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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4 19:11 수정 : 2006.02.14 19:11

[기고]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던가. “진실은 마침내 밝혀지게 마련이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게 마련이다.” 최종길 교수 사건의 판결을 보면서, 낡고 진부한 얘기지만 이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에 너무 오래 걸렸고, 또한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 가족들이 겪었을 노심초사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사실 최종길 교수가 유신 초기 국가기관에 의하여 고문치사당한 사건을 놓고 그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는 그 진실을 밝히기가 이렇게도 어려운가, 정의를 바로 세우기가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 화해로 가는 길은 그렇게도 멀기만 한가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구체적 정황이야 아직까지도 낱낱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큰 틀에서 최종길 교수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데 30여년이 걸렸다. 최 교수의 죽음에 국가기관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사법부에서 인정받는 데도 그만큼의 세월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의한 공식적인 사과나 배상은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74년 12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최종길 교수의 죽음에 최초로 항의 섞인 의문을 표시했을 때, 1988년 형사소송법상의 공소시효를 앞두고 관련자들을 사제단이 검찰에 고발했을 때, 그리고 민주화된 이후 의문사 진상조사 과정에서, 최근의 1·2심 법원의 판결 또는 결정 때, 나는 “우리는 정녕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가” 하는 한탄과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를 빼놓고서라면 국가가 강도 집단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문민, 국민, 참여정부를 거치고 지나면서도 그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지난날 자신이 연루됐던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고, 총리까지 하는 사람이 민주화보상금을 타 먹으면서도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숨진 열사·의사의 명예를 높여주거나 억울한 신원을 풀어주는 데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다만 내 몫 찾기에만 열심이었을 뿐이다. 그 모든 것이 개개 가족들이 노력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최종길 교수의 고문치사 사건은 유신의 폭압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을 소문으로 들어 알면서도 우리들은 비겁하게도 애써 침묵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는 우리 역시 그를 죽인 공범이었다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의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고 그의 명예가 회복되며, 이 나라 이 공동체의 이름으로 그 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기까지는 우리는 부끄러웠고 또 죄인이었다.

이번 판결은 우리가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죄의식, 그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어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사법적 판단 이상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가, 국가기관이 비열하게도 소멸시효의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작태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는 점에서 법의 승리요, 정의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잘못한 점을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용기요, 국가 또는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새로운 출발점일 뿐 그 끝이 아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어났던 피해자들과의 역사적 화해가 다만 그 첫발을 내디딘 것일 뿐이다. 이 판결의 연장선 위에서 국가와 가해 국가기관은 공식적으로 최종길 교수 사건에 대해 역사와 국민 앞에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법적 판결을 구할 능력이 없거나 증거 등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의 신원은 어떻게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 가족에게 위로를,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한 재판부에 경의와 함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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