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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3 20:50 수정 : 2017.07.23 21:39

지난 7월8일 별세한 천이두 선생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영정.

【가신이의 발자취】 하남(何南) 천이두 선생 영전에

지난 7월8일 별세한 천이두 선생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영정.
마른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일 하남 천이두 선생께서 이 세상을 떠나셨다. 향년 89. 햇빛 쨍쨍한 그날 오후 빈소에 걸린 흑백 영정 속에서 선생께서는 한참이나 젊은 얼굴로 웃고 계셨다. 마치 내가 처음 선생을 뵌 1973년으로 다시 돌아간 듯했다.

나는 그때 대학 2학년 때였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뻣뻣이 일어선 머리카락 그리고 크고 맑은 눈. 선생은 마치 소년과 같은 인상을 갖고 계셨다. 선생은 강의실에 들어오시자마자 교탁 양끝에 두 손을 짚고 학생들을 쳐다본 뒤 혼자 꾸벅 절을 하셨다. 그게 곧 강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그때 선생은 자신의 저서인 <한국현대소설론>을 강의하셨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만 적힌 사람들의 글만 배우다 대학에 와서 저자로부터 직접 강의를 듣는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 선생은 <시문학>에 ‘지옥과 열반’이라는 서정주론을 연재하시기도 했다.

1974년 가을 유신 반대 데모가 한창인 때 나는 입대했다. 이듬해 휴가를 나와 보니 선생은 전북대 교수직에서 해직당해 만경여고 국어교사로 계셨다.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다. 아직 어려 철모르는 제자에게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만, 하루아침에 교수직에서 쫓겨나 고교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야만의 세월을 견디던 그때 아마도 선생의 간장의 절반은 썩어 내렸을 것이다.

선생은 판소리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소리꾼 중에서는 근세 최고의 명창이었던 임방울을 좋아하셨다. 술이 거나하면 북을 갖다 놓고 직접 임방울의 ‘쑥대머리’ 한 자락을 부르시기도 했다. 후에 알고 보니 선생은 어린 시절 옆집에 남원 명창 김정문의 제자가 살고 있어서 북 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선생은 회갑기념 논문집 봉정식에서 답사를 통해, “나는 육십 평생 한(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에 골몰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하셨다. 그때서야 나는 선생의 깊은 속내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평안한 듯, 맑은 듯했지만 내면에는 그야말로 60년 동안이나 다스려온 한의 심연이 일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60년을 다스린 한은 결국 선생의 최고 역작인 <한의 구조 연구>(문학과지성사, 1993)로 열매를 맺었다.

선생은 처음에는 한을 부정적인 것,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였으나, 차츰 긍정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문학적 미학적 개념으로부터 한국 문화 전반에 관한 개념, 혹은 윤리적 개념으로 거듭거듭 그 외연을 넓혀갔다. 그때마다 각각의 한을 탐구하는 대상도 소설에서 시로, 다시 판소리로 확산을 거듭했다. 선생의 한론(恨論)의 요체는 미학과 윤리, 다시 말하면 예술과 인생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선생의 한론은 훌륭한 인생의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호 ‘하남’(何南)에 대해서 선생은 ‘어찌하여 남쪽인가, 남쪽은 어디일까 궁금해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선생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대해 끝없이 묻고자 하셨던 것이다.

2016년 5월9일 더민주당 의원 시절 문재인(왼쪽) 대통령이 전주시내 한 요양원을 방문해 병상의 천이두 선생을 위문하는 모습. 사진 <전북포스트> 제공

2016년 5월9일 천이두 선생 병문안을 마친 뒤 문재인(앞줄 오른쪽 둘째) 의원과 전북작가회의 일행들이 함께 했다. 앞줄 왼쪽 둘째가 필자 최동현 교수, 뒷줄 맨왼쪽이 고인의 아들 천상묵 원장. 사진 <전북포스트> 제공
지난해 5월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 의원과 함께 전주의 요양원에서 선생을 문병하였다. 10년 넘은 투병 끝에 의식은 없었지만 선생의 얼굴은 맑기만 했다. 영원히 맑은 얼굴로 남을 것 같던 선생께서 이제 영면하셨다. 선생과 함께 한국 문단의 역사의 한 자락이 저물었다.

최동현/군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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