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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7 18:01 수정 : 2005.05.17 18:01


‘도인’(道人)하면 스님이나 선도 수행자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당 등에서 동양적 가르침을 받고 자란 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이들 중에도 도인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삶의 ‘길을 갔던’ 이들이다.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표현보다는 ‘살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실천자들이다. 대형교회들처럼 비만하지 않고, 차돌처럼 단단하고 얼이 빛났던 영성가였고, 삶으로서 그리스도를 증언해 한국 기독교 영성의 뿌리가 된 선구자인 이들이다.

한신대 신학연구소의 김경재 소장은 이들을 ‘대승적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 ‘나만 천당에 가 구원을 받고, 복을 받겠다’는 이기적 신앙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산 이들이라는 뜻이다.

김 소장은 ‘대승적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노래’란 부제를 달아 <울타리를 넘어서>(유토피아 펴냄)에서 도산 안창호와 월남 이상재, 남강 이승훈, 규암 김약연, 고당 조만식, 성재 이동휘, 장공 김재준, 늦봄 문익환, 다석 유영모, 신천 함석헌을 ‘소승’의 울타리를 뛰어넘은 인물들로 꼽았다.

남강은 빈한한 집에서 태어나 8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에 아버지마저 잃었다. 10대에 유기점 사환으로 들어가 30대에 기업가로 성공한 남강은 뒤늦게 기독교와 민족에 눈을 떠 오산학교를 세워 인재들을 길러냈다. 그는 설립자였지만 머슴처럼 교사들을 섬겼다. 당시 이광수, 장지영, 유영모, 조만식 등이 교사였고, 이 학교에서 함석헌, 목사인 한경직과 주기철, 역사학자 이기백, 독립군 장군 김홍일, 시인 김억 등이 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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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영혼 깨우는 책2권
함석헌·이승헌·김교신등 조명

이화여대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백소영 박사는 ‘한국교회가 무교회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란 부제를 달아 <우리의 사랑이 의(義)롭기 위하여>(대한기독교서회 펴냄)를 내놓았다. 그는 무교회주의자 김교신과 함석헌을 깊게 조명했다. 그는 한국 개신교회를 세 형태로 분류했다. △기독교 자체보다 민족이 우선인 교회 △순수한 복음 전파에만 주력하는 교회 △기독교 계몽운동처럼 사회적 개혁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믿는 교인들. 그는 이 세 가지 틀 모두 서구 기독교의 틀과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같다고 평한다. 따라서 이런 한계를 넘어서 영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면서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정신을 찾는 이들이 만난 게 무교회운동이었다고 한다. 건물이나 제도가 아닌 그리스도의 정신과 삶을 따르는 ‘무교회’의 정신에 대해 그는 ‘세상을 초월하시지만 동시에 역사에 참여하시는 하나님 신앙에 기반을 둔 초월적 역사의식’으로 설명했다.

일본 유학 중 7년 간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모임에 참석해 ‘무교회’를 접한 김교신은 귀국 뒤 <성서조선>을 발간해 민족혼을 일깨웠다. 일제에 의해 <성서조선>이 폐간당하고, 옥살이를 했던 그는 출옥 뒤 고향 옆 흥남의 질소비료공장에서 일하면서 유치원, 학교, 병원을 세우고, 병든 노동자들을 돌보다 병에 감염돼 45살로 생을 마감했다.

“신라 말에 절이 성하여 불교가 망했고, 고려 시대에 송도 안에 절이 수백을 셌는데 그 후 불교도 나라도 망했고, 조선 때 서원을 골짜기마다, 향교를 고을마다 지었는데 유교와 나라가 또 같이 망했다. 우리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애굽도 그렇고 바빌론도 로마도 그렇다. 그럼 성전이 늘어 가면 망할 것은 누구인가?”

백 박사는 함석헌의 외침을 인용해 한국교회가 무교회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 신선한 숨, 생기 있는 숨을 다시 쉬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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