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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0 19:05 수정 : 2006.02.10 19:18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2부 정부살림 확대냐 축소냐 ① ‘큰 정부-작은정부’ 논란

올해 들어 양극화 해소가 국가적 화두로 떠올랐다. 양극화 해법과 관련해 ‘작은 정부, 큰 정부’, ‘증세, 감세’, ‘재원 확충 방안’ 등을 둘러싼 논란이 어지럽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검증 없이 대부분 여야 간의 정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이런 논쟁들이 자칫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키고 소모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양극화와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논쟁들이 생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논쟁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구체적인 실체 등을 집중 분석한다.

재정 총량보다 부문별 중요도와 비중 따져야
‘저출산 고령화 사회’ 심화 정부역할 고심할때
자원 효율배분 관점 ‘작지만 강한 정부’ 적합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새해 기자회견을 계기로 ‘작은 정부, 큰 정부’ 논란이 화두로 떠올랐다. 박 대표가 현 정권을 ‘큰 정부’로 몰아세우며 ‘작은 정부’로 가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모처럼 논쟁다운 논쟁이 벌어진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이분법적인 논란은 자칫 정쟁으로 흐를 소지가 많다고 지적한다.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를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자는 정치적 논쟁보다는,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느만큼의 역할을 할 것인지를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큰 정부, 작은 정부란?=작은 정부, 큰 정부는 대체로 정부 재정의 크기로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곧 충분한 재정을 바탕으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할 경우, 이른바 ‘큰 정부’로 부를 수 있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한 나라의 경제능력에 비해 재정지출 규모가 어떠냐에 따라 큰 정부와 작은 정부로 갈린다”며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좌파 성향의 ‘큰 정부’는 세금을 많이 거둬 정부가 직접 자원 배분을 하려고 하는 반면, 우파 성향의 ‘작은 정부’는 자원 배분을 시장기능에 맡기려 한다”고 정의했다.

큰 정부, 작은 정부를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은 정부가 민간부문에 대한 개입, 즉 규제를 얼마나 하고 있느냐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이 아직 실효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현정부를 규제가 많은 ‘큰 정부’라고 규정했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큰 정부, 작은 정부의 개념 규정은 이렇게 되지만, 어느 한 나라를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외국과의 비교나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큰 정부인지 작은 정부인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동연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은 “큰 정부, 작은 정부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옳지 않다”며 “정부 재정 중에서도 경제발전 관련 예산은 줄고 있지만 사회복지 분야는 늘고 있는데, 어느 분야를 보느냐에 따라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와 관련해서도 재계에서는 현 정부를 ‘큰 정부’라고 규정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간에 대한 규제가 과거에 비해 대폭 줄어든 사실을 감안하면 현 정부는 지속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정쟁으로 변질되는 논란=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대비시키며 국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듯한 이분법적인 논쟁이 일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새해 기자회견에서 “이제 작은 정부와 큰 정부 중 어느 길이 선진 한국으로 가는 길인지 국민의 선택을 받자”고 분위기를 띄웠다.


지향점이 다른 정당 간에 있을 수 있는 당연한 논쟁이긴 하지만 재정학자들은 이런 논쟁 구도가 자칫 소모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정훈 조세연구원 재정연구실장은 “큰 정부라고 하면 왠지 방만하고 낭비적인 요소가 많으며, 작은 정부는 뭔가 아껴쓰고 ‘슬림하다’는 호감을 갖게 한다”며 “따라서 큰 정부, 작은 정부라고 규정해 놓고 하는 논쟁 구도는 생산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작은 정부’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선점한 한나라당이 현 정부를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큰 정부’라고 몰아세우며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부문을 놓고 논의해야=재정학자들은 이분법적인 ‘작은 정부, 큰 정부’ 논란보다 세부적으로 어떤 부문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정부의 낭비를 줄이는 노력을 해가면서 돈 쓸 때는 써야 한다”며 “앞으로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될텐데 이런 부문에 대한 투자는 시장에서 할 수 없고 결국 재정이 맡아야 할 분야”라고 말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작은 정부’를 주장했을 때 같은 당 원희룡 최고위원이 “정부가 경제에 직접 개입한다거나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부문에서는 작은 정부로 가야 하지만, 복지 면에서는 정부가 커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 것도 이런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김동연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도 “저출산·고령화 심화, 세계화 진전 등의 영향으로 우리 경제구조가 어떻게 달라지고, 거기에 따라 어디에 얼마만큼의 재정이 필요한지를 면밀히 분석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며 “그런 뒤 증세냐 감세냐를 따져보는 게 순서”라고 지적했다.

작은 정부, 큰 정부보다는 ‘강한 정부, 약한 정부’라는 식의 접근이 더 타당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원이 빈약하기 때문에 정부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재정 규모가 클 필요는 없다”며 ‘작지만 효율적이고 강한 정부’가 우리 현실에 맞는다고 말했다.

결국, 시대 변화에 따라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달라지는 만큼 현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뒤, 그에 맞는 재정 규모와 재원 조달 방안 등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석구 선임기자 twin86@hani.co.kr

우리 정부 크기는

재정규모 GDP 대비 27.3%
OECD국 평균 40.8%에 크게 못미쳐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큰 정부일까, 작은 정부일까?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은 근본적으로 이념 논쟁이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 정부 규모를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논쟁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현정부의 규모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8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정부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큰 정부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정부는 예산을 통하지 않더라도 정책금융 배분과 금리 정책, 산업 정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경제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런 수단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재정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10% 후반~20% 초반으로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재정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당시 한국의 정부는 큰 정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시행되면서 정부의 기능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은행의 총대출금 가운데 정책금융 비중이 70~80년대 50% 이상에서 현재는 30%대로 줄었고, 금리와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도 크게 줄고 있다. 이런 수단들에 대한 활용이 갈수록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제는 재정지출 규모를 통해 정부의 규모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재정규모는 2004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27.3%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 멕시코에 이어 아래에서 두번째로 작은 규모이며, 평균 40.8%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스웨덴과 프랑스가 각각 58.2%, 54.5%였으며, 미국과 일본도 36%, 37.6%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국가들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일 때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재정규모는 작다. 스웨덴(1977년)과 프랑스(1979년)는 각각 59.2%, 45.3%, 미국(1978년)과 일본(1981년)은 각각 32.1%, 33%였던 데 반해 우리나라(2000년)는 23.8%에 불과했다.

조세 부담률로 살펴봐도 우리나라 재정규모가 작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원은 결국 국민들이 부담하는 조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평균 조세 부담률은 26.8%(2003년 기준)이지만 우리나라는 19.5%(2004년)다.

유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나 우리나라 재정규모가 작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는 선진국들이 주로 복지지출을 크게 늘린 반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복지지출에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일부에서는 준조세나 사교육비 등을 포함하면 조세부담률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절대적인 수준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며 “기본 통계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 논의가 객관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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