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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14 19:52 수정 : 2015.07.15 14:53

협업 실험 ‘도시농민경제하우스’

지난 2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도시농민경제하우스사업’ 설명회에 100명이 넘는 시니어가 몰렸다. 이 사업은 농업회사법인 하농가, 사단법인 주거복지연대,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에스에이치(SH)공사 성동권역주거복지센터가 함께 주최했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에서 고산농장을 운영하는 정재훈 대표는 농번기마다 일손이 부족해 고민이다. 33만㎡(약 10만평) 과수원에서 배·사과를 수확할 일꾼 모두를 인근 마을에서 구하기는 불가능하다. 차로 1시간20분 거리인 영천에서 사람을 모집해 관광버스로 출퇴근시킨다.

정 대표 등 농민이 주주로 참여한 농업회사법인 하농가는 서울 등 대도시에서 구직난을 겪고 있는 사람과 일손이 필요한 농촌을 연결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숙소가 걸림돌이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묵을 숙소를 농촌에서 구할 수 없어 가까운 도시의 여관·모텔을 이용하고 있다. 숙박비도 만만치 않고, 출퇴근에 들어가는 비용·시간의 부담도 상당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농가와 사단법인 주거복지연대가 머리를 맞댔다. 농촌의 빈집을 수리해 숙박과 출퇴근 거점 공간으로 활용하는 ‘도시농민경제하우스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참여자는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5060세대를 중심으로 모았다.

지난 2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사업설명회에 100명이 넘는 시니어가 몰렸다. 이날 농장주와의 면담을 통해 선발된 50명은 이달 말까지 청송에서 농가활동을 하게 된다. 하농가 양진우 본부장은 “4주마다 전라·강원·제주 등으로 옮긴다”며 “원하면 청송에서 계속 일할 수 있고 정착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손 부족 농촌과 구직난 시니어 연결
부족한 숙소는 농촌 빈집 수리해 해결
모델 안착 위해 농장주는 임금+α 투자
직장경력 활용 귀촌형 프로그램도 예정

사업설명회에 시니어 100여명 몰려
참여자 목적 따라 질문·불만 다양
귀농 준비 불구 몸이 버틸까 우려하자
“칠순 할머니들이 지역의 일꾼” 답변

“귀농 미리 경험할 드문 기회” 반색

고산농장 정 대표와 면담에 나선 오아무개씨는 직장생활 40년 만에 은퇴하고 귀농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년 전부터 귀농을 꿈꾸며 각종 교육을 받았지만 이론일 뿐, 실제 농사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귀농을 미리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자리가 무척 반갑다고 했다. 몸이 농사일을 버텨낼 수 있을지 두려움도 컸다.

정 대표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이와 체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과 한 상자가 20㎏인데 나르는 건 기계가 하고, 사람은 싣고 내렸다 정도만 하면 됩니다. 손만 부지런히 놀리면 되는 일이라 나이 상관하지 않고 의지만 봅니다. 칠순 넘은 할머니께서 청송에 귀농하셨는데, 트랙터 직접 몰면서 10만㎡(약 3만평) 농사를 짓습니다. 열의가 있으니까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다 하세요. 사실 청송에 70대 할머니들 안 계시면 농사 못 지을 정도입니다.”

장아무개씨는 텃밭에서 고추, 감자, 고구마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고 있었다. 다양한 과일을 재배하는 청송에서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귀농 작물도 정하고 싶어했다.

귀농인을 위한 컨설팅도 하고 있는 정 대표는 “작물에 따라, 농부에 따라 기술은 다를지 몰라도 기본적인 부지런함은 똑같다”며 “이번 기회에 여러분이 농부의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청송에 내려가면 하루 일이 끝난 뒤 작업일지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그날 한 일과 느낀 점을 기록하는 거죠. 귀찮으시겠지만 귀한 자료가 될 겁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셔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자신이 했던 생각을 돌아보고 귀농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시니어들은 고산농장 정재훈 대표(가운데)와의 면담에서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5만~6만원 임금 너무 낮아” 불만도

한아무개씨는 아침 6시30분부터 12시간을 일해야 하는데 하루 임금이 5만~6만원이라는 게 불만이었다. 기초수급자인 한씨는 “지게차 운전학원 수업도 빠지고 왔는데 실망했다. 도시에서 70대 노인이 공공근로를 해도 한달에 80만~90만원을 받는데, 노인네 일자리라고 임금이 박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정 대표는 청송 지역에 형성된 품삯 그대로 책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이 주로 하는 일이라 그렇습니다. 힘든 일도 괜찮다고 하면 전라도에서 다음 사업을 할 때 고구마, 마늘, 양파를 캐시면 됩니다. 그쪽은 호미만 들 수 있으면 일당 8만원이라고 할 정도로 품삯이 비싸거든요. 그리고 선생님은 5만~6만원 받으시지만, 농장주는 8만~9만원 정도 나가는 겁니다. 숙소에 여러 비품 지원하고 일터까지 왕복 교통편을 제공하거든요. 만약 선생님께서 따로 숙소 잡고 출퇴근하면서 자기 경비 다 빼면 얼마 남겠습니까?”

한씨는 지금까지 안 해본 일 없이 살아왔고, 최근에도 경기도 양평에서 예초기 작업을 하느라 얼굴이 까맣게 탔다고 했다. 트랙터도 몰 수 있다고 장담했다.

정 대표는 예초기나 트랙터를 작동할 수 있으면 8만원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농장주들은 참여자에게 당장 100%를 기대하는 게 아닙니다. 70%만 따라와도 지역 품삯을 다 주겠다는 겁니다. 왜? 이 사업이 안착하면 일손 걱정을 안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능력이 100% 이상이라고 판단하면 그만큼 품삯도 올라갈 겁니다.”

“하루 12시간 노동?” “그게 농촌현실”

민아무개씨는 몇 안 되는 여성 참여자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시골은 전혀 모른다고 했다. 남편이 사업하다 망해서 무일푼이라 막막한 상태였다. 시골살이에 대해 알고 싶어 신청했지만, 하루 12시간 일해야 한다는 설명에 충격을 받았다.

돌아온 정 대표의 대답은 그게 농촌의 현실이라는 거였다. “이번에는 일자리 창출을 기본으로 귀농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처음엔 주 5일 근무로 계획했다가 돈 벌려고 가는데 쉬는 날이 너무 많다는 의견이 있어 하루 늘렸습니다.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토요일도 쉴 수 있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도 일만 하면 못 살거든요.”

세무사 출신인 엄아무개씨는 아내와 함께 귀촌을 준비하고 있었다. 농사보다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지역에서 할 일을 찾고 있었다. 임금은 2만, 3만원이라도 좋으니 좀더 여유있는 일정을 원했다.

정 대표는 “시골에도 세무사에 대한 수요는 있다”며 “앞으로 부탁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반가워했다. “청송에 귀농하신 법무사가 계십니다. 남편은 농사를 짓고, 그분은 농업 관련 법무를 보십니다. 농촌이라고 꼭 삽자루를 들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경력을 살려서 할 게 많습니다. 마을기업에서 세무·회계 전문가를 채용하면 월 120만~150만원 드립니다. 귀촌하신 분들이 농산물 판매·유통을 대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농민 입장에서는 큰일을 해주시는 거죠.”

농업회사법인 하농가는 좀더 여유 있는 귀촌 프로그램도 따로 기획하고 있다. 정 대표는 “귀촌을 고민하는 분들을 농촌이 어떻게 흡수해 같이 살아가며 안정화시킬 것인가를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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