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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1 19:03 수정 : 2018.06.11 23:03

지난 2017년 12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겸산 최영도(오른쪽) 변호사의 저서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 출간 축하모임에서 박찬운(왼쪽)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여러 역작을 펴낸 겸산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간기념회를 하면서 박 교수에게 직접 사회를 부탁했다. 사진 박찬운 교수 제공

[가신이의 발자취] 겸산 최영도 변호사의 영면을 기원하며

지난 2017년 12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겸산 최영도(오른쪽) 변호사의 저서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 출간 축하모임에서 박찬운(왼쪽)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여러 역작을 펴낸 겸산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간기념회를 하면서 박 교수에게 직접 사회를 부탁했다. 사진 박찬운 교수 제공

지난 9일 토요일 오후 적막한 연구실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제 평상심을 와르르 무너뜨렸습니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께서 갑자기 세상을 뜨셨습니다. 변호사님은 1990년대 초반 민변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이래 제 인생의 길잡이였습니다. 아니, 이 시대 모든 법조인의 표상이었습니다. 황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오늘 먼 길 떠나신 변호사님을 추모하며 이곳에 몇 자 적습니다.

변호사님은 1970년대 초 폭압적인 박정희 정권에 의해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재야 법조인이 되어 인권변호사로 외길을 걸으셨습니다. 민변 회장과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옹호에 앞장섰고,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아서 인권문제를 시민운동의 지평으로 확장시켰습니다. 국가인권위 시절엔 저도 인권정책국장을 맡아 함께 힘을 보탰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님의 삶을 법률가로만 한정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님은 법률가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전인적 지식인의 풍모를 한껏 발휘한 분입니다. 참된 지식인이라 함은 자신의 주업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과 자연 그리고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와 정열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런 지식인은 생업과 관련된 공부만이 아니라 문학·역사·철학·예술을 공부합니다. 제가 아는 변호사님은 법조계에서, 아니 우리 사회 전체에서, 그런 향학열을 누구보다 뜨겁게 품고 사셨습니다. 후배 법조인들에게 부족한 인문학적 향기를 물씬 풍겨주신 분이었습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 왼쪽부터 박찬운 인권정책국장, 최영도 인권위원장, 곽노현 사무총장.
아마 이것은 변호사님의 남다른 어린 시절과 청장년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변호사님은 코흘리개 시절부터 ‘국전’ 관람을 하였고, 국립박물관을 무상출입하였다고 합니다. 보성학교에선 간송 전형필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습니다. 판사 시절 일본의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책을 통해 ‘한국 제1의 불교미술’ 경주 석굴암을 만난 다음 40년 이상 국내외의 불교유적을 답사했습니다.

변호사님은 이 나라 최고의 토기 수집가로서 돈이 생길 때마다 아낌없이 투자해, 사라져 가는 토기를 모았고, 그 전량 1700여점을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용산중앙박물관에 있는 ‘겸산 최영도관’을 찾아주십시오. 변호사님이 수집한 귀한 토기 문화재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변호사님의 미술과 음악 감상은 전문가 수준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변호사님이 쓴 두 권의 책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와 <참, 듣기 좋은 음악>은 미술과 음악에 얼마나 조예가 깊은 지를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변호사님은 자타공인 문명여행가였습니다. 세계 곳곳의 문명 발상지를 틈만 나면 직접 발로 밟았고 그것을 유려한 글로 남겼습니다. 지난해 말 출판한 800쪽의 책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기파랑 펴냄)가 바로 그 결정판입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선 혜초 스님이 되었고, 둔황에선 소설 돈황의 주인공 조행덕이 되어, 아름다운 명사산과 월아천을 뒤로 한 채, 불교미술의 보고 막고굴을 탐사했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연민으로 밤을 새우고, 또 한편으론 예술을 알고, 문명 발상지를 찾아 세상을 주유한 이가 바로 최영도 변호사님입니다. 법조인들에게 품격 있는 지식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 진정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분이 오늘 우리 곁을 떠납니다. 변호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부디 영면 하소서! 당신의 삶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박찬운/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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