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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9 02:53 수정 : 2019.08.19 07:43

우리곁 떠나신 지 그새 70일 훌쩍
김 대통령님 기일되니 새삼 ‘허전’
“곱고 예쁘신 마지막 모습 가슴에”

‘3·1사건’ 석방운동때부터 40여년
‘구속자 부인 삼총사’ 중에서 막내
“선생님은 투쟁방법…저는 행동대”

[가신 이의 발자취] 이희호 선생님을 다시 기리며

1976년 ‘3·1 구국선언 사건’ 재판 때 구속자 부인들이 가슴에 십자가를 새긴 원피스를 맞춰 입고 시위를 펼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희호·박영숙, 뒷줄 왼쪽 김석중·이종옥.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희호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두 달이 훨씬 넘어갔습니다. 그새 김대중 대통령님 10주기를 맞으니 그리움이 다시금 솟구칩니다. 지금도 동교동에, 어쩌면 병원에 계신 것만 같습니다. 당장 가서 뵙고 싶은데 안 계시네요.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 그러나 우리 모두 젊었던 그 시절부터 40여년, 억압과 탄압의 슬픈 나날을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배려 속에 잘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오늘 두 분의 부재를 실감하면서 그 아픔의 세월이 새삼 떠오릅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일’로 졸지에 남편을 빼앗긴 가족들이 고통의 세월을 함께 겪어야 했습니다. 1976년 명동성당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때 처음 뵈었지요. 그로부터 ‘80년 김대중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80년대 민주화 투쟁 내내 구속자 석방운동을 함께 하면서, 이희호 선생님과 박영숙(안병무 교수의 부인·전 살림이재단 이사장), 그리고 저 이종옥(이해동 목사의 부인)까지 세명을 중앙정보부는 ‘삼총사’로 불렀다지요. 박영숙님도 벌써 6년 전에 앞서 떠가고, 선생님마저도 가셔버리니 저만 혼자 남아 이렇듯 보고 싶은 그리움에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네요.

갇힌 남편들의 투쟁을 잇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머리 맞대고 의논할 때, 선생님은 늘 놀라운 지혜로 기발한 투쟁 방법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1 사건’ 때 30대 후반으로, 맨 막내였던 저는 늘 행동대로 따르기만 했었지요.

선생님, 너무도 그립습니다. 그 많은 추억들을 이제 누구와 나눌까요? 선생님을 외부와 격리시켜 만나지 못하게 할 때에도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기필코 만나곤 했었지요. 동교동에 가택연금당해 계시던 시절, 한번은 선생님이 어머님 기일에 필동 오빠 집으로 나갈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박영숙과 제가 미리 가서 기다렸지요. 선생님의 얼굴을 본 순간 무슨 첩보작전에 성공한 듯 벅찬 기분이었습니다. 1982년 9월 선생님 60회 생신(회갑)을 축하할 장소를 얻지 못해 은평구 진관외동에 있던 예춘호 선생의 농장에서 바닥에 신문지 깔고 선생님께 절을 올렸야 했을 때, 유난이 더운 날이어서 축하 케이 햇볕에 질질 녹아내렸지만 우리는 마냥 즐거웠었지요.

올들어 선생님의 노환이 짙어져 병원에 계시던 마지막 두 달 남짓 동안, 세째 아들 홍걸과 세 며느리, 그리고 저희 부부가 함께 모여 매주 화요일 오후 예배를 드렸지요. 그렇게나마 선생님의 고통을 나눌 수 있었음이 이제와 돌이켜보니 큰 위로였습니다.

이종옥(오른쪽)·이해동(왼쪽) 목사 부부가 지난 13일 고 김대중 대통령이 1980년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했던 청주교도소를 방문했다. 사진 행동하는양심 충북모임 제공
운명하시던 지난 6월 10일, 그날도 위중하단 소식에 오후 4시무렵 저희 내외 병실로 달려가서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쉬는 선생님 모습 뵈며 가족들과 함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밤 11시30분 조금 지나 끝내 운명하셨다는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한걸음에 병실로 달려가니 선생님은 잠든 듯 곱고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훌륭한 일생을 살아내셨기에 그처럼 평안하게 쉴 수 있겠지요. 문득 그런 선생님 곁을 지킬 수 있는 행복함에 감사 드렸지요. 그러나 이내 아직 따스한 체온이 채 가시지 않은 선생님의 몸을 수습하여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하던 순간은 가슴이 녹아내리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리도 예쁘고 고우셨던 모습, 언제까지나 저희들 가슴에 깊이 담아 두렵니다.

선생님, 하늘에서 김 대통령님과 함께 이 나라를 지켜주시겠지요. 지금 나라가 몹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두 분이 그리도 원하시고 애쓰셨던 올곧은 민주주의와 남북간 민족화해평화의 성취를 위한 삶을 저희도 이어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부디 ‘영원한 동행자’ 김대중 대통령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소서.

이종옥/이해동 목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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