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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3 17:53 수정 : 2006.01.04 14:41

MBC <피디수첩>.

[인터뷰] 피디수첩 최승호·한학수PD “미치도록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거대한 성역에 도전했고, 한때 좌절도 했지만 끝내 거짓에서 진실을 찾아냈다. 한국의 과학사와 언론사를 다시 쓰게 만든 그들은 바로 <문화방송> ‘피디수첩’ 최승호 책임피디와 한학수 피디다.

최 피디는 앞으로 피디수첩을 이끌면서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4, 5탄을 준비한다. 그러나 한 피디는 3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피디수첩을 떠난다. 2일 저녁 7시 문화방송 10층 시사교양국에서 피디수첩 3편 제작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바쁜 그들을 만났다.

먼저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최 피디가 입을 열었다. “황 교수와 관련된 피디수첩 두편을 더 만들고 있습니다. 황 교수 신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정부와 언론이 어떻게 이용됐는가와 과학계 검증시스템의 문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떠나는 한 피디는 “3일 방송을 연출하는데 이게 피디수첩에서 일하는 마지막 작업”이라며 “시사교양국에 남아 있겠지만 어느 부서로 배치 받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 피디가 옆에서 거들었다. “한 피디는 당분간 어디 가서 좀 쉬게 하려고 해요.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그 다음에는…뭐, 그동안 소질을 보였던 다큐멘터리 만들 수도 있고….”


그들은 미친 듯 진실을 찾았고 미치도록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고중단 사태에 <와이티엔>의 취재윤리 위반 보도까지 이어지면서, 그들은 끝내 진실을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느꼈다. 그 당시 최 피디는 한 피디에게 “학수야, 너 구속돼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방송이 끝내 안 되면 모든 자료를 싸들고 검찰로 찾아가 기자회견을 하자는 최후의 방법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명예훼손으로 구속되더라도, 수사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진실을 향한 추적의 시작은 지난해 6월1일 최 피디가 한통의 메일을 받으면서부터였다. ‘황우석 교수 관련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신념 때문에 편지를 띄운다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최 피디가 “학수야, 이리 와봐”라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피디를 불렀다.

최 PD “학수야, 너 구속돼라”…구속되면 재판과정중 진실 밝혀질 것 기대하기도

(왼쪽부터) 한학수 피디와 최승호 책임피디.
두 사람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됐다’는 제보 메일을 보며 상식의 저항을 느꼈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줄기세포를 보지 못한 논문 공동저자가 상당수 됐고, 황 교수는 난자가 수백개 들어가 만든 줄기세포를 만든 날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들은 이 같은 취재과정에서 논문이 허위로 작성됐음을 확신하게 됐다.

취재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방송중단 압박도 받았다고 했다. 최 피디는 “황 교수가 문화방송 임원을 만나 ‘내가 청와대 들어가는데 대통령과 독대해 피디수첩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듣게 됐다”고 밝혔다. 최 피디는 “김형태 변호사 등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황 교수가 문제 있다고 지적했지만, 청와대가 그렇게 단선적인 시각으로 보고받고 대응한 것에 대해 실망했다”며 청와대의 대응 방식에 불만도 드러냈다.

광고 중단을 이끌었던 누리꾼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한 피디의 말이다. “피디수첩에 글을 올린 네티즌을 살펴 보니 한 사람이 30번, 50번씩 올린 경우도 있었다”며 “조직적인 소수들이 네티즌이라는 이름으로 대단히 특수하게 반응했는데, 일부 네티즌의 여론몰이와 조직된 소수의 위험성을 느꼈다.”


‘피디수첩’ 홈페이지 메인화면.

“진실이란 ‘장미’를 꺾다 윤리위반이란 ‘가시’에 찔렸다”

그들은 진실이라는 ‘장미’를 꺾게 된 순간 취재윤리 위반이라는 ‘장미 가시’에 찔렸다고 털어놨다. 한 피디는 지난 10월 말 빈손으로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김선종 연구원을 만나러 미국 피츠버그로 갔다. 김 연구원을 만나기 하루 전날 미국 현지에서 한 피디는 2번 줄기세포도 디엔에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국에서 듣게 됐다.

한 피디는 “논문이 조작됐다는 확신이 서자 머리가 돌아버렸던 것 같다”며 “김 연구원에게 뭔가 얻지 못하면 안 된다는 과도한 중압감을 느껴 잘못된 일이지만 강압취재를 하게 된 것 같다”며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황 교수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지금,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하나는 논문 조작이 황 교수 혼자의 ‘작품’인가와 또 하나는 정말 원천기술이란 게 있는가이다. 한 피디는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밝혀 내겠지만 취재 결과로 추정해 보면, 한두명 작품은 아니고 최소한 5~6명이 깊숙이 개입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원천기술에 대해서도 한 피디는 “줄기세포가 없다는 것은 판명 났고 배반포까지 원천기술로 봐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서울대 조사위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교수팀 난자획득과 관련해 한 피디는 “지난해 2월 황 교수가 윤리적 비난을 의식해 당분간은 사람 난자를 이용한 배아복제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그해 10월에 다시 연구를 재개한 일이 있었다”며 “하지만 연구 중단 선언 뒤에도 수많은 난자를 채취해왔다”고 주장했다.

최 PD “2004년 논문 줄기세포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못해”

제보자들 보호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최 피디는 “과거 내부고발자들이 이어갔던 전형적인 고난의 행로를 그대로 밟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며 “내부 고발자의 신상정보를 노출 안 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황 교수 쪽의 집요한 공격과 그 입이 된 보수 언론 때문에 내부고발자를 지켜주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난치병 환자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최 피디는 “황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촛불 시위하는 모습을 보며, 난치병 환자들의 절망감과 피디수첩에 대한 분노에 관해 너무 죄송한 마음을 느꼈다”며 “내 자신도 가족 중에 난치병 환자가 있다거나 내 자신이 그랬다고 하면 희망을 빼앗아 간 것에 대해 분노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피디는 “그런 희망이 신기루에 근거한 것이라면, 똑바로 보는 것도 필요하다”며 “그런 소중하고도 간절한 희망을 황 교수가 이용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2004년 논문과 관련해서 최 피디는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줄기세포 디엔에이도 불일치 판정이 나오고 있지만 황 교수가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피디는 “황 교수팀이 실제로 줄기세포를 만들었지만 난자 및 체세포 제공자를 혼동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이는 2004년 연구에 상당히 기여한 사람을 취재해 본 결과 추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피디 “황 교수는 세번의 사과 기회를 잃었다”

한 피디는 황 교수가 사과할 세 번의 기회를 잃었다며, 첫 번째는 2번 줄기세포가 불일치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피디수첩이 재검증 요구 방송을 내보냈을 때, 서울대 조사위가 중간 발표를 했을 때라고 지적했다. 한 피디는 황 교수가 그 때 솔직히 털어놓고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겨레> 여론매체부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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