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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4 19:12 수정 : 2006.02.14 19:12

고법, 최종길 교수 유족에 18억여원 배상 판결…1심 뒤집어

“국가가 고문·조작과 사건 은폐 등 범죄를 저지르고도 시효가 지났다고 배상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법원이 30년 전 중앙정보부(중정·현 국가정보원)의 고문·가혹행위로 숨진 최종길 교수 유족들이 낸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국가 공권력에 고초를 겪은 피해자와 가족들이 배상을 받게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조용호)는 14일 최종길 교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국가의 불법행위가 인정되므로 국가는 유족에게 18억4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1년여 전인 지난해 1월26일 서울중앙지법이 “손해배상 시효가 지났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패소를 판결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칙적으로 최 교수 유족들의 청구권은 시효기간이 경과해 소멸했지만, 중정이 치밀하게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함으로써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까지는 유족들이 진상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으므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객관적 장애’의 사유가 있는데도 소멸시효를 주장하며 ‘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는가’라고 원고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서로 상대방의 신뢰에 어긋나지 않도록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민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민법)이 지나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예산회계법)이 지나면 없어지도록 돼 있다.

재판부는 “중정 같은 거대 국가조직이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직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고문 피해자를 오히려 국가에 대한 범죄자로 만든 사건에서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최 교수는 당시 중정 수사관들의 고문 등 가혹행위로 사망했거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이를 피하려다 사망했을 가능성, 또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그를 숨진 것으로 잘못 안 수사관들이 건물 밖으로 던짐으로써 사망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중정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허위발표를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중정 수사관 차아무개씨의 명예훼손 혐의와 관련해서는 차씨가 2002년 월간지 인터뷰에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을 인정해 “유가족에게 2천만원을 배상하라”며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고 최 교수의 아들인 최광준(42) 경희대 법대 교수는 “정의는 승리한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판결로 환영한다”며 “과거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반인권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사법부뿐아니라 행정·입법부도 함께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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