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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3 10:21 수정 : 2005.08.03 10:45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야간진료현장. 마땅한 진료공간이 없기 때문에 행인들은 이들을 불안하고 불편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김연주 인턴기자

‘떨꺼둥이’를 아십니까? - ② 값싼 주거시설은 자활의 필수조건


구제금융 이후 조금씩 줄던 노숙인은 2004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시 노숙인은 3200~3500명 정도로 파악된다. 일하는 노숙인이 많은데 전체 노숙인 수가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거가 일정치 않기 때문에 노숙인은 일을 하는 데도 자활하기가 쉽지 않다. 연락처가 없어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고, 일을 해도 주거비를 해결하지 못해 거리나 쉼터를 돌며 생활하는 탓이다.

김성훈(가명·48)씨는 5년차 떨꺼둥이다. 그는 요리사 자격증 덕분에 남들보다 일자리 구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쉼터를 통해 몇 번 식당일을 소개받고도 한 달도 못돼 그만두고 말았다. 김씨는 “쉼터에서 왔다고 하면 반말부터 하고 사람취급을 안 해준다”며 “그럴 땐 돈도 싫었다”고 말했다.

10년차 이상용(가명 45)씨는 “건설현장 일도 매일 있는 게 아니고 몸이 아파 쉬는 날도 있어 실제 일은 일주일에 2~3번 나갔다”며 “인력사무소에 수수료 10% 떼어주고 교통비, 담뱃값 빼면 하루에 4만원 정도 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돈 갖고 쪽방은 엄두도 못내고 가끔 사우나 가서 잤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현재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특별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실직노숙인대책 종교시민단체협의회(이하 전실노협) 조성준 간사는 “방 있는 노숙인들이 일주일에 3~4일 일을 하지만 거리노숙인들은 1~2일 밖에 못 한다”며 “주거지원 없이 일자리만 지원해서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거리 노숙인이었던 이씨는 몇 달 전 구세군 상담보호센터를 통해 특별자활사업을 신청했다. 기존의 자활사업은 쉼터 입소자 위주여서 이씨가 참여할 수 없었다. 이씨는 하루 4시간씩 충정로 근처에서 환경미화를 한다. 이씨는 “건설일용직이 돈이야 많이 받지만 몸이 아파서 자활근로 정도의 노동이 적당하다”며 “휴지를 줍다보면 4시간은 금방 간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거리노숙인을 위한 특별자활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의 목적은 거리노숙인의 주거지원이다. 하루 6시간 기준으로 한 달 15일을 꼬박 일한 노숙인에게 35만1천원을 지급한다. 이씨는 “노동강도나 근로조건에는 만족하지만 돈을 모을 수는 없다”며 “한 달 일하면 30만원 정도 받는데 고시원 방값 빼고 나면 내 손에는 8만원만 들어온다”고 말했다. 주거지원사업이다 보니 한 달을 일해서 돈을 벌면 쪽방이나 고시원으로 들어가야 다음 한 달을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씨는 “방값이 너무 비싸 남은 돈으로 담배피고 술 몇잔 마시면 다시 빈털터리”라고 말했다. 주거지원이라고는 하지만 주거비를 고스란히 노숙인 개인에게 떠맡기는 형국이다.

서울시청 노숙인 대책팀은 “현재 350명 정도의 노숙인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120명의 대기자가 있다”며 “3개월 자활근로를 마친 노숙인 중 지금까지 28명이 취업하고 25명이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됐다”고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취업 분야갸 대부분 건설일용직, 재활용 수집, 건물관리 등 불안한 자리여서 일자리를 잃을 경우 노숙인은 다시 거리로 나와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구세군 드롭인 센터 강준 간사는 “이번 자활사업은 1월 서울역 사태(붙임기사 참조) 이후 급하게 만들어진 응급처방의 성격이 짙다”며 “쪽방 같은 열악한 주거를 확보하는데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자활근로를 통한 실질적인 자활은 어렵다”고 말했다. 주거지원 없이 일자리만 제공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노숙자 전원을 대상으로 무한정 일을 줄 수는 없다”며 “상설프로그램은 오히려 자활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내년 자활사업에는 인원을 100명 정도 더 늘릴 생각이다.

전실노협 조 간사는 “서울시의 자활사업은 거리노숙인을 시민들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임시방편일 뿐 ”이라며 “노숙인 발생부터 탈노숙까지 관리하는 종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설프로그램이 자활의지를 꺾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설계도가 없는 단기정책이 자활의지를 꺾는다는 지적이다. 조 간사는 “얼마 전 경기도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리스타트(re-start)사업이 설계면에서는 본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올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리스타트 사업은 ‘노숙인 파악 - 유형별 쉼터제공 - 안정된 일자리 제공 - 근로 수익금 통장적립 - 노숙인 신용회복 - 주거지원 통한 정상인 복귀’라는 6단계의 종합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서울시는 “전국 노숙인의 3분의2가이 서울에 모여있는 상황에서 리스타트와 같은 종합 대책을 실시하기에는 예산 부담이 너무 크다”는 입장이다.


거리노숙인을 위한 상담보호센터의 숙소. 노숙인들은 주로 이곳에서 세탁이나 목욕서비스를 이용한다.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 제공.

그러나 서울시에 부족한 건 예산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하 노실사) 문헌준 대표는 “구제금융 이후 지금까지 서울시의 노숙인 대책은 사고 뒷수습에만 머물러 있었다”며 “노숙인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는 서울시의 태도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에게 보이기 위한 응급처방 말고 주거지원 등 노숙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김현규(가명·36)씨는 지난해 11월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전라도 고흥에서 섀시 일을 했던 그는 회사부도로 밀린 임금을 못 받게 되자,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왔다. 서울역에서 두 달 자는 동안 그는 다른 노숙자들과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같이 술 먹다 보면 나도 영영 그렇게 될까 겁났다”고 한다. 올 초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를 통해 3개월 동안 자활근로를 한 김 씨는 건설현장에 취업했다. 현재 김씨는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에서 지원하는 만리동 월세방에서 박태호(가명·33)씨와 함께 살고 있다. 김씨는 “일은 비정기적이지만 숙소에 살면서 안정감이 생겼다”며 “노숙할 때도 고향식구들한테는 직장 다닌다고 했는데, 이제 돈 벌면 계속 서울에서 살겠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런 그에게도 걱정이 있다. 월세 지원 사업이 9월로 마감되기 때문에 그 전에 보증금을 모아야 한다. 김씨는 “주거비만 해결되면 뭐든 하겠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울시가 내놓은 노숙자를 위한 주거공간은 쉼터가 전부다. 구제금융 직후 200개에 달했던 서울시의 쉼터는 현재 90여개로 줄었다. 서울시가 만든 쉼터 대부분은 사회복지관에 비집고 들어간 형태였다. 사회복지관이 자체 사업을 위한 공간을 필요로 하면서 복지관에 딸린 쉼터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노숙인 문제를 일시적 현상으로 봤던 서울시의 안이한 태도가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쉼터를 줄이고 재활치료와 자활훈련을 할 수 있는 대규모 전문시설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그림은 없는 상태다.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 김해수 과장은 “상담소를 찾는 70%가 재노숙인”라며 “노숙인이 일자리를 구해도 일용직인 경우가 많고, 주거비가 너무 비싸서 일이 끊기면 다시 거리로 나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무리 자활의지가 있는 사람도 6개월 이상 노숙을 하면 의지가 꺾이기 마련”이라며 “초기에 노숙인을 구제할 수 있는 주거와 의료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간이라는 든든한 지원체계가 있어야만 노숙인의 자활의지가 실제 자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달에 20만~25만원 정도 하는 쪽방은 노숙인에게는 너무 비싼 주거지다. 몸 하나 뉘일수 있는 좁은 방. 부엌과 화장실은 공동사용해야 한다.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 제공

노숙인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계부처간 협의가 요구된다. 1월 서울역 사태 이후 서울시는 “철도공사가 부지를 제공하면 서울역에 시설을 짓겠다”고 제안했으나, 철도공사는 “공사도 나름의 사업을 추진할 공간이 필요하다”며 거절했다.

건설교통부는 매입주택임대사업을 통해 올 하반기부터 노숙인에게 300채의 임대주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건교부 주거복지과 오세정 사무관은 “주거문제가 노숙인 자활의 최대 걸림돌이란 점에 주목했다”며 “올해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 점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수량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보증금 200만원, 월세 10만원 이하의 임대주택이 보급되면 노숙인 자활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보건복지부, 건설교통부, 서울시 간 협력이 잘 돼야 가능한 일이다.

노숙인에게 주거를 지원하는 것은 노숙의 근본원인을 없애는 적극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이다. 여기에는 노숙인을 사회가 떠안아야할 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철거를 앞둔 삼일아파트를 점거해 노숙인 주거권을 쟁취한 ‘더불어 사는집’ 송재희 대표는 “규율이 있는 쉼터 자체가 노숙인을 일반시민과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며 “주거지원을 통해 노숙인도 시민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면 시민과 노숙인 사이의 대립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 일자리 같은 응급처방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다. 노숙인에게 공간은 사회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믿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김연주 인턴기자 mintcandy99@naver.com

■ 1월 서울역 사태란?

1월22일 서울역에서 폐결핵으로 숨진 노숙인 이아무개(39)씨를 응급처리하는 과정에서 공안과 노숙인들이 대립한 사건. 이씨가 숨지자 ‘공안들이 이씨를 죽였다’는 말이 와전돼 노숙인 300여명이 소동을 부렸다. 경찰은 오후 6시10분께 2층 대합실 동쪽 화장실 통로에서 쓰러져있는 이씨를 발견하고 응급조치 중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숙자 관련단체로 구성된 ‘노숙인사망실태조사 및 근본대책 마련을 위한 연대모임’은 목격자를 확보해 조사한 결과 이씨가 오후 5시께 공안에게 발견되어 1시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옮겨지며 공안과 공익요원에게 응급조치를 받다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뒤 연대모임은 2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의 진상조사와 노숙인 객사를 막기 위한 응급의료체계 개선 및 노숙자 의료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했다. 아직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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