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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14 19:34 수정 : 2008.01.14 19:38

〈그래도 희망입니다〉

문규현 신부, 홍성담 화백 그림 담아 ‘그래도 희망입니다’ 펴내

지난 2003년 세 발자국 걷고 한 번 엎드려 절하는 삼보일배로 부안에서 서울까지 아스팔트 길 위에서 65일을 보낼 때 문규현 신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고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그의 얼굴에선 평화의 기운이 늘 함께했다. 보일 듯 말 듯 한 그의 웃음은 야만의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한 떨기 풀꽃이었다.

그 풀꽃 같은 책이 나왔다. 〈그래도 희망입니다〉(현암사 펴냄·사진)이다. 문 신부가 글을 쓰고, 또 한 명의 예언자인 홍성담 화백이 그림을 그렸다. 때로는 우리의 완고한 틀을 뒤흔들고 때로는 생명의 잔치를 찬미하는 찬가 같은 홍 화백의 그림이 생명의 산이라면 문 신부의 글은 그 산에서 솟아나는 옹달샘이라고나 할까.

문 신부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만큼 강고해 보였던 독재의 철벽 앞에서도 움츠리지 않은 산 같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과연 잘될까?’, ‘상처 받고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우리를 그냥 이대로 살라고 유혹한다”며 “그러나 열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며, 용기는 늘 두려움과 함께 간다”고 했다.

그는 또 “용기는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사랑의 표현”이라며 “ 안전함과 편안함 속에 머물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자신의 영역 속에만 있기를 고집할수록, 아무런 용기를 낼 필요가 없는 듯한 순간일수록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규현 신부
그러나 정작 그가 말하는 용기는 상대를 향하기보다는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맞닥뜨리더라도 피하고 외면하면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며 “이 악물고 아픈 현실과 마주 서야 한다”고 했다.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새 살이 돋아나도록 응원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몫이며 내 안에 힘이 생기고 튼튼해져야 화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를 타협을 모르는 싸움꾼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기심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 자연을 향한 그의 기도문에서 ‘길위의 예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기도와 기대는 다르다고 말한다. 기도는 나를 움직이게 하지만 기대는 타인을 향하기에. 그래서 기대는 다른 이가 뭔가 해 주길 바라기에 자칫 불화와 집착과 슬픔을 키우지만, 기도는 나를 변화시켜 길을 찾게 하기에 가진 것에 감사하고 모든 긍정적 가능성 앞에 자신을 활짝 열어두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런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런 성직자가 있다는 것은 분명 이 시대에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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