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12차 회의
‘조국 정국’만큼이나 뜨거운 논쟁이 지난 16일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벌어졌다. <한겨레> 제7기 열린편집위원회 마지막, 12번째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한겨레>의 인사검증 보도에 쓴소리를 내놨다. 팩트체크가 부실했고, 능동적이고 심층적인 보도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심스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중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이어졌다. 위원들은 내부 소통, 독자와의 간극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 <한겨레>가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회의에는 신광영 위원장(중앙대 교수·사회학), 김미경 위원(<한겨레:온> 편집위원), 김제선 위원(희망제작소 소장), 진민정 위원(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최서윤 위원(작가), 최선목 위원(한화그룹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사장), 정민영 위원(변호사·법무법인 덕수), 김종구 편집인, 이종규 신문콘텐츠부문장, 이순혁 정치사회 부에디터, 임지선 참여소통데스크가 참석했다.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제7기 열린편집위원회가 마지막 회의인 12번째 회의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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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가짜뉴스 지긋지긋해
무엇이 팩트인지 혼란한 사회
<한겨레>가 진실 짚어주는 역할 해줬으면 신광영 위원장 지난 한 달 한국 사회가 폭풍의 시대를 지나온 것 같다. <한겨레> 보도와 관련해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면 <한겨레>가 입장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김미경 위원 <한겨레>가 조국 보도에 몰입하지 않았으면 했다. 딸에 대한 의혹이 나온 지난달 19일 기준으로 기사 양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한겨레>가 직접 취재하기를 원했지, 단편적인 주장이나 의혹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현재 독자와 주주들이 항의하는 내용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태와 관련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작두 위에 올라탄 검찰’이란 제목의 칼럼이었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조국 사태를 검찰이 일종의 압력을 주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해 사설과 칼럼을 통해 3번 정도 지적했다. 굉장히 잘 짚어주었다고 생각했다. 신광영 <한겨레> 내부에서도 보도 방침과 방향에 대해 이견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사가 내부 다양성을 확보하고 논의를 통해 하나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에 굉장히 민주적이라 볼 수 있다. 진민정 위원 (조국 후보자에 대한 기사가)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에 지난 한 달간 뉴스를 보기가 꺼려졌다. 개인적으로 <한겨레>의 태도가 조심스러웠는지는 모르지만, 신중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보도와 젊은 기자들의 성명을 보면서 아쉬웠다. <한겨레>가 다른 언론사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팩트체크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가짜뉴스가 쏟아지는 와중에 진실을 짚어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본다. 내부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성명을 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명서 자체만을 보면 조금 아쉽다. 좀더 깊게 들어가 언론의 시스템을 지적하고, 뉴스 관행 문제를 지적하고, 언론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한겨레> 내부에서 인식의 간극이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소위 시니어와 주니어 기자들 간의 간극.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김제선 위원 조국 후보자 문제로 온 나라가 전쟁을 치르는 상황을 보면서 특이한 현상이라 생각했다. 이 상황을 통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국회는 정말 무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영·정파적 논리에 속한 이야기는 빈번했던 반면, 언론사들이 상대적으로 팩트를 점검하지 않았다. 언론사가 중립을 표방하지만 (실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정파적 의혹을 양산하면서 이 사회를 진영논리로 가르고 있다. 그것과 다른 형태의 진전된 노력을 보여줬는지 의문이다. <한겨레>가 정권에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하나, 그때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정론직필로서의 제대로 된 시대정신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능동적인 기획보도나 탐사보도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사설에서 청년세대의 박탈감을 직시해야 한다는 내용과 불평등을 지적했는데, 이 부분은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해 후속 취재를 해야 한다.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해서도 집중이 필요하다. ‘개인 신상 공개에 대해서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등 제도개선안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한다. 최서윤 위원 과잉 뉴스에 피로감이 있었으나 <한겨레>의 톤과 기사의 양은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겠다고 공감한 것은 한 칼럼이 게시되고 난 뒤 4분 만에 삭제된 사건이다. 이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이순혁 정치사회 부에디터 팩트 점검에 대해 부족했던 것은 많이 아쉽고 후회한다. 지금에 와서 보면 중간에 한 번씩은 끊어서 의혹과 관련한 사안을 정리하고 팩트를 체크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 칼럼 삭제는 현장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다. 당일 아침 편집회의에 해당 칼럼을 쓰겠다는 보고가 올라왔고, 일부 편집위원이 내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해 일단 칼럼을 본 뒤 내보낼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런 편집회의 의견이 현장 팀장에게 전달이 안 돼 칼럼이 온라인에 출고됐다. 그래서 해당 기자에게 편집회의 논의 사항을 알린 뒤 양해를 구하고 기사를 내렸다. 이후 오후 편집회의에서 칼럼을 두고 논의를 했고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칼럼을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에디터의 실수와 오해가 겹쳐져 벌어진 일이다. 담당 편집위원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임지선 참여소통데스크 성명에 쓰인 것처럼 <한겨레>가 ‘국장의 지시란 이유로 출고 이후 일방적으로 기사를 삭제’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정권과 무조건 맞서는 것이 선은 아니야
시대정신·사회적 가치 중심 논쟁해야
문재인 정부 들어 ‘일관성’ 유지하고 있나
기자들 소통 문제, 독자와의 간극 극복해야 정민영 문재인 정부 들어서 <한겨레>의 권력비판 보도가 일관성을 유지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과거 <한겨레>가 주장한 내용을 뒤집거나 강하게 비판하던 사안에 무디게 대응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내정됐단 기사를 처음 내보낸 것이 <한겨레>였는데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문제에 대한 비판이 매우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2011년에는 이런 사례를 사설로 강하게 비판했는데, 이번엔 비판이 약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부분들이 하나하나 쌓여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제선 정권과 무조건 맞서 싸우는 것이 선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느냐를 가지고 검토하고 논쟁해야 한다. 그저 정권과의 갈등관계가 언론의 길이라는 것이 아니고, 한겨레신문사를 출범시킨 국민주 정신의 가치와 비전에 입각해 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 점에서 내부 노력이나 관점 정리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진민정 동의한다. 언론이 정권을 견제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과 더불어 언론이기 때문에 취재 방향이 가장 중요하다. 팩트체크가 없었을 뿐 아니라 취재 과정 자체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다른 신문에서 볼 수 있는 기사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쓴다는 느낌이 강했다. 취재력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취재를 했는데 왜 다른 언론사와 똑같은지 의문이 들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담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고, 이 사회가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겨레>가 민주적이라 생각하나, 조직 내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단지 조국 보도 문제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사안들에 대해 기자들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어떻게 바라볼 것이고, 방향은 어떻게 잡을 것인가, 기사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소통이 기자들 간에 이뤄지고 있나 의문이 들었다. 실은 지금 독자와의 간극이 많이 느껴지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광영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거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 빨리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그것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와 범위로 확산됐다. 이는 언론생태계 변화에 이유가 있다. 과거 메이저 언론 중심에서 이제는 300여개의 인터넷매체에 유튜브까지 등장했다. 공론장 자체가 한 언론사가 주도할 수 없는 형태로 변했다. 작은 매체들이 다른 신문사 보도를 인용한 것이 마치 사실처럼 포장되어 전파되고, 그것을 다시 개인이, 유튜브가 공유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언론의 기능이 거의 실종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언론사 내부의 세대 문제도 있지만, 수용하는 이들의 세대 문제도 있다. 야당과 여당의 엘리트층, 거기서 밀려난 다수,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과 그들의 박탈감 등이 결합된 복잡한 갈등구조가 드러났다. 이 부분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언론사의 방향 설정과 한국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김미경 소극적인 취재에 대해 반성하는 의미에서 사태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좀 늦더라도 <한겨레>가 팩트를 체크해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 팩트를 체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겨레>만큼은 한발 더 나아간 취재를 보여주면 좋겠다. 최서윤 <한겨레>는 양쪽 세력에 의해 격렬하게 비난을 받고 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고민이 될 것 같다. 칼럼, 오피니언에서 합법적인 불평등의 문제를 풍부하게 다뤘던 것이 좋았다. <한겨레>가 집중해야 할 기획 무엇인가
뉴스 가치 없는 기사는 과감히 포기해야
최근 사태 보며 언론과 검찰 관계에 대해 생각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비판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김제선 <한겨레>가 집중해야 할 기획이 무엇인지 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그중 하나로 최근 국정원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프락치를 두고 사찰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한겨레>도 가볍지 않게 취급했다. 이것이야말로 문재인 대통령을 심하게 비판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런 문제는 발본색원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한다. 김미경 칭찬하고 싶은 기사가 있다. 저는 진보를 위해서는 인식의 개선이 먼저 와야 한다고 본다. <애니멀피플>에서 ‘사지마, 팔지마, 버리지마’를 썼는데 노력이 많이 들어간 기사라고 생각했다. 좋게 봤다. 생명에 대한 사고의 진보를 이룰 수 있도록 꾸준히 관심을 갖고 기사를 내줬으면 좋겠다. 진민정 <한겨레>와 맞지 않는다고 보이는 기사들에 대해서, 뉴스로 가치가 없는 기사에 대해서는 과감히 포기했으면 좋겠다. 정말 중요한 기사들, 꼭 알아야만 하는 기사에 더 집중하면 좋겠다. 또한 최근 사태를 보며 언론과 검찰권력이 공생관계인 것인지, 언론이 끌려가는 것인지는 모르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비판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제선 우리 사회가 관료집단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재부 예산 결정 과정이 국회 여야 공방보다도 중요하다. 모든 것을 잘하는 <한겨레>가 되지 말고, 강점을 중심으로 집중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를 바란다. 최선목 이선호씨 마약 밀반입 기사에서는 ‘삼성가 장손’이란 표현이 쓰였는데 <한겨레>도 얼마 전 기사로 썼듯이 ‘장손’이라는 표현은 맏이의 맏이를 뜻한다. 장남의 장남이 아니다. 젠더 관점에서 민감한 문제다. 우리나라 1000개의 대기업이 중견기업보다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다는 기사에서는 국가 발전 차원에서 조세를 통해 주는 정당한 혜택을 받는 것이 무슨 특혜 독점인 것처럼 나와 아쉬웠다. 정민영 오랜 기간 <한겨레>가 높은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원칙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권력 감시 측면에서 <한겨레>의 원칙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5∼10년이 지난 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광영 한국 사회는 탈정치화됐으면서 동시에 과잉정치화됐다. <한겨레>가 방향을 잡아주고, 무질서하고 방향을 잃은 한국 사회에 지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한겨레>에 애정을 갖고 비판을 해주신 위원님들께 감사한다. 정리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녹취 천효진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제7기 열린편집위원회가 마지막 회의인 12번째 회의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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