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26 19:34
수정 : 2017.03.26 21:21
소설가·여성운동가 허근욱씨 별세
부친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허헌
언니 허정숙·남동생 허종 고위간부
‘내가 설 땅은 어디냐’로 큰 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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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허근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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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근욱씨의 부친 부친 허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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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인민회의 초대의장 허헌의 딸로 한국전쟁 때 월남해 남과 북의 경계를 오간 경험을 썼던 작가 허근욱씨가 25일 오전 9시10분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7.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48년 부친 허헌(1885~1951)을 따라 월북했다. 1908년 최초의 변호사로 개업해 3·1 운동 33인의 명변론으로 이름을 날린 ‘긍인’ 허헌은 ‘가인’ 김병로, ‘애산’ 이인과 더불어 ‘3인 민족변호사’로 활약했다. 해방공간 남로당 당수로 월북해 북조선 최고인민회의 초대의장을 지냈으나 한국전쟁 와중에 청천강에서 익사했다. 일찍이 주세죽·고명자와 더불어 ‘여성 사회주의자 3인’으로 꼽힌 이복언니 허정숙도 해방 직후 옌안파로 귀국해 북조선 인민위원회 선전부장에 이어 문화선전상을 지내고, 한국전쟁 이후에도 사법상, 최고재판소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서기장,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요직을 두루 맡다 91년 사망했다. 남동생 허종(허종욱)은 유엔 주재 북한 차석대사 및 외교부 순회대사를 지냈다.
고인은 평양러시아어대를 졸업하고 귀국했으나 북한 체제에 적응 못해 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편(박노근)과 함께 월남했다. 그러나 부친과 언니 등이 북한 고위층이라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아 오랫동안 고난을 겪기도 했다. <한국방송>(KBS) 작가실에 근무하던 60년, 남다른 분단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소설 <내가 설 땅은 어디냐>로 등단한 그는 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한국여성문학인회에서 문단 활동을 했고, 한국부인회, 3·1여성동지회,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에서 여성운동을 했다.
89년 방송사에서 정년퇴임한 뒤 집필에 몰두한 그는 <출옥 후: 고통과 친구가 되어>(1992), <제4창작집: 싸늘한 달빛의 눈 덮인 고원>(2004) 등 작품과 <회고록: 광화문 아웃사이더>(2012)를 꾸준히 발표했다. 2001년에는 아버지의 삶을 정리한 <민족변호사 허헌>을 출간했다. <내가 설 땅은 어디냐>는 영어로, <제3창작집: 이 모든 시간의 끝에>(1997)는 독일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외아들 박일규(서울예대 예술창조센터장)씨와 며느리 김진희(요가투바디 원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28일 오전 6시30분. (02)2258-5940.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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