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24 18:40
수정 : 2006.10.24 18:40
영국 ‘형제들의집’ 정신적 지도자 아놀드 ‘평화주의자 예수’ 발간
슬픔과 고통이 더는 존재하지 않고 평화로운 인생과 모든 피조물이 갈망하는 에덴동산은 왜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수천 년 전 히브리 예언자인 이사야가 말한 대로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어노는 평화의 왕국’은 망상일 뿐일까.
많은 이들이 평화를 얘기하지만, 강자의 강요된 평화 속에 더욱더 고통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며, 그 강자들의 상당수가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에 기초하기에 〈평화주의자 예수〉(샨티 펴냄)의 발견은 더욱더 간절해진다.
이 책은 영국 브루더호프(형제들의 집)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썼다. 브루더호프는 예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만 소박하고 비폭력적으로 살려는 이들에 의해 1920년 독일에서 출발했다가 나치의 박해로 추방돼 영국에 정착했고, 현재 세계에 8개의 공동체마을이 있다.
아놀드는 먼저 ‘정치적 평화’의 허점을 짚었다. 평화는 협정과 조약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해결하려는 갈등보다 더 악화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되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베르사유 조약이 국수주의를 부추겨 2차 세계대전을 야기하고,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얄타 회담이 냉전 갈등의 연료가 된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증오가 사라지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평화는 ‘전쟁의 부재’ 같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예수의 말은 그리스도교인과 강자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아놀드는 “이는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직면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고, 거짓 관계를 무너뜨리고, 가짜 평화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그러면서 하느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기꺼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약자의 편에 서며, 약자를 하나님처럼 섬겨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놀드는 “이 세상이 평화롭지 못한 이유는 우리 자신이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평화롭지 못한 채 마음속에 여전히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간직하고 있다면 전쟁을 잠시 그친다 하더라도 다시 무기와 핵폭탄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놀드는 “전쟁과 폭력의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선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 평화를 이루려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스스로가 평화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진권 옮김.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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