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피디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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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피디수첩 최승호·한학수PD “미치도록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거대한 성역에 도전했고, 한때 좌절도 했지만 끝내 거짓에서 진실을 찾아냈다. 한국의 과학사와 언론사를 다시 쓰게 만든 그들은 바로 <문화방송> ‘피디수첩’ 최승호 책임피디와 한학수 피디다. 최 피디는 앞으로 피디수첩을 이끌면서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4, 5탄을 준비한다. 그러나 한 피디는 3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피디수첩을 떠난다. 2일 저녁 7시 문화방송 10층 시사교양국에서 피디수첩 3편 제작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바쁜 그들을 만났다. 먼저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최 피디가 입을 열었다. “황 교수와 관련된 피디수첩 두편을 더 만들고 있습니다. 황 교수 신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정부와 언론이 어떻게 이용됐는가와 과학계 검증시스템의 문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떠나는 한 피디는 “3일 방송을 연출하는데 이게 피디수첩에서 일하는 마지막 작업”이라며 “시사교양국에 남아 있겠지만 어느 부서로 배치 받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 피디가 옆에서 거들었다. “한 피디는 당분간 어디 가서 좀 쉬게 하려고 해요.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그 다음에는…뭐, 그동안 소질을 보였던 다큐멘터리 만들 수도 있고….”
그들은 미친 듯 진실을 찾았고 미치도록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고중단 사태에 <와이티엔>의 취재윤리 위반 보도까지 이어지면서, 그들은 끝내 진실을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느꼈다. 그 당시 최 피디는 한 피디에게 “학수야, 너 구속돼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방송이 끝내 안 되면 모든 자료를 싸들고 검찰로 찾아가 기자회견을 하자는 최후의 방법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명예훼손으로 구속되더라도, 수사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진실을 향한 추적의 시작은 지난해 6월1일 최 피디가 한통의 메일을 받으면서부터였다. ‘황우석 교수 관련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신념 때문에 편지를 띄운다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최 피디가 “학수야, 이리 와봐”라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피디를 불렀다. 최 PD “학수야, 너 구속돼라”…구속되면 재판과정중 진실 밝혀질 것 기대하기도
(왼쪽부터) 한학수 피디와 최승호 책임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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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수첩’ 홈페이지 메인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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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장미’를 꺾다 윤리위반이란 ‘가시’에 찔렸다” 그들은 진실이라는 ‘장미’를 꺾게 된 순간 취재윤리 위반이라는 ‘장미 가시’에 찔렸다고 털어놨다. 한 피디는 지난 10월 말 빈손으로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김선종 연구원을 만나러 미국 피츠버그로 갔다. 김 연구원을 만나기 하루 전날 미국 현지에서 한 피디는 2번 줄기세포도 디엔에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국에서 듣게 됐다. 한 피디는 “논문이 조작됐다는 확신이 서자 머리가 돌아버렸던 것 같다”며 “김 연구원에게 뭔가 얻지 못하면 안 된다는 과도한 중압감을 느껴 잘못된 일이지만 강압취재를 하게 된 것 같다”며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황 교수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지금,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하나는 논문 조작이 황 교수 혼자의 ‘작품’인가와 또 하나는 정말 원천기술이란 게 있는가이다. 한 피디는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밝혀 내겠지만 취재 결과로 추정해 보면, 한두명 작품은 아니고 최소한 5~6명이 깊숙이 개입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원천기술에 대해서도 한 피디는 “줄기세포가 없다는 것은 판명 났고 배반포까지 원천기술로 봐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서울대 조사위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교수팀 난자획득과 관련해 한 피디는 “지난해 2월 황 교수가 윤리적 비난을 의식해 당분간은 사람 난자를 이용한 배아복제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그해 10월에 다시 연구를 재개한 일이 있었다”며 “하지만 연구 중단 선언 뒤에도 수많은 난자를 채취해왔다”고 주장했다. 최 PD “2004년 논문 줄기세포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못해” 제보자들 보호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최 피디는 “과거 내부고발자들이 이어갔던 전형적인 고난의 행로를 그대로 밟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며 “내부 고발자의 신상정보를 노출 안 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황 교수 쪽의 집요한 공격과 그 입이 된 보수 언론 때문에 내부고발자를 지켜주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난치병 환자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최 피디는 “황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촛불 시위하는 모습을 보며, 난치병 환자들의 절망감과 피디수첩에 대한 분노에 관해 너무 죄송한 마음을 느꼈다”며 “내 자신도 가족 중에 난치병 환자가 있다거나 내 자신이 그랬다고 하면 희망을 빼앗아 간 것에 대해 분노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피디는 “그런 희망이 신기루에 근거한 것이라면, 똑바로 보는 것도 필요하다”며 “그런 소중하고도 간절한 희망을 황 교수가 이용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2004년 논문과 관련해서 최 피디는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줄기세포 디엔에이도 불일치 판정이 나오고 있지만 황 교수가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피디는 “황 교수팀이 실제로 줄기세포를 만들었지만 난자 및 체세포 제공자를 혼동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이는 2004년 연구에 상당히 기여한 사람을 취재해 본 결과 추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피디 “황 교수는 세번의 사과 기회를 잃었다” 한 피디는 황 교수가 사과할 세 번의 기회를 잃었다며, 첫 번째는 2번 줄기세포가 불일치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피디수첩이 재검증 요구 방송을 내보냈을 때, 서울대 조사위가 중간 발표를 했을 때라고 지적했다. 한 피디는 황 교수가 그 때 솔직히 털어놓고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겨레> 여론매체부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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