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08 09:48
수정 : 2018.08.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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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으로 8일 세상을 떠난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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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새벽 지병으로 눈감아
새로운 시도 적극 옹호한 평론가
미문에 담긴 분석·통찰력의 독보
평론보다 번역에 더 공 들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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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으로 8일 세상을 떠난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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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가 8일 오전 4시2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
고인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고려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남대와 강원대를 거쳐 1993년부터 모교에서 가르쳤으며 2010년 8월 정년퇴직했다. 별도의 등단 과정 없이 1980년대 말부터 평론을 발표해 <말과 시간의 깊이>(2002)와 <잘 표현된 불행>(2012) 두 평론집을 펴냈다. 그가 평론보다 더 공을 들인 것은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와 이론서 번역이었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 등은 물론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그의 번역 목록에 들어 있다.
2000년대 중반, ‘미래파’라는 이름으로 불린 난해하고 도발적인 젊은 시인들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을 때 황현산은 시인들의 새로운 시도를 적극 옹호하고 해명하는 쪽에 섰다. 이렇듯 새로운 시도에 호의적인 문학적 태도와 깊이 있는 작품 분석, 특유의 평이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은 젊은 문인들 사이에 일종의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문단의 범위를 넘어 그의 이름을 독자 대중 사이에 널리 알린 것은 2013년에 낸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였다. <한겨레>에 쓴 칼럼 등을 모은 이 책으로 그는 일약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책은 6만부 남짓 팔렸다. 숨지기 얼마 전인 지난 6월에 낸 두 번째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역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황현산의 비평은 독보적인 미문과 정교한 분석 능력, 문학과 세계를 아우르는 깊은 통찰력을 자랑한다. 미래파에 대한 옹호와 상징주의 및 초현실주의 번역에서 보듯 그는 미학적 전위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현실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냄으로써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하려 한다”는, 초현실주의에 대한 그의 평가는 초현실주의와 상징주의는 물론 모든 미학적 실험과 전위의 의미와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즈음 상당수 비평가들이 외국 학자들의 까다로운 이론이나 개념을 앞세워 일반 독자를 소외시키는 평론을 남발했던 것과 달리, 황현산의 비평은 평이한 용어와 유려한 문체로 명쾌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그 자신은 평론이나 칼럼보다 번역을 자신의 본업이라 여긴다고 말했지만, 그의 비평과 산문이 문단 안팎에서 거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은 까닭이 이런 그의 글쓰기의 특징에 있다 하겠다.
“낮이 논리와 이성, 합리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직관과 성찰과 명상의 세계, 의견을 종합하거나 이미 있던 의견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좋은 시간이다.”
<밤이 선생이다>를 낸 뒤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은 밤이라는 시간대에 대한 설명이자 문학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문인 시국선언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 등에 참여하는 등 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소극적이지 않았지만, 문학과 정치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견지했다. “실제 현실에서는 구체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하지만, 작품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 함은 인간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작지만 오래 영향을 주어서 인간 자체를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문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라는, <한겨레> 인터뷰 발언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생전에 낸 마지막 책이 된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 이례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책 제목에 담은 것과 관련해 그는 지난 6월 말 <한겨레>와 통화에서 “책 제목에 이름을 넣는 것이 약간 부담이 되긴 했지만, 세상에 대해 사소하게 말을 거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그리고 그 사소함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무게감을 싣는다는 뜻에서 편집자의 제안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문화 행정가로 변신을 꾀했지만, 2015년 수술을 받았던 담도암이 악화해 올 2월 사직했다. 그는 대산문학상과 한국작가회의 아름다운작가상, 팔봉비평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0일 오전 10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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