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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1 19:03 수정 : 2005.09.01 19:03

‘오송회사건’ 조성용씨 24년만에 KBS 복직

군산일고 전·현직 교사 9명 5공정권, 용공 몰아 구속 2년반 옥살이·민주화운동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서 착잡하지만 민주언론운동의 진일보라는 점에서 복직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울했던 5공 시절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인 이른바 ‘오송회 사건’으로 구속돼 직장을 잃고 고난의 세월을 보내다 1일 24년 만에 옛 직장 <한국방송> 전주방송총국의 심의위원으로 돌아온 조성용(68·전북 전주시 팔복동)씨는 이렇게 감회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근무 기간은 고령 등을 고려해 계약직으로서 2007년 12월 말까지 2년 4개월간으로 결정됐다.

1982년 발생한 오송회 사건은 작고한 이광웅 시인 등 전북 군산제일고 전현직 교사들이 4·19와 5·18 희생자에 대한 위령제를 지낸 것을 용공조직으로 엮어 9명을 구속한 사건이다. 78년 약 1년간 군산제일고에 근무한 그는 82년 11월 한국방송 남원방송국에서 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반국가단체 구성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영문도 모른 채 붙들려갔다. 이로 인해 직장에서는 이듬해 5월 직권 면직됐다.

2년 6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85년에 풀려난 그는 복직을 위해 노력했지만 매번 허사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 등에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출감이후에도 경찰의 사후관리 대상이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형편에서도 그는 전북민족민주운동연합과 민주민족통일전국연합 등에서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지금은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고문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그는 88년 사면 복권됐고,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명예 회복됐다.

그동안 그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제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신적 피해는 피를 말렸다. ‘간첩의 자식’이라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집밖에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두 자식을 대할 때면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오송회 사건 관련자 9명 가운데 가장 늦게 복직됐다”며 “1980년 5·17쿠데타 이후 집권한 신군부에 의해 이런 저런 이유로 강제로 해직된 쫓겨난 수많은 해직 언론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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