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2 20:13
수정 : 2019.12.03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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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제우 사무국장은 늘 뒤에서 궂은 일을 챙길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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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전제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사무국장 2주기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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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제우 사무국장은 늘 뒤에서 궂은 일을 챙길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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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앞자리에서 빛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앞자리가 아닌 곳에서 자기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이들을 빛내주고, 있는 듯 없는 듯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 고통 받고 아픈 이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기꺼이 손 내밀던 사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8년간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전제우(프란치스코·1971~2017)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늘 배낭을 메고 손에는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동분서주하던 그의 모습이 아련하다. 말도 별로 없고 수줍게 배시시 웃기만하며 낯을 가리는 듯 보이지만 가끔 말문이 터지면 쫑알쫑알 귀엽게 수다를 떨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2013년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 매일미사 때부터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다. 내가 천주교 수도자장상연합회에서 생명평화분과장을 맡아 많은 현장에서 마음을 모아 연대할 때 그도 늘 함께 했다. 용산참사현장 매일미사, 4대강 사업저지 국회 앞 매일미사,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 앞 매일미사, 광화문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매일미사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들이 떠오른다.
현장에서, 거리에서 반드시 필요한 마음들을 모아내는 거리 미사를 봉헌 할 때, 사람들은 앞에 서 있는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은 잘 보지만 그 미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잘 볼 수가 없다. 제우는 미사 시작 전 음향기기를 설치하고 의자를 깔고 미사도구를 가져와 제대를 차리고 참석자들에게 미사 순서지를 나누어 주는 일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미사 중에는 수 백장 사진을 찍고 매일 저녁 그날 미사의 사진과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기록 작업을 끝내고서야 하루 일과를 마쳤다. 이런 과정을 다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아는 사람들은 그의 노고가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 또렷이 기억한다.
2014년 내가 병을 얻어 수술을 하고 2년간 치료와 요양을 하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며 걱정해주던 이가 제우였다. 그런데 2017년 투병 생활을 끝낼 무렵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평소 깔끔한 성격처럼 누구에게도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보낼 수 없어 병원을 찾아갔지만 그는 만날 수 없었다. 병실 입구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도하고 돌아온 날이 그렇게 마지막이 되었다. 그를 보내던 날은 유난히 맑았는데 아마 그가 살다 간 삶이 맑아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지난달 23일 지인들이 제우를 기억하는 모임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제우의 친구들은 진주에 잠들어 있는 그를 보러 다녀왔다고 한다. 지난 여름 발령을 받아 베트남 다낭에 머물고 있는 까닭에 함께 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나마 전한다.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죽은 다음이라고 했던가. 우리 곁에 짧게 머물다 간 제우이지만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곁에 머물며 오롯이 마음을 내어주었고 희망이 없어 보여도 희망을 희망하며 낮은 자리를 택해 살아온 그의 삶은 오래오래 진하고 향기롭게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던 전제우, 늘 그 자리에서 다른 이들을 빛내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온 그에게 생전에 다 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별이 되어 내 곁에 있는 프란치스코야! 고맙고 사랑한다.
김영미 엘리 수녀 ㅣ 천주섭리수녀회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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