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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1 18:27 수정 : 2008.08.21 18:27

석불암 대정 스님(사진)

하늘이 감춘땅 (25) 무등산 석불암

그가 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곁에 없는 때가 많았다. 잠에서 깨어나 “엄마, 엄마!”를 부르며 울다 지쳐서 다시 깨어나곤 했다. 사업이 망한 아버지 대신 일곱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하러 나간 어머니는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서 소년이 되고 그 소년이 자라 머리를 깎고 출가승이 되었다. ‘해탈 성불’해 중생을 구제하고자 출가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어머니는 7남매를 낳았지만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누구 하나 모실 사람도 없었다.

대정 스님 ‘아들’로 산 17년
어머니 떠난 빈자리에
어머니 닮은 산만 덩그러니

그는 ‘지장보살은 자신의 성불을 뒤로 미루고 모든 중생을 지옥에서 구원하겠다고 나섰는데,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 한 분도 구하지 못한대서야 될 말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인사 강원을 갓 졸업한 그가 해인사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든 곳이 이 깊고 깊은 산중이었다. 무등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다. 어머니 젖무덤처럼 둥그렇고 덕스러워서다. ‘무등’은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자성의 본래 면목은 상(相)이 없기에 너나가 없고, 높낮이도 없다. 그러니 자식에 대한 어머니 마음에 등급과 차별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무등산은 뒤로 돌아가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흙밖에 없는 듯한 토산 위에 바위 가운데도 가장 신비스러운 바위를 다 모아놓은 듯한 서석대와 입석대, 규봉의 빼어남은 육당 최남선이 “금강산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비길 경승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광주학생의거와 5·18의 힘을 품었을 만한 곳이다.

석불암은 그런 경승 속에 숨어 있다. 석불암 대정 스님(사진)은 수줍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어머니를 모시려 누구도 찾아오거나 들여다보기 어려운 이 깊은 산골로 와서 17년을 살았으니, 세상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 어머니가 몇 달 전 세상을 떴다. 그는 이제 혼자다. 홀로된 자의 깊은 고독이 그의 눈동자 속에 잠겨 있다.


어머니가 건강했던 처음 10년은 단꿈을 꾸듯이 행복했다. 그런데 2000년 어머니가 병들어 자리에 누웠다. 그 이후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날까지 그는 어머니의 손발이 되어야 했다. 자리에 누운 어머니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건 슬픔과 외로움이었다.

석불암의 본찰이던 규봉암.
어머니는 처음 병들었을 때 울기만 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한 해 두 해 세 해 …. 어머니는 오래도록 울었다. 그것이 선승인 아들보다 더 한 투지로 화두를 붙들고 씨름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몸부림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누워 있는 쪽에서 한숨인 듯 독백인 듯 무슨 말이 들려왔다.

“어디로 가려느냐?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

화두선에서 가장 유명한 공안 중 하나가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다.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냐’다. 이 몸뚱이를 벗고 나면 우리는 과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온 곳도 모른 채 왔다가 갈 곳도 모른 채 죽어야 하는 슬픔에 몸부림치면서 그 화두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렇게 운 지 수년 만에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생사의 큰 고비를 맞았다. 그 뒤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대신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외로워하던 1년 뒤 어머니는 두번째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그뒤로는 더 외로워하지도 않았다. 말똥말똥하게 눈을 뜨고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무슨 생각 하세요?”

“아무 생각 안 해.”

“마음이 어떠세요?”

“평안하다.”

실제 어머니의 얼굴은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 한 분 구제를 위해 일평생을 다 바쳤던 그의 소원을 어머니가 이뤄준 것이다. 그는 환호작약했다. 이제는 어머니가 목숨줄을 놓아도 여한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숨을 몰아쉰 뒤 그가 온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큰 슬픔 속에서도 지극한 환희를 느꼈다.

그런 그의 삶을 뉘라서 출가승의 ‘외유’나 ‘일탈’로 치부만 할 수 있을까. 석가모니도 도를 이룬 뒤 자신을 낳은 지 이레 만에 몸을 벗은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도리천에 올라가 설법을 했고, 부처님의 10대 제자인 목갈리나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어머니를 보고 애타하다 부처님의 도움을 받아 구제했다고 전한다.

꼭꼭 숨은 석불암에서 대정 스님과 함께 밖을 엿보니 장불재다. 대정 스님은 ‘장불’(長佛), 즉 길게 누운 부처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차별 무등등하게 상처받고 고통받는 모든 이를 품어주는 부처의 넉넉한 모습이다.

우리는 어느 아픈 이의 약사여래가 되며, 어느 누구의 ‘어머니’가 되랴. 저 장불재처럼, 무등산처럼. <끝>

무등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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