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이택환(21)씨가 동전마술 기술 중 프렌치드롭 기술을 선보이자, 노숙인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김연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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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꺼둥이’를 아십니까? - ③문화, 노숙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이제 국내에도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버금가는 특별한 마술학교가 생겼다.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이 학교는 4명의 신입생을 받았다. 한 학기는 두 달, 수업료는 무료다. 교복망토나 요술지팡이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지난 1일 ‘노숙인 마술학교’가 문을 열었다. ‘노숙인이 웬 마술?’. 못마땅한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노숙인에 대한 편견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노숙인문화권 증진을 위한 문화행동 기획단(이하 기획단)에서 준비한 마술학교는 바로 그런 편견을 깨보고자 마련됐다. “일해라, 규율을 지켜라, 노숙인들에게 하는 말은 똑같잖아요. 그 분들도 다양한 욕구가 있는 사람들인데….” 노숙생활, 배고픔보다 추위보다 힘든 건 심심하다는 것 기획단에서 쉼터와의 연계부분을 맡은 노숙자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하 노실사) 문헌준 대표는 “노숙 생활이 배도 고프고 춥기도 하지만 실은 심심하다”며 “문화활동을 통해 삶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후 1시30분께, 새벽부터 쏟아지던 비가 잠잠해지자 영등포시장 안에 있는 햇살 보금자리 상담보호센터 3층은 활기를 띤다. 수업 시작. 선생님은 감리교신학대학에 재학 중인 이택환(20)씨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여드름이 송송난 얼굴의 이씨는 자신을 “프로가 될 노력은 안 하는 아마추어 마술사”라고 소개했다. 마술사 선생님을 중심으로 반원 모양으로 둘러앉은 예비 마술사는 9명. 노숙인 4명에 도우미 5명이다. 도우미는 노실사와 상담보호센터, 문화연대에서 활동하는 간사들이다. “마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의 첫 질문에 가운데에 앉은 노숙인 학생이 “속임수지 뭐”하고 대답한다. 일동 웃음. “어우 잘 아시네요. 맞아요. 모든 마술은 속임수에요.” 이씨는 자신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학생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수업을 진행했다. 이씨가 왼손으로 옮긴 동전을 오른손에서 꺼내는 동전마술의 프렌치 드롭 기술을 선보이자 작은 탄성이 이어진다. 마술을 배울 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나누는 것으로 마술학교 제 1강이 시작됐다. 경제문제로 시작된 노숙, 건강·교육·문화 권리까지 빼앗겨 4월에 꾸려진 기획단은 그동안 역 앞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형식의 문화제를 개최했다. 기획을 담당한 문화연대 최준영 간사는 “큰 행사보다는 노숙인이 직접 행위의 주체가 되는 방법을 고민하다 워크숍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숙인 마술학교는 기획단에서 진행하는 ‘노숙인 문화행동 문화예술체험 워크숍’ 프로그램의 일부다. 기획단에서는 마술 외에 앞으로 두 달 동안 미디어 제작, 미술, 사진, 공공미술, 음악 분야 등의 워크숍을 진행한다. “1월 서울역 사태이후, 노숙인과 시민의 갈등구도로 사건을 몰고 가는 정부나 서울시의 태도를 보며 노숙인 문화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최 간사는 “노숙인을 정상사회로 진입시키는 것보다 노숙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긍정하고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그동안 노숙인 문제에서 경제적 측면만 부각시킨 것이 오히려 노숙인을 더 고립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문제로 노숙인이 된 사람들은 건강, 교육, 문화의 권리까지 박탈당하고 차별은 더 공고해진다”며 “노숙인 문화행동을 통해 노숙인에게 문화를 즐길 권리를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마술 비밀을 알려주지 말 것’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이상 마술을 보여주지 말 것’
‘끊임없는 자기연습으로 자연스런 연출력을 익힐 것’ 이상, 3가지가 마술을 배우는 데 유념해야할 주의사항이다. “다시 한번 더요. 뭘 지켜야 한다구요?” 이씨가 묻자 예비 마술사들은 유치원생처럼 입을 모아 대답한다.
마술사 이택환(21)씨가 ‘노숙인 당사자 모임’ 김종언(40)씨를 도우미로 불러내 텔레파시 마술의 한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김연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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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뒤 거리 마술공연 펼칠 땐 그들도 ‘해리포터’ 모두 8번의 수업동안 마술학교에서는 동전마술, 카드마술, 생활마술, 도구마술을 가르칠 예정이다. 모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마술용 카드와 몇 가지 도구도 제공된다. 중국 선교사가 꿈이라는 이씨는 “청소년 쉼터에서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어 노숙인을 만나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술을 통해 노숙인들이 남 앞에서 자신감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며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마술을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마술학교의 이름은 ‘매직 오브 러브(magic of love)’다. 수업을 마칠 때쯤 이씨는 준비한 도구마술 몇 가지를 선보인다. 막대에 불을 붙였더니 장미 한 송이가 나오기도 하고, 하얀색 끈이 빨간 실크 천으로 바뀌기도 한다. 상대방이 생각한 숫자를 알아맞히는 텔레파시 마술을 보여줄 때, 이씨는 노숙인 김종언(40)씨를 마술 도우미로 불러냈다. 노숙인 당사자 모임에서 활동하는 김씨는 멋적은 듯 선생님을 돕는다. 해리포터처럼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김씨는 “우선 신기하고, 틈틈이 연습하면 재밌을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예비 마술사들은 “두 달 동안 잘 배워서 꼭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씨는 노숙인 문화행동에 대해 “문화는 노숙인 문제를 다루는 또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며 “노숙인뿐 아니라 경제적 무능력을 이유로 배제되는 모든 약자들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졸업하면 빗자루를 타고 날거나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다. 두 달 뒤 노숙인들이 선보일 마술은 그보다 어렵다는 ‘거리좁히기’다. 노숙인 마술사가 동전을 숨기고, 카드를 골라내는 동안 시민과 그들 사이의 벽은 마법처럼 허물어지지 않을까. <끝> 김연주 인턴기자 mintcandy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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