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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23 20:51 수정 : 2015.06.24 10:32

신재근(앞줄 왼쪽 셋째)씨와 텃밭공동체 ‘공터회’ 회원들이 지난해 가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텃밭에 모였다. 신재근씨 제공

[녹색삶]
텃밭공동체 ‘공터회’ 신재근씨

성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83년이었다. 1년 전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가 떨어졌다. 전국을 돌며 숨어 지내는 ‘도바리’ 끝에 경기도 성남시까지 흘러갔다. 공단과 빈민 지역의 야학에서 노동자와 청년을 가르쳤다. 그해 보안사에 검거돼 옥살이를 시작했지만, 야학에서 점화된 노동자 의식은 1987년 성남산업단지 제2공단 파업으로 이어져 노동자 대항쟁의 신호탄 구실을 했다.

옥살이 반년 만에 사면복권으로 풀려났고, 경남의 노동현장으로 내려갔다. 노동단체에서 만난 후배와 결혼도 했다. 아내가 과외로 벌어오는 10만~20만원으로 한달을 살았지만 부족함을 몰랐다. 그런데 본가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1992년 일자리를 찾아 성남으로 이사했다. 전교조 출신 선배의 소개로 학원강사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학원 강의 기법도 배우고 각종 인맥, 학생까지 소개받으면서 짧은 시간에 스타강사로 부상할 수 있었다. 영어강사 3년 만에 한달 수입이 7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돈이 생기자 간이 부었는지 학원, 유학원 등 각종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부족한 자금은 주위에서 빌리고 대출까지 받았다. 그러나 경영자로서 자질과 감각이 훈련되지 않았던 탓에 결국 부도를 냈다. 일부 사업체를 헐값에 매각했지만 남은 건 수억원대의 빚이었다.

학생·노동운동하다 성남서 학원강사
3년만에 월수입 7000만원 스타강사로
학원·유학원 사업 마구 벌이다 파산
끔찍한 빚 독촉에 우울증, 가정 흔들 

우연히 시작한 주말농장서 생기 찾아
비슷한 도시민 만나 고민·정서 공감
개별농사 넘어 음식공동체 의기투합
지난해 13가구 모여 메주콩 농사 시작
온갖 시행착오 끝 된장 뜨고 간장 달여

학원강사로 다시 일하며 빚을 조금씩 갚아나갔지만, 대부업체의 독촉은 끔찍했다. 자고 일어나면 전화가 쉼 없이 울렸다. 받으면 쌍욕이 쏟아졌다. 집에 수시로 찾아와 문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가족과 이웃에게 볼 낯이 없었다. 가족 사이도 멀어지며 우울증까지 생겼다. 친구가 야탑동에 있는 주말농장에 놀러가자고 했다. 별빛을 보며 막걸리나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가보니 예전에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도 몇 명 있었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다 내년에 주말농장 분양을 받으라는 권유에 그러겠다고 했다. 2005년 봄에 분양을 받아 삽질을 시작하자 어릴 때 맡았던 흙냄새가 났다. 퇴비 냄새도 좋았다. 맨발로 흙을 느끼며 텃밭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농사를 시작한 지 두세달 만에 우울증세가 사라졌다. 강의가 없는 낮에도 가서 농사를 지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했다. 암처럼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분당의 기업체에 다니는 회사원은 삽질을 하며 머리를 식혔다. 도시의 일상생활에 찌든 사람들이 텃밭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농사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비슷한 정서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특히 자녀 교육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공통이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은 금토동으로 함께 옮겼다 2012년 고등동 등자리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유기농 생태 농법을 원칙으로 농약, 비료,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직접 지은 농산물로 발효와 숙성을 제대로 시켜 음식을 만들어 먹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개별 분양자가 짓는 자족적 농사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말농장을 넘어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는 농사공동체의 그림을 그렸다. 지난해 봄 13가구가 의기투합해 텃밭공동체 ‘공터회’를 만들었다. 물, 전기, 농기구 등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가구당 14만원씩 분양비를 내서 충당하기로 했다.

매달 두번씩 전체가 모여 공동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공동의 터전 약 660㎡(200평)에 처음 도전한 작물은 콩이었다. 메주콩을 지어 된장과 간장까지 직접 만들자는 목표였다. 40, 50대 남자 10여명이 모였으니 웬만한 농사일은 가뿐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농기계 사용이 금지된 땅이라 맨손과 삽으로 개간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삽질을 하느라 모두가 땀을 한 바가지씩 흘렸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나누는 점심식사와 막걸리 한잔에 다시 기운을 차렸다.

겨우 콩을 심고 나니 예상치 못한 난관이 나타났다. 솟아나는 콩순을 산비둘기와 까치들이 골라 먹어댔다. 여름 잡풀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2주에 한번씩 모여서는 잡풀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긴급히 잡풀정리조를 가동해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어설픈 농부들은 수확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11월 초에는 콩을 거뒀어야 했는데 12월이 다 되어서야 수확했던 것이다. 건조 2주 뒤 주변 농가에서 빌려온 대형 선풍기로 콩을 털어내 수확량을 달아보니 겨우 10㎏ 남짓이었다. 메주를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 다들 허탈했다. 그래도 부족한 콩은 더 사서 올해 초 메주 쑤기에 도전했다. 하필이면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전날 불린 40㎏의 콩에서 돌을 골라낸 뒤 가마솥에 넣어 3시간을 끓였다. 전기장판 위에 짚을 깔고 메주를 올린 뒤 집에서 가져온 헌 이불을 덮어씌웠다.

콩 농사를 시작한 지 1년 만인 지난달 24일 마침내 메주에서 된장과 간장을 갈라냈다. 미리 소금물에 숯, 고추와 함께 담가두었던 메주에서 된장을 뜨고 간장을 달였다. 앞으로 1년은 발효시켜야 한다. 된장은 아직 많이 짰지만, 간장은 그동안의 고생을 잊게 할 만큼 감동적인 맛이었다. 비록 양이 적어 나눠 갖지는 못하고 농장에 두고 공동식사 때 먹기로 했다. 어느덧 20가구로 늘어난 공터회 식구들은 고추장, 막장, 장아찌까지 도전할 포부에 부풀어 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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