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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8 21:20 수정 : 2006.01.18 21:20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미디어ㅃ전망대

소수는 늘 존재한다. 2004년 4월 <전자신문> 손재권 기자는 “아이콘이 된 인물을 실험만 하게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며 황 교수에게 정치논리에 휘말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황 교수 스스로 <세계일보> 칼럼에서 “오판이나 잘못된 정보에 경도되면 우리 연구팀은 나와 함께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이 또한 사업가의 판단미스와 국가지도자의 정책오류가 그 기업이나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초래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쓴 바 있다.

이번 사태는 ‘오래된 미래’에 불과하다. 이 지경을 초래한 황 교수와 정권, 학계, 그리고 무엇보다 매체가 광기에 대해 반성하는 듯했다. 그런가? 아직도 정동영 같은 정치인이 나서 “극단주의적 성향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황 교수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자고 외친다. 옮기지 말고 읽으라고 그렇게 부탁했건만, 방송은 여전히 황 교수의 말을 앵무새처럼 중계하기 바쁘다. 검찰이 언론플레이를 중지하라고 나설 정도다. 선전 공작 앞에서 방송은 지금도 허수아비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면피성 주장을 단순 릴레이하고, 싸구려 멜로드라마의 흥행을 책임진다. 구색에 맞춰 허접한 질문 한두 마디 날리고는, 대단한 내용이라도 얻은 양 득의만만하게 카메라 앞에 선다. 해설을 빙자해 ‘의혹’을 부풀리며, 황 교수 코멘트를 성실하게 인용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스비에스>는 황 교수쪽이 제공한 녹음내용을 흥분해서 전하는 뉴스쇼를 펼친다. 시청자 알 권리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란다. 엄숙함이 가관이다. <한국방송>도 크게 줄였지만 어떤 연유로 녹음됐고 제공되었는지 모르는 수상한 테이프를 재생한다. 딱 하루 만의 일이다.

12일 황 교수는 스스로 나서 언론인에게 부탁했다. “이 소모적인 갈등, 이제 끝내주십시오”라고 했다. 모두 원하던 바다. 벌써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끝냈고, 검찰이 또 남은 걸 끝내기로 되 있지 않은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학문적 범죄”라는 말로, <위싱턴포스트>의 “전형적인 위조꾼”이라는 비꼼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성이 차지 않아 정신분열적인 분탕을 질질 끄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교묘한 언론플레이, 열광적인 ‘대한민국’의 구호와 달리 진실은 늘 조용한 목소리로 다가온다.

우리를 언제까지 농락할건가? 시인은 말한다. “뉘우치는 일 없으니/도대체 너는 무엇을 꿈꾸는 것이냐/소리 지르지 마라/사람을 알기를 허수아비로 알고 있다.” 김동규가 오래전 텔레비전을 질타하며 쓴 시 <재판>의 일부다. “그만 쳐라 북을/너는 죄 없는 백성들 귀한 시간을 빼앗는 기세 좋은 도적이다”는 노시인의 호통에 황 교수 중계방송 전문티브이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작년 1월초 서울대 홍영남 교수는 <한겨레>에 황 교수 연구 보도와 관련해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과학 활동을 감시하고 사회적 영향을 생각하여 그 결과를 대중에게 진실 되게 알려야 한다”고 쓴 바 있다.

과학자의 충고에 기울이지 않은 방송사들이 지금의 분탕을 초래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린 건가? 그렇게 한가하면 청년 과학자들의 분노와 냉소나 들어보라. 코미디에서 한 수 배우라. 패러디하는 <개그콘서트>의 지능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티브이 뉴스의 멍청함. 반성하는 신문과도 비교되지 않는 지독한 저 불량심,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두렵다. 선전의 프로노그라피가, 표피적인 것에 기생하면서 진실을 옥죄는 선전뉴스의 괴물이 판치는 곳에 민주주의의 평화로운 미래는 없다. 시인이여, 그렇지 않은가?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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