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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07 21:13 수정 : 2015.07.08 15:21

6월24일 서울시 은평구 은평상상허브에서 ‘이모작 마을콘서트’가 열렸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도 50여명의 주민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은평구 마을지원활동가 박혜연(가운데 왼쪽)씨가 발표를 마친 뒤 관객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제공

은평구 마을지원활동가 박혜연씨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녹번119안전센터는 외관만 보면 흔한 소방서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3층에 올라가면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은평상상허브’라는 공간이 나온다. 크고 작은 모임 공간을 중심으로 마을기업,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비영리단체(NPO),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돌아가는 바퀴의 축’이란 허브(hub)의 뜻처럼 은평구 지역의 마을공동체, 풀뿌리 시민사회, 사회적 경제의 중추를 표방하고 있다.

이곳에서 6월24일 저녁 6시 ‘이모작 마을콘서트’가 열렸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도 50여명의 주민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 행사를 기획한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제지현씨는 “생활 터전인 마을 안에서 시니어가 어떤 활동을 하며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은평구에서 활동하는, 꿈꾸는 합창단의 트리오 남성 밴드가 마을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통기타, 하모니카 연주에 남성적 중저음이 어우러졌다. 1970~80년대 노래를 관객도 따라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아줌마들의 ‘앙코르’ 외침으로 동네 시장처럼 떠들썩해졌다. 관객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오늘의 발표자가 등장했다. 은평구 마을지원활동가 박혜연(54)씨다.

“마을지원활동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시죠? 말 그대로 마을과 관련된 사업이나 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도와드리는 사람입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고 싶은데 행정 때문에 난감해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저와 같은 마을지원활동가한테 도움을 청하시면 제안서 쓰시는 것부터 결과 보고서 낼 때까지 계속 도와드립니다.”

박씨가 마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5년 전이다.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같은 반 학부모와 친해졌다. 함께 노인복지관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3년 뒤 여러 사정으로 봉사를 접었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해 새마을부녀회에 들어갔다.

“마을에서 부녀회 활동을 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함께하던 분들과 의기투합이 잘돼서 더 신이 났던 것 같아요. 마을 축제 때 땀 흘리며 밥을 해서 주민들께 대접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요. 오지랖 넓은 제 성향과 잘 맞았나 봐요. 호호.”

부녀회장도 맡았다. 고생은 많았지만 마을 활동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임기 3년이 금세 지나갔다. 이어 고문까지 끝낸 4년 전 은평여성인력개발원에서 하는 ‘마을 코디네이터’ 교육 과정을 알게 되었다.

“공부를 하며 복지관과 부녀회에서 했던 활동들이 ‘마을’이라는 개념과 함께 새롭게 다가왔어요. 수업을 듣는데 마을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샘솟더라고요.”

마침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에서 마을지원활동가를 모집했다. ‘바로 이 일이다’ 싶어 지원했고, 2013년 초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마을 주민 만나는 거야 늘 해왔던 거라 어렵지 않았는데, 상담한 뒤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무척 까다로웠어요. 전업주부로 25년 동안 살며 문서 작업을 할 일이 있었나요? 여기저기 물어가며 조금씩 적응해 나갔어요.”

마을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과의 관계였다.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엉뚱한 오해를 사 힘들 때도 있었다. 마을 행사 때마다 얼굴을 내미니 ‘나댄다’는 뒷말이 오갔다. 심지어 “동네를 대표해서 봉사한다는 사람이 적십자회비도 안 내고 있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다. 주민 때문에 좌절했지만 사람한테서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나곤 했다.

“마을지원활동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30대 후반의 주부가 찾아왔습니다. 경력단절 여성이라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더군요. 산후 우울증까지 앓고 있었죠. 친하게 지내는 또래 두 분이 따라왔어요.”

세 주부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 명은 재봉질에 소질이 있고, 또 한 명은 빵을 만들 수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특별한 재주는 없지만 두 사람의 아이들을 봐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저도 전업주부였던 때가 있어 그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집에만 있다가 사회로 나서려니 두려움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분들이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응원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어요. 충분히 하실 수 있다고 격려했고, 홍보와 마케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안도 드렸습니다.”

그들은 온라인 카페 ‘엄마들의 배움터 모모’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 옷 만들기, 간식 직접 만들기 등 엄마들한테 필요한 수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회원 중에서 재능 있는 분들이 강사로 새로 참여해 수업의 종류도 더 다양해졌어요. 지금은 은평구에서 유명해요. 그분들을 만난 지 3년 가까이 되는데 꾸준히 성장하고 자립하는 모습에 저도 덩달아 뿌듯해지더군요.”

박씨는 마을지원활동가 외에도 경로당 코디네이터, 마을학교, 자원봉사캠프 등도 맡고 있다. 마을 일을 하다 보면 줄줄이 이어지기 마련이란다.

“지난해 마을학교 지원사업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불광2동 주민센터에서 합창교실을 5개월 동안 열었어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모이니 큰 감동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참여하는 가족 합창을 준비하고 있어요. 마을 축제에도 참가할 계획입니다.”

마을학교는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열 수 없다. 은평구의 교육기관이 다양하지 못해 종로나 강남까지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잦다. 마을에 필요한 걸 마을에서 배우기 힘든 형편이다. 그래서 마을이 스스로 운영하는 마을학교를 박씨는 꿈꾸고 있다.

“마을 활동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인내심 없이는 갈 수 없어요. 대신 서서히 발효해서 제맛을 갖추는 우리네 장처럼 풍미가 깊습니다. 여러분도 마을에서 그 맛을 보시길 바랍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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