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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30 19:56 수정 : 2015.07.01 09:58

알지오 시니어 아카데미 협동조합 석원자(가운데) 이사장이 6월17일 서울 종로구 도심권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혼자보다 함께하는 삶’이란 주제로 이모작 열린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알지오 시니어 아카데미 석원자씨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쉰살이 되면서였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는데 눈가에 잡힌 주름이 신경 쓰이는 겁니다. 피부도 생기를 잃은 것 같았어요. 명색이 화장품회사에서 직원들을 교육하는 사람인데 말이죠.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자리는 젊은 후배들에게 비켜줘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석원자(58)씨는 1995년 코리아나화장품에 입사해서 사내 강사로 주로 활동했다. 유럽·일본 등을 다니며 체험하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고객 대응법과 회사 비전, 리더십 등을 강의했다.

“젊었을 때 저는 생기발랄하고, 열정으로 가슴이 뛰고, 반짝반짝 빛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더라고요. 뭔가를 빨리 알아채고 기억하기는커녕 금세 잊어버리지 않으면 다행이었죠. 그때부터 인생 2막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장품업계에서 15년 가까이 근무했으니 뷰티 업종으로 창업을 하면 되겠지 생각했어요. 지금 돌아보니 은퇴 준비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2년의 준비 끝에 2010년 퇴사와 동시에 피부관리실을 열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160㎡(약 48평) 자리를 얻었다. 월 임대료만 250만원이었다. 각종 장비 등 시설비로 1억원 가까이 들어갔다. 거기에 인건비까지 합치니 월 1000만원을 벌어도 남는 게 없었다.

“창업은 역시 쉽지 않더군요. 그런 상황에 마음은 여전히 전 직장에 가 있는 겁니다.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 같고, 직장 동료를 다시 만나야만 할 것 같았어요. 퇴직한 뒤에 무엇을 할지만 고민했지, 그 뒤에 올 수 있는 내면의 변화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많던 직장 동료들과도 관계가 점점 멀어지면서 ‘이제 나는 혼자구나’라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퇴직이 곧 사람과의 단절처럼 느껴졌어요. 소속감이 없다는 게 참 무섭더라고요.”

깊어진 눈가 주름에 화장품회사 퇴사
강남에서 피부관리실 열었지만 고전
사람과의 단절, 외로움이 더 힘들어 

실버산업학과 광고 보고 바로 편입
스터디그룹 “시니어 교육 직접 하자” 

“모래알 시니어는 안돼” 우려에도
협동조합 만들어 은퇴예정자들 교육
시니어 함께하니 안정·소속감 느껴

그렇게 혼란을 겪으며 피부관리실을 힘겹게 운영하던 어느 날 신문의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이버대학교의 실버산업학과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던 석씨는 2011년 3학년으로 편입했다. 노년학, 시니어의 복지, 선진 사례, 여가, 건강 등 수업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시니어와 관련된 강의 대부분을 30·40대 전문가가 강의했다. 수업을 듣는 시니어 가운데는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들도 많았다. 젊은이에 비해 인지가 늦은데다 강사의 열정적인 강의에도 와닿는 게 많지 않았다. 강사들도 “젊은 학생들에 비해 질문이 적다”며 힘들어했다.

“몇몇 학생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함께 공부했는데, 시니어는 시니어가 교육하는 게 맞다고 다들 공감한 거죠. 시니어가 진짜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찾아 공부해서 우리가 직접 강사로 나서자고 의기투합했어요. 그러기 위해 시니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육기관을 만들기로 한 겁니다.”

마침 피부관리실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2013년 팔고, 교육기관을 설립하려고 본격적으로 뛰어다녔다. 그때 시니어 분야에서 15년 동안 활동해온 한 선배가 “시니어 모임은 유지하기 힘드니 너무 힘 빼지 말라”며 만류했다. “시니어는 모두가 모래알이다. 남의 말을 수용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서툴다. 여러 주장을 하나로 모으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석씨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지만 동의할 수는 없었다.

“시니어 개개인을 보면 경력도 훌륭하고, 전문 기술도 갖고 있어 역량은 정말 뛰어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서로 융합이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모임을 만들자, 무엇을 하자 얘기는 많이 하시는데, 막상 그 말을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투자를 하거나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는 않으시거든요. 그래도 저는 ‘그래서 시니어는 안 돼’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해볼게요. 시니어도 되는 게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게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 말을 증명하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다. 지난해 ‘알지오 시니어 아카데미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올해 초 협동조합 등록까지 마쳤다. 최근에는 ‘퇴직 후 생애설계 프로그램’ 개발까지 완료했다. 8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대부분 시니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무원 전문 강의부터 모바일 콘텐츠 제작까지 다양한 역량을 지닌 구성원이 모여 있지만 우려했던 불화는 없다.

“혼자서 강의하려면 찾아다니기도 힘들고 오라는 데도 잘 없어요. 시니어가 함께 모이니 얻는 게 참 많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첫 강의도 진행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에스제이엠(SJM)에서 은퇴 예정자 교육을 3주 정도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협동조합 활동을 하며 어딘가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람도 느꼈다. 가장 중요한 성취는 혼자서는 무력했던 시니어가 함께하며 경험한 시너지 효과였다.

“시니어는 지난 시간 치열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인생 2막에서 조금만 더 마음을 열면, 진흙과 같이 잘 뭉치고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진흙이 단단해지는 것처럼 함께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함께하는 시니어는 더는 모래알이 아닙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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