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보기’ 미술비평 개척한 존 버거 별세

생전 존 버거의 모습. 사진 열화당 제공

정치·사회적 관점 ‘비평’에 첫 도입
소설로 부커상 수상…3월 국내 추모전

생전 존 버거의 모습. 사진 열화당 제공

1970년대 시각예술 비평에 정치·사회적 관점을 도입해 현대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영국의 미술비평가·화가·소설가인 거장 존 버거가 2일 프랑스 파리 교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향년 90.

버거는 런던 출신으로 40년대 후반 화가이자 비평가로서 좌파 잡지에 기고를 시작했다. 72년 미술사 연구자들의 필독서로 손꼽히는 명저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를 펴냈고, 같은 제목의 영국 <비비시>(BBC)의 방송 다큐멘터리 연작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드러냈다. 독일 미학자 발터 베냐민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그는 이 책에서 그림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를 통해 성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인식을 짚어내는 등 시각예술문화가 당대 지배적 이념의 영향과 직결돼 있다는 견해를 내놓아 미술사 해석과 감상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뛰어난 소설가이기도 했다. 58년 첫 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를 발표했고, 72년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 부르주아 문화의 이면을 드러낸 장편소설 <지>(G)로 영국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았다. 수상 상금 절반을 흑인운동단체인 블랙팬서에 기부했고 나머지 절반으로 터키 사진작가 장 모르와 이민노동자 문제를 주제로 작업해, 글과 사진이 교차하는 독특한 형식의 공동 저술인 <제7의 인간>(A Seventh Man)을 출간했다. 철학적 산문집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을 비롯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예술과 혁명> <다른 방식으로 보기> <벤투의 스케치북> 등 다수의 저작이 국내에도 나와 있다.

버거의 주요 저작을 국내 출간해온 도서출판 열화당은 3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온그라운드갤러리에서 추모 특별전을 열 예정이며, 신간 3권도 연내 출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