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6 18:12
수정 : 2019.11.06 20:07
엄경철 신임국장 보도국 운영 계획에서
“출입처 제도 혁파, 주제·이슈 중심 시스템 구축”
취득 영상 체크리스트 등 취재윤리 바로잡기 강조
엄경철 <한국방송>(KBS) 신임 보도국장이 공영방송으로서 차별화된 뉴스를 제공하기 위해 출입처 제도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조국 사태에 연루된 증권사 직원 인터뷰 검찰 유출’ 의혹 등 잇단 사건으로 비난을 산 <한국방송>이 새로운 실험을 통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엄 국장은 4일 <한국방송> 보도본부 통합뉴스룸 국장에 임명된 뒤, 기자들의 임명동의 투표를 앞두고 사내 게시판에 보도국 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엄 국장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는 5~6일 이틀 동안 진행됐는데, 찬성 161명(62.40%), 반대 97명(37.60%)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출입처 제도 폐지’다. 엄 국장은 “반드시 필요한 영역과 역할을 제외하고,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출입처 제도에 대해 “필요한 공적 정보의 획득과 전달, 안정적 기사 생산이라는 기능을 하고 있지만 모든 언론사를 균질화시킨다“며 “패거리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고, 이 과정에서 과당 경쟁이 발생하면서 언론 신뢰 하락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부서별 특성을 감안하고 점검해 출입처 제도를 혁파하겠다”고 밝혔다.
엄 국장은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주제·이슈’ 중심의 취재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엄 국장은 “시민의 삶 속으로, 시민사회 속으로 카메라 앵글이 향하기 위해서는 모든 부서에 ‘주제·이슈’ 중심의 취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통합뉴스룸 취재기능의 50% 이상을 탐사, 기획 취재 중심의 구조로 바꿔 차별화된 뉴스를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조국 전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 김 아무개씨 인터뷰 왜곡, 독도 추락 헬기 영상 미제공 등 최근 연이어 논란이 된 <한국방송>의 저널리즘 윤리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내놨다. 엄 국장은 “우리의 저널리즘 행위를 둘러싸고 최근 논쟁과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며 “취득 영상 체크리스트, 단독 보도 체크리스트 같은 구체적 방법들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출입처 제도는 저널리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언론 개혁의 중요한 방안 중 하나로 출입처 제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지도 오래다. 그러나 주요 정보가 출입처 중심으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이슈를 놓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언론사로서는 쉽게 폐지할 수 없었다.
<한국방송> 기자들도 엄 국장의 ‘출입처 폐지’ 선언에 기대와 함께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방송>의 ㄱ기자는 “‘반드시 필요한 영역과 역할을 제외하고’라는 단서를 달았듯 출입처 전부를 폐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출입처 의존도가 높은 검찰 같은 곳을 겨냥한 것처럼 보인다”며 “출입처를 없앤다 한들 출입처에서 나오는 자료를 마냥 외면할 순 없을 테니 문제의식에 대한 선언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ㄴ기자는 “출입처를 안 챙겨서 놓치는 이슈도 많았는데, 오히려 출입처를 폐지하겠다고 하니 우려가 된다”며 “충분한 논의 후에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양성모 <한국방송>기자협회장은 “출입처 제도의 문제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어느 언론사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중요한 화두를 던졌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없어 보인다.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니 함께 고민을 해보자는 취지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투표 마감을 앞두고 엄 국장은 <한겨레>에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오늘이 (동의) 투표 마감인데, 출입처 폐지에 대해 내부 반발이 많아 당장의 인터뷰는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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