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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9 18:13 수정 : 2019.12.10 10:00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임은정 검사가 선정됐다. 사진은 임 검사가 2017년 9월6일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송건호 언론상 수상 임은정 검사]

반공법 위반 재심 등 무죄 구형
징계 받고 퇴출 위기까지 겪어
그 뒤로도 검찰 민낯 공개적 비판

“여전히 투명인간 취급 받지만…
안미현·서지현 검사 등
폭로하는 사람 계속 나와 보람”
“청암상 정신만 받겠다” 상금 고사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임은정 검사가 선정됐다. 사진은 임 검사가 2017년 9월6일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무죄라서 무죄라고 말했을 뿐인데, 일부 언론으로부터 ‘막무가내 검사’, ‘얼치기 운동권 검사’ 등으로 매도당했죠. 검찰 안팎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오해와 비난을 들어 억울할 때마다, 조금만 더 견디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습니다. 청암 선생님은 시대와 사회를 깨우치는 글과 삶으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좋은 길잡이였는데, 검찰 내부의 작은 몸부림을 크게 봐주고 격려해주셔서 지친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검찰의 부끄러운 민낯을 공개하며 자성과 개혁을 촉구해 ‘2019년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된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는 지난 6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임 검사는 내부 고발자로 검찰 조직에서 여전히 ‘왕따’ 신세라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거침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최근 한국투명성기구의 ‘올해의 투명사회상’도 받았다.

임 검사는 지난 2012년 12월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반공법 위반 재심사건에서 검찰 수뇌부의 ‘백지 구형’ 지침을 무시하고 ‘무죄 구형’을 했다. 앞서 그해 9월 박형규 목사의 민청학련 재심에서도 무죄를 구형했다. 백지 구형은 검찰직의 책임과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긴 위법한 관행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일로 4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검사 적격심사에서 퇴출 위기까지 겪었다. 5년 소송 끝에 2017년 대법원의 징계취소 확정판결을 받음으로써 검사가 소신을 지켜 무죄를 구형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건호 언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해동)는 “언론인은 아니지만, 공익을 앞세워 검찰 내부의 성찰과 반성을 촉구한 임 검사의 분투는 송건호 선생의 날 선 비판정신에 부합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수상 소식에 당황했다고 한다. 임 검사는 “언론인이 영예롭게 받는 상인데 검사에게 준 것은 파격이다. 낯설고 민망한 마음에 사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하지만 징계와 협박에 많이 지쳤었는데 ‘네 말이 틀리지 않았어. 지치지 말고 더욱 분발하라’는 격려로 여겨져 기뻤다. 상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청암상의 정신과 격려만 받겠다”며 상금은 끝까지 고사했다.

임 검사는 징계를 받은 2013년부터 공개적으로 검찰의 불의를 비판했다. 때론 전·현직 검사들 실명까지 거론하며 감찰과 수사를 요구하는 등 검찰의 선별적 수사, 제 식구 감싸기 등 이중잣대를 문제 삼았다. “검찰 조직은 스스로 잘못을 직시하기 어렵다. 관행에 익숙해지면 치부를 드러내지 못한다. 나는 치유를 위해 여기가 아프다고 강하게 말하는 것이다. 이를 분란이라고 하지만 나는 자정 능력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숨통이 좀 터졌을까. “지금도 한직이고 여전히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완고한 조직의 집중관리 대상자로 처지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친한 후배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봐 밥 먹자는 이야기도 쉽게 못 한다.” 그래도 평검사로 퇴직할 줄 알았는데 부장검사에 올라 정권 바뀐 덕을 본다며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검사윤리강령이 바뀌었다. 언론에 칼럼을 쓰거나 인터뷰하는 것도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어 말문이 열렸다”며 “그동안 투쟁해온 것에 스스로 칭찬을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공직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 활발한 비판정신으로 내부 자정 능력이 원활해져 투명한 사회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의 ‘튀는’ 행동에 검찰 안팎에선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한다. 그는 “그 소리는 2011년부터 들어왔다. 내년 총선에 안 나가면 멈추려나. 시간은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을 거르는 체와 같아 역사 앞에서 냉정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안미현·서지현 검사 등 폭로하는 사람이 계속 나오는 것도 보람이다. 조금 더 버티며 미움받는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임 검사는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나는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평범한 검사다. 검사로서 당연한 일이 왜 대단한 일로 보도되는지 황당하다”며 “무죄를 구형했을 때 대검찰청 발표에 따라 보수 신문은 나를 비난하고 진보 신문은 용감한 검사라고 평가를 달리했지만, 법조 출입기자들이 법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따졌다면 내가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년 동안 피 말리는 일을 겪게 돼 언론이 원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또 친소 관계에 따라 공직자 거짓말에 침묵하거나 감시를 외면하는 언론들로 인해 권력이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검찰과 언론 개혁이 되면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고 강조했다.

사법정의가 이른 시일 안에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그는 당분간 검찰 조직 문화를 바꾸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른바 ‘디딤돌이 되는 판례 만들기 5개년’ 포부다. 그는 서울남부지검 성폭력 은폐 사건과 부산지검 공문서 위조 사건 등 2건에 대해 고발장을 낸 상태다. “옛 동료를 고발한다는 부담감을 감수하고 냈는데, 내년, 내후년이면 공소시효가 끝난다. 재정신청을 해 판례를 만드는 데 의미를 두겠다.” 블랙리스트로 인한 인사 불이익과 조직적 왕따 등에 대해 국가 배상소송도 진행 중이다. 그의 앞엔 아직 긴 싸움이 남았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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