은 대개 환자 수를 늘려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 정신병원이 계속 늘었다. 지난 8년 동안 정신과 수가는 동결됐지만 병상 수가 늘면서 건강보험의 재정부담도 함께 늘었다. 2000년대 이후 ‘탈원화’를 정신과 치료의 방침으로 세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왜 한국만 병상 수가 늘고 있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복지부의 대책은 늦었지만 불가피했다.
나 위원장은 “용인정신병원은 (수가가 동결된) 지난 8년 동안 직원의 임금도 동결했다. 몇해 전부턴 적자도 심해졌다는데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야 정리해고를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병원 쪽이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복지부 대책 발표 이후 직원과 환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시 지난 4일 오후 용인정신병원. 병원 신관 1층 로비 바닥엔 파업 중인 노조 조합원 70명가량이 모여 있었다. 4층 회의실에서 병원 쪽과 면담을 끝낸 의원들이 로비로 내려와 이들과 만났다. 의원들이 자리에 앉자 한 사람씩 손을 들고 발언했다. “정리해고 당사자”라 소개한 한 여성 조합원은 “명단에 이름이 올랐을 때 도저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었다. 환자와 병원을 위해 지금껏 일해온 우리를, 병원 쪽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절차를 통해 내쳤다.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요샌 잠을 잘 못 잔다. 이렇게 가다간 내가 환자들을 다시 간호할 수 있을까, 오히려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울먹였다. 직원들의 처지는 갈 곳 없이 내몰린 환자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조합원들과의 만남 뒤 의원단 일행은 병동을 둘러봤다. 의료급여 환자의 병동과, 재활병동, 건강보험 환자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병동 내로 들어가자 특유의 환자들 몸 냄새가 강하게 났다. 층마다 수십명의 환자들이 놀란 눈과 헤벌린 입으로 낯선 방문자들을 맞았다. 색이 바랜 희뿌연 환자복을 걸친 이들은 머리가 짧고 잠에 취한 듯했다. 해바라기들처럼 방문객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개중 몇은 연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를 반복했다. 복도를 따라 양옆으로 늘어선 방엔 다양한 침상에 환자들이 눕거나 앉아 있었다. 마룻바닥에 이불을 깐 곳도, 낮은 침대가 있는 곳도 있었다. 근무 중인 간호사와 보호사들이 중간중간 환자들의 바다에 섬처럼 떠 있었다.
낮은 관심이 문제
7일 정신병원 제도 개선에 관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보건의료노조의 의뢰로 김소윤 연세대 교수(의료법윤리학)가 정신병원들의 실태를 연구한 바를 살펴보는 자리였다. 복지부의 ‘2011~2013 정신의료기관 강제입원율 현황’을 보면, 자발적 입원은 29%에 불과한 반면, 가족에 의한 비자발적 강제입원은 70.5%다. 김 교수는 “주요 선진국 정신병원은 지역사회 안에서 타인과 정서적 교류를 통해 스스로 질환을 극복해나가는 방식으로 사회 복귀를 추구한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정신병원 입원일수는 한 해 평균 10~35일인 반면, 한국은 무려 251일(2011년 기준)이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린 정신과 환자들을 사회와 격리시켜 두고 있다. 보이지 않는 환자들의 인권은 무시된다. 제맘대로 운영되는 병원을 감시하는 이도 드물다.
그럼에도 탈원 환자들을 받기에 지역사회의 정신보건 체계는 아직 미숙하다. 토론자로 나선 손지훈 서울대 교수(정신과)는 “각 지역에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설치되는 등 지역사회의 정신보건 체제 역시 시설과 인력 면에서 이전과 다른 성장을 해왔지만, 아직 정신질환의 치료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진 못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 평가”라고 했다. 복지부 대책으로 환자들은 병원을 나와야 하지만, 갈 곳도 마땅치 않다. 환자들을 내모는 문제의 근원엔 우리 사회의 낮은 관심이 자리한다.
한국 정부가 전체 보건예산 가운데 정신보건에 투자하는 비중은 3%가량이다. 오이시디 국가들은 5~18%를 지출한다. 정신병원의 수가는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로 낮은 수준에 묶여 있다. 병원 내 간호행위나 비약물 요법, 시설 투자 같은 환자들을 위한 처치를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평가해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우리 사회가 공공 정신보건 영역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듣는 이가 누구인지 모를 헛헛한 주장들이 토론회장에서 오고갔다.
용인정신병원 앞 도로는 왕복 8차선이다. 국회의원들이 이곳을 찾은 지난 4일 오후에도 차들은 너른 도로를 쌩쌩 달렸다. 차도에선 병원 건물들이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이곳을 지나는 차들이 수풀 너머에 정신병원이 있음을 알아차리긴 쉽지 않아 보였다. 병원의 진입로 초입엔 펼침막이 걸렸다. “이곳은 정신(노인) 환자들이 치료받는 특수병원입니다. 소음 발생은 정신건강 회복에 유해합니다”라고 쓰였다. 풀숲에 가린 병원 건물들처럼 이곳 환자들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 있다. 소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멀어진 시선, 책임감과 관심 같은 것들이 더 커다란 문제였다.
용인/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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