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4 11:34
수정 : 2006.02.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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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네트워크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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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오랜기간동안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의 간부 활동을 하면서 늘 따라다녔던 난감한 경우는, 구성원들의 운동성이 제각각이라 쉽게 의사 결정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거리는 특히 상근 사무처 핵심 간부 운동가들이 (물론 많지 않은 경우지만) 스스로의 업무에 매몰되어 시민운동성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조직의 정책을 결정하고 방향을 수립하는 논의에서 운동 감각을 잃은 상근 간부들은 조직의 안정성을 이유로 쉽고 편한 방향으로 표피적인 상황을 자기 합리화를 통해 계속 도출해낸다. 같은 상근 단위에서 많은 정보와 경향 분석을 토대로 제시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운동안들은, 일을 위한 일을 생산해내는 것으로 간부들 뇌리에 부담으로 작용하기에 이를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나 NGO흐름과는 무관한 독자적(일종의 폐쇄적)인 상식 안에서 조율하려는 반작용이 생성, 조직의 운영을 위한 업무 행위를 스스로 운동이라 칭하고 거기에 시간을 허비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그 조직의 시민운동성이 서서히 감퇴한다.
이러한 운동성 감퇴에 따른 무의식적 불안 요소는 대외적으로 "우리는 백화점식으로 운동하지 않고 몇몇 핵심 운동만을 지향한다"는 방어기재를 형성하거나 또는 다른 시민단체에서 연대활동을 제의하는 일에만 따라다니고 실제 활동의 노력은 안하면서 이름이나 걸쳐 덕을 보려는 해괴한 양상으로 변질되어 간다.
문제는 그러한 상황들이 적지 않은 NGO 내부에 존재하고 지금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상근 간부들은 스스로를 임원이라는 의식으로 무장해 가는 모습을 띄게 되는데, 이는 어찌 보면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여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정작 상근 실무자를 그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동지가 아닌 하급 직원으로 인식하게 되어 전체적인 시민운동의 질적 하락과 NGO 내부를 임원과 실무자의 이원적 구도로 재편하여 상호간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적지 않은 NGO내부에서의 이 같은 일그러진 의사결정 과정은 많은 NGO들이 조직의 합리적 운영에 대한 마인드보다는 아직도 '목소리가 크면 장땡이다'식의 밀어부치기식 운영과 아날로그형 낡은 전략방식 틀 속에 매몰되어 있는 것에서 연유하며 90년대 이후 자칭 시민운동가임을 자청하며 나타난 경력 불상의 시민운동 지도자들과, 그 운동과 운영의 본질이 개인사업체인지 아니면 회원은 진짜 있긴한건지 좀 헷갈리는 소위 유령 시민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한 이유이다.
그러나 여하간 이에 못지않게 이 같은 현상을 유발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NGO 내부에 ‘주인은 많으나 주인이 없다’는 운동의 이중적 분리감에서 출발한다. 즉, NGO내부의 책임 있는 단위의 임원들이 낮에는 일상의 구성원으로 바삐 살다가 퇴근하면 마치 클럽활동에 참가하는 식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단체의 주인은 많으나 실제 역량과 책임감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정작 주체적인 능력과 조직력이 발휘되지 못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모든 단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단체들이 이러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이는 전선이 명확했던 지난 민주화 운동에서의 치열한 사회운동이 이제 다원화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구조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운동가들이 비상근인 임원과 상근활동가인 실무자로 구분되면서 운동과 삶이 일치되는 상근활동가들이 운동의 정책과 방향을 고민하는 수위가 높아졌으나 정작 상근활동가들보다는 임원들이 그 조직을 자신들이 운영한다는 비뚤어진 인식틀과 그에 따른 갈등을 야기하는 일이 잦아짐도 이의 결과로 보아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NGO단체의 소위 임원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솔직하지 못한 점도 더 큰 문제이다. 외적으로는 사회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요구하고 외치면서도 정작 조직 내부에서의 정책 결정은 비민주적 요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의사를 결정하는 창구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조직의 의사를 결정하는 임원 단위 스스로가 정책이라는 것을 고민하고 논의하는 치열한 고민과 전문성을 스스로 갖추고 있지 못하여 대부분의 정책을 상근 단위에서 취하면서도 단체활동 경력만을 앞세우거나 조직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파악하지 못해 자신이 속한 NGO단체의 질적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면서도 이를 모른다는 것이다.
사상누각의 흔들림은 NGO라 하여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 우리의 NGO가 내부의 곪은 비민주성을 과감히 도려내고 그야말로 자율과 평등이 기조로 세워진 진정한 NGO의 이념을 의사결정과정에 반영, 구현해 낼 수 있는가는 이제 새로운 NGO운동가 그룹의 수면 위 등장이 언제인 것인가와 맞물린다고 본다. 이는 곧 사회운동을 직업군으로 형성해가고 있는 그야말로 삶과 운동이 일치되어 있는 상근 활동가, 이 들 새로운 주체 운동 그룹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사회운동의 새로운 화두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들은 NGO내부의 구태의연한 비민주적 의사 추진의 장애요인들을 제거하고 21세기에 맞는 경영운동적 프로그램을 서서히 도입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시민의 위임이 아닌 자임형 운동인 NGO운동은 그 자체가 변화, 발전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작은 NGO cosmos이기 때문이다.
이영일 흥사단투명사회운동본부 운영위원.
(경희대NGO대학원 NGO정책관리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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