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북 보은 청룡산이 바라보이는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황토집에서 만난 도종환 시인. “산이 내뿜는 숨을 함께 쉬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았다”고 활짝 웃었다. 보은/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
3년째 신방서 요양하는 도종환 시인 시인의 집에선 누구나 쉬어간다. 사람 뿐 아니라 들짐승들까지 이 집에선 모두 고단한 숨결을 고르고 휴식을 얻는다. 충북 보은의 구구산방.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이 3년 전 병을 얻은 뒤 요양중인 황토집이다. 길조차 끊어진 산중에서 시인은 자신의 고단한 몸과 마음이 제자리를 찾도록 시간을 벌고 있다. 그 시간을 함께 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다. “저도 숲의 일부예요. 짐승들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겨울엔 개울 얼음을 깨 주죠. 개울쪽으로 난 짐승 발자국을 보면 도끼를 들지 않을 수 없어요. 잠깐만…. 저기 다람쥐가 왔네요.”
|
||||
20년 정신없이 살다보니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같은 생명의 눈으로
만물을 섬기는 법
자연이 가르쳐 주대요 시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으로 처마 밑을 가리켰다. 어른 주먹만한 다람쥐는 시인이 놓아둔 밤톨을 들고 몇 번 갉작이다 이내 밤을 들고 집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번엔 새울음 소리가 들렸다. “아, 저 새는…. 울음 울 때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는 것 같아요.”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람과 헤어져 일거리를 뒤로 하고 산방으로 들어온 지 벌써 3년째다. 그는 교사로, 시인으로, 운동가로 20여 년을 살았다. 어린 시절을 가난으로 힘들게 보냈고, 군복무 때는 광주항쟁 진압군으로 투입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80년대엔 줄곧 ‘운동권’이었다. 89년부터 전교조 활동을 하다 투옥과 함께 해직됐고, 98년 10년만에 복직했다. 기쁨도 잠시, 학교로 돌아간 지 5년 되던 해에 쓰러져 교단을 떠났다. 병 때문이었다. 이름도 낯선 자율신경실조증. 면역계통에 무리가 와 감기에 걸리면 몇 달이고 갔다고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지내며 학교 문화를 바꿔가는 데 한창 재미를 붙였을 때라 아쉬움이 큰 듯했다. “병도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 하지요. 힘에 부쳐도 싸워야 하는 일들이 있고, 한 20년 그렇게 지내면서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억압이 극단적이니까요. 싸우는 이도 있는 힘을 다해서 싸워야 했으니까요.” 처음엔 숲 속에 들어와 자신이 뭘 하고 있나 싶어 힘들었다고 했다. 명상을 해도 마음 밑바닥에서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던 시절, 그를 위로한 건 숲이었다. “세상에 등돌리는 것을 경계하면서” 혼자서 위태위태하게 견딘 시간이었지만 한편 축복이기도 했다. “숲에서 나무 한 그루, 토끼, 고라니도 하루치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시달리기도 하고, 두려워 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됩니다. 같은 생명의 눈에서 보면 만물을 섬기게 되죠.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관점에서 보면 인종, 계급, 성평등을 이루겠죠. 이런 평등한 관계가 평화롭게 유지되는 사회를 바랍니다.” 누군가 유리창을 두드린다. 젊은 집배원이다. 시인은 집배원을 집안으로 들여 땀을 닦게 하고 음료수와 설탕에 재운 딸기를 대접했다. 집배원은 신문 한 장, 엽서 한 장을 들고 첩첩산중까지 그를 찾는 손님이다. 직접 캔 산삼이며 산수유며 몸에 좋다는 열매들을 갖다준다고 했다. ‘손님’이 떠날 때 시인은 동화책 두어 권을 주며 쪽지에 적힌 주소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몸을 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제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동안 제자도, 동지도, 집배원도, 기자도, 다람쥐도, 산새도, 모두 그에게 들러 쉬다 갔다. 그만 홀로 남았다. 정작 쉬어야 할 그는 어느새 호미를 들고 집을 나섰다. 이제 텃밭의 시금치 이파리에 붙은 무당벌레가 그를 치유할 시간이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올해는 대궁 올려야지요” “올해는 저도 대궁을 올려야 할 텐데요. 그동안 쉬었으니까….” 집배원으로부터 “기력 모자란 산삼은 땅 속에서 2~3년 정도 힘을 모아 싹을 틔운다”는 말을 듣고 도종환 시인은 반가운 기색이었다. 요양을 하며 몸을 추스린 그가 비로소 대궁을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2월부터 도 시인은 아름다운 가게에 시를 기증하고, 그 시를 모아 시집을 펴내 인세를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모두 내놓기로 했다. “몸을 놀리는 것조차 불편했는데 시까지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싶어 시를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신을 낮추고 남을 돌보는 데 익숙한 그다. 그는 386세대들에게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자신이 숲에서 위로받았듯 사회 변혁을 위해 몸바친 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일부는 보상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받은 이들을 진심으로 인정해주는 자리가 드물다는 설명이었다. “도덕적 프리미엄조차 없어지고 능력 위주라는 이름 아래 기능주의적 관점에서만 그들을 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쉽다”고 그는 덧붙였다. 386세대 ‘동지’들에게 전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자기 존재의 확장과 강화에만 몰두하거나 도피하지 말고 옳다고 믿던 공공선을 향해 다져진 내공을 모아 큰 흐름을 이뤄야 합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면서 문명의 대전환을 이룰 때가 된 것 같아요.” 이유진 기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