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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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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1년’ 종교 화해 해법찾기
오는 19일로 분당샘물교회 봉사단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무장세력들에게 피랍돼 전 국민을 42일간 큰 충격으로 몰아넣은 아프간 사태 1돌을 맞는다.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살해당하고 19명이 풀려나기까지 42일 동안 한국 개신교는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상대국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배려 없이 선교 열의만 앞서 자신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종교 분쟁지역에서 갈등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미국에 이은 ‘국외 선교 2위국’이며, 실제적으로는 세계 최대의 선교 역량을 보이고 있다는 교회 내적 자부심을 키워왔던 한국 교회도 큰 상처를 입으며, ‘선교’와 ‘종교 간 대화’에 대해 새롭게 토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프간 사태 1돌을 전후해 그런 갈등과 아픔을 넘어 종교간 화해와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두 개의 세미나가 열려 시선을 끌고 있다. 아시아 분쟁지역 종교 세미나“봉사 앞세운 선교는 지양해야” ■ 종교 분쟁의 해법 찾기 서울 소피텔앰버서더호텔에서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초청을 받은 아시아 분쟁 지역의 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1돌을 맞아 17∼20일 일정으로 ‘충돌과 대화-갈등 지역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한 아시아 종교인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국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국제구호단체인 제이티에스(JTS) 구호팀장으로 지난 2002년부터 3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체류한 바 있던 류정길 평화재단 기획실장은 발제에서 “일반적인 엔지오나 서구 기독교단체들의 제3세계 봉사가 고통받는 이들의 구호와 봉사, 평화만을 위한 것이라면, 한국 개신교 선교단체들은 이런 공식적인 목적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궁극적인 목적’을 선교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면서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파견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념을 펼치기 위해 봉사나 구호 활동을 이용하는 것은 ‘굶어 죽어가는 사람의 약한 처지를 이용해 그들의 신념을 바꾸게 하려는’ 잘못된 자세이며, 그런 활동은 평화와 화해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며, 활동을 잘하고 있는 다른 일반 엔지오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 실장은 특히 “모든 분쟁과 갈등은 ‘나만이 유일하게 옳으며, 너는 틀렸으므로 설령 전쟁과 폭력이 동원되더라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다”며 “이런 우월적 생각으로 하는 선교가 선교라는 이름의 종교적 공격이며, 봉사라는 이름의 공동체 파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라크 알하킨재단의 세이드 후세인 알하킨 사무총장은 종교 분쟁에서 ‘중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 분쟁의 원인으로 △타 종교와 종파에 대한 배타적인 경향 △경전의 잘못된 해석에 의해 극단주의자들로 하여금 과격하고도 종교적, 분파적 불신 문화를 보급하게 하는 것 △중도주의적 입장의 미디어 부재로 이라크의 현실과 실상에 대한 보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았다. 따라서 그는 “다양한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계층의 중도적 입장과 목소리를 함양하고, 대화문화를 널리 보급해 극단주의와 다른 이념에 대한 배타적 입장을 지양하는 것 등을 분쟁 해결책으로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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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대회에서 유영모-함석헌 사상에 대해 발표할 씨알사상 연구학자들과 박영호 선생(왼쪽에서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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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명 소통의 지혜 찾아 ■ 동서 종교문명, 상극인가 상생인가 4년마다 한 번씩 열려 철학자들의 올림픽이라는 ‘제22차 세계철학대회’ 한 분과에서는 동서 종교문명을 회통시킨 ‘유영모-함석헌 사상’이 발표된다. 한국 내에서도 비제도권에 있던 유영모·함석헌의 사상이 문명사적 전환의 세기에 세상에 희망을 줄 새로운 철학으로 세계 시장에 등장하게 된 셈이다. 기독교와 서양 철학 뿐 아니라 유·불·선·도 등 동양사상에 정통했던 함석헌(1901-1989)과 그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1890-1981)는 이들 가르침의 정수를 관통하는 진리를 체득해 체험적 삶으로 이를 시현해 보인 독특한 사상가들로 꼽힌다. 이번 대회를 준비해온 씨알사상연구소 박재순 소장은 “처음엔 너댓명만으로 발표자를 짤 예정이었으나 20여명의 저명 학자들이 발표하기에 이르렀다”며 “그간 물밑에서 씨알사상을 연구해온 토양이 갖춰지고 있었던 셈”이라고 밝혔다. 지난 15일 씨알사상연구소가 있는 서울 장충동 우리함께빌딩에 모여 발표 요지를 점검한 박 소장은 “함석헌은 동양종교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이성철학(과학정신),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운동을 벌이면서 세계평화철학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는 “함석헌은 세계 보편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깊은 민족주의 사상가이기도 했다”며 “역동적인 서양과 심오한 동양의 사상을 종합하는 데 노력한 그의 사상의 특징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신대 철학과 이정배 교수는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이기상 등으로 이어지는 다석학파의 기독교 이해를 보며 일본 교토학파의 불교적 기독교 이해와 견줄 만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서 “교토학파의 무게 중심이 불교에 있는 것에 비해 다석 사상은 한국적 사상체계에 바탕한 기독교 이해라고 볼 수 있다”고 정의했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는 “함석헌 연구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서구 기독교적 문명과 동아시아 문명의 심층적 만남이 어떻게 보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의 근대적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시민주체적 정치사회 변혁의 원동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분출되었는지 그 보이지 않는 정신적 지하수맥을 찾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자리에 참석한 다석의 제자 박영호 선생은 “정신과 물질문명의 괴리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고등 사상의 출현을 고대했는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등사상을 다석-함석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의 갈등과 전쟁과 위기를 낳고 있는 것은 ‘배타-다원-영성’의 종교 가운데서 가장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배타주의’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고, 낮은 단계의 종교가 고등 종교를 치기 때문이고, 예수도 그런 배타주의에 죽음을 당했다”면서 “각 종교 속에 있는 배타·다원·영성 가운데 영성주의 종교가 부활되어야 인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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