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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30 19:31 수정 : 2016.07.01 19:06

곽병찬 대기자의 ‘나비의 꿈’

29일 오후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이 잠시 숨을 멈췄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호소하는 유럽평화기행단 ‘나비의꿈’의 캠페인에 주목했다.

우직하게 일하는 영국인들도, 각지에서 온 여행객도, 현장학습에 나온 초등생들, 내셔널갤러리를 찾은 중학생들도 모두 환호했다. 갤러리의 안전을 맡은 경비도, 광장의 청소부도, 광장에서 1인극을 하던 예술가도 모여들었고, 서명대 앞에 줄을 섰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은 우산을 뒤집곤 했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비의꿈은 이날 런던에서 파리 시위 때와는 달리, 지지발언 등을 생략하고 온 몸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오후 1시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광장과 내셔널갤러리 사이 넓은 월대에 무대를 차렸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한 넬슨 제독의 동상, 정부 기관들이 줄지어 있는 웨스트민스터 거리 그리고 그 끝 테임즈 강변의 웨스트민스트 사원이 내려다 보이는, 런던 아니 제국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내셔널갤러리를 배경으로 서명대 10개를 놓고, 서명대 앞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한일 정부의 12.28 합의 철회’ 등의 피켓을 줄지어 놓았다. 서명대 옆으로는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과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여주고, 할머니들의 뜻과 국민의 생각을 배반한 12.28 합의의 내용을 보여주는 대자보를 바닥에 붙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길목이었다. 그 앞을 사람들은 보행 속도가 늦춰가며 피켓 대자보 그리고 유인물을 읽다가 서명대에 이를 때쯤엔 걸음을 멈추고 서명을 했다. 파리지엥은 자유분방했고, 런던 시민들은 진지했다.

소품 설치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바로 플래시 몹 준비에 들어갔다. 리드 댄서인 진희는 정장 한복을, 입고, 고교생 지윤는 소녀 한복, 준영이는 총각 한복을, 우리는 제가 만든 개량한복을, 태민이는 패션 한복을 각각 입고, 아름이 등은 호랑이 옷을, 찬이는 고양이 옷으로 갈아 입었다. 곧 ‘셔플 아리랑’의 경쾌하고 발랄한 리듬이 울려퍼졌다.

진희가 나가 곱게 인사를 한 뒤 바로 율동을 하기 시작했고, 반주 한 소절이 끝나자 지윤이와 준영이가 다음 줄에, 그리고 한 소절이 끝나면서 태민이 등 셋째 줄이 이어 붙었다. 열 번째 열이 채워지면서 대열을 완성되면서 본격적인 율동이 광장을 채웠다. 진지하거나 무거운 시위에 익숙한 시민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멈췄고, 대열이 완성될 때쯤엔 지름 50미터 정도의 반원형을 이뤘다.

관객 속의 초등생들은 빠르고 발랄한 셔플 아리랑의 중독성 강한 리듬과 율동에 맞춰 제각각 춤을 췄다. 싸이의 춤을 흉내내는 아이도 있었고, 3박자 리듬에 맞춰 발놀림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인솔자의 성화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솔자는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이 걱정스러운 듯했다. 갤러리 출구 쪽 계단 위에는 중고등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1차 플래시 몹이 끝나자 시민들이 서명대로 우르르 몰려왔다. 대부분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몰랐다. 말로만 들었지 그렇게 처절한 인권유린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이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 시위는 런던 아니 영국에서는 처음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세계 시민의 양심을 이끌어내 이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국내에서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 정상화는 없다’고 큰소리 쳤을 뿐이었다.

1차 플래시 몹이 끝나자 서명대가 붐볐다. 비가 오고 바람이 거칠었지만, 시민들은 줄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영국인, 터키인, 이집트인, 세르비안 등 그야말로 세계 시민이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나 교민도 많았다. 처음엔 의아한 표정이었다. 혹시 한국인의 얼굴에 침을 뱉는 건 아닐까? 그러나 런던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유쾌하고 상쾌하면서도 진지한 퍼포먼스에 감명을 받았는지 우르르 서명대로 몰렸다, 이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수고했다’ ‘고맙다’ 치하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잠시 소강 상태에서 ‘이매진’ 합창이 이어졌다. 규모라야 20여 명에 불과했고, 합창곡으로는 처음으로 부르는 사람이 모두였지만, 전쟁과 인권유린을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만은 누구보다 절실했다. 작곡자 존 레논은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이고, 이 노래 역시 영국 태생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평화를 호소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이매진’은 새롭고 각별하게 다가왔다. 원더풀, 굿 따위의 찬사가 나왔다.

‘나비의꿈’은 관객들의 반응에 고무돼 ‘셔플 아리랑’ 플래시 몹을 다시 한 번 했다. 처음이나 마찬가지로 반응은 뜨거웠고, 서명대 앞은 붐볐다.

트라팔가 광장, 대영제국이 시작됐고, 제국의 영광이 응축된 곳. 그러나 지금은 쇠락의 상징. 게다가 브렉시트로 분열과 갈등의 몸살을 앓는 곳. 그곳이 이날 한국의 젊은이들로 말미암아 밝고 명랑했다.

앞서 나비의꿈은 다운스트리트에 있는 주런던 일본대사관 앞에서 1237차 수요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영국의 ‘위안부를 위한 정의 영국그룹’과 함께 한 연대시위로 진행됐다. 영국그룹에선 이 모임을 제안한 앤드류 젠슨이 함께 했다.

40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시위에서 첫 선을 보인 플래시 몹 ‘평화만들기’와 즉석에서 제작된 대형 칼리그라피 ‘위안부 할머니의 꿈’은 완고한 일본 정부에 보내는 ‘나비의꿈’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우리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기를 원할 뿐’이라는 의미였다.

나비의꿈과 영국그룹은 공동 성명서에서 ‘12.28 합의’의 철폐와 재협상을 촉구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가 회복되는 문제 해결에 국제사회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앤드류 젠슨 인터뷰

젠슨 “특별한 캠페인에 감동 받았다”

“특별한 캠페인이었다. 감동을 받았다. 많은 외국인과 영국인들도 서명을 했는데, 그들 모두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트라팔가 광장 캠페인이 끝난 뒤 만난 앤드류 젠슨은 상기돼 있었다. ‘위안부의 정의를 위한 영국그룹’을 처음 제안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강연장에서 1인 시위 등을 해온 이다. 지난 해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피해자 할머니의 생각을 모두 무시한 채 ‘합의’가 이뤄진 것에 분개해 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안 서방’으로 소개했다. 부인 대비 김은 한국인이다. 그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이보다는 알면 알수록 한국은 애정도 가고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많은 아픔을 안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그는 한국에 가서 수요집회에도 참석하는 등 행동도 함께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도 알게 됐고 세월호 사건 앞에서 분노하고 슬퍼하기도 했다.

그와 아내는 12.28 합의가 이뤄진 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합의를 규탄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런던에서만은 열리지 않은 게 부끄러웠다. 게다가 영국의 정론지라는 ‘가디언’이나 ‘타임’조차 그 실상을 전하지 못하고, 한일 양국 정부의 입발린 홍보를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했다. 그와 아내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인터넷이나 sns 등으로 ‘동지’를 규합했다. 그리고 피해자 할머니의 뜻을 배반하고 유린한 한국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주런던 한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다. 이날 행동을 함께 한 ‘동지’들과 마음을 모아 출범시킨 것이 ‘위안부의 정의를 위한 영국인그룹’이었다. 영국인그룹은 1월27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이들은 ‘12.28합의’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용단’이라고 ‘아첨’을 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월5일 영국 런던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했다. 그의 평가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결론 그리고 일본 정부에 대한 권고까지도 무시한 것이었다.

앤드류와 대비 김이 앞장서기로 했다. 영국 유엔협회와 채텀하우스 공동으로 주최한 강연장에는 2천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반 총장이 연설하기 위해 강단에 서자 앤드류는 반 총장 앞으로 나가 ‘위안부를 위한 정의’ 피켓을 들었다. 비록 경호원들에게 끌려가기까지 30초에 불과했지만, 이 영상은 전 세계에 타전됐고, 12.28 합의의 잘못과 반 총장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국제적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대비 김은 강연장 앞에서 ‘살아있는 소녀상’ 시위를 했다. 함께 한 이들은 “일본은 창피한 줄 알라” “우리는 공식 사죄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손피켓을 들었다.

“인권에 예민하다는 영국인지만 지난해 12월28일 한일간에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야 일본군 성노예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게 됐다. 얼마나 무지했으면 영국의 정론지라는 매체들도 그 합의를 높게 평가하는 보도를 했다. 그러니 시민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란 없었다.”

합의 직후 정대협 관계자들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이른바 정론지나 방송은 한 군데서도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아일랜드계의 한 작은 신문만 이를 보도했을 뿐이다. 결국 반 총장의 터무니없는 아첨이 ‘영국그룹’의 행동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영국인들에게 바른 정보와 판단을 갖게 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아시안 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인의 문제 그리고 역사적 문제다. 지금도 그런 인권유린은 지구촌 곳곳에서 저질러지고 있다. 세계인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는 다시 한 번 캠페인의 감동과 고마움을 전했다. “12.28합의가 있고 난 뒤 한국에서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대학생들이 그 혹한 속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것이 노무 감동스러웠는데 그런 이들을 오늘 이렇게 만나니 너무나 반갑다. 게다가 이런 멋진 캠페인까지 해주다니~. 우리도 그런 캠페인을 하고 싶다.”

‘영국그룹’ 그동안 런던대학교에서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마키 키무라 박사의 강연을 열었고, 위안부 관련 영화나 영상 상영회도 열었다. 앞으로도 1인 시위, 수요 연대집회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글 런던/ 곽병찬 기자, 사진/ 나비의꿈 미디어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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