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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7 18:10 수정 : 2019.09.18 11:00

50년차 언론인인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국 언론의 위기를 토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연주 전 KBS 사장 인터뷰

“검증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
저널리즘 기본원칙 돌아보게 해
반대 견해 포괄해 진실 찾아야”

50년차 언론인인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국 언론의 위기를 토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현재 우리 언론 상황을 생각하면 ‘종말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왜곡·과장·선정 보도에 요즘은 가짜뉴스까지 더해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지만 망하는 언론사는 없다.”

이달 초 <오마이뉴스>에서 ‘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 연재를 시작한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이 진단한 한국 언론 위기 상황이다.

1970년 <동아일보> 입사 이래 동아투위 해직 사태를 거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과 논설주간, 공영방송 사장 등을 지낸 50년차 언론인이 종말론적 색채가 짙은 ‘묵시록’이란 표현까지 쓰는 것은 그만큼 한국 언론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절박함에서다. 위기를 돌파하는 해법을 들어보고자 정 전 사장을 1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조국 사태’를 거치며 엄정한 검증보다는 보도 경쟁에 치중하는 한국 언론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봤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확인, 팩트다. 그런데 단순히 문건을 확보해 보도하는 것이 팩트인가. 팩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말이나 따옴표만이 아닌 맥락과 반대되는 사람의 이야기도 포함하는 등 포괄적이고 그 너머의 진실을 찾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는 ‘팩트’라는 겉옷을 입고 최종 결론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전달해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며 날을 세웠다. “논쟁적 사안은 반대 입장을 담아야 공정하나 검찰 쪽 일방적 기사를 결정적 사실로 몰아간다. 대대적 보도로 인격은 살해되고 당한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나중에 무죄가 나와도 그땐 기사 처리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피해 당사자다. 이명박 정부가 검찰·감사원·방송통신위원회·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그를 한국방송 사장에서 끌어내린 사례가 그랬다. 그는 해임 무효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정작 많은 언론은 이 사실을 작게 다루거나 외면했다.

“선정적 저널리즘 온상 된 종편…재허가 취소 전례 나와야 억제력”

‘종합편성채널(종편) 필망론’ 칼럼을 자주 썼던 그는 종편이 승승장구하는 상황에 대해 “한겨레 독자에게 대단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전폭적인 특혜로 성장한 종편이 ‘선정적 저널리즘의 온상’으로 떠올라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만큼 정책 당국은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방통위가 3년마다 하는 재허가 심사에서 방송 공정성·공익성 등을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 취소 전례가 나와야 억제력이 발휘된다”며 “종편에 쏠린 광고, 의무 재송신, 황금채널 등 온갖 특혜를 거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왜 그렇게 종편을 위한 미디어법 통과를 강행했는지 이제 알겠다. 광고 특혜 등으로 종편은 크게 성장했지만 지상파는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방송 광고 매출이 연간 6500억원이었는데 올해 예상치는 2500억원 이하로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달라진 미디어 환경 등을 고려해 지상파에 집중된 규제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매체에 ‘한국언론 묵시록’ 연재를 시작한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근 경영위기 속에 비상경영에 나선 한국방송과 <문화방송>(MBC)에 대해 “하느님이 사장으로 온다고 하더라도 (경영 상황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흔든 그는 지상파 방송의 생존전략 핵심을 ‘고비용 구조’ 타파로 꼽았다. 특히 라디오를 포함해 지상파마다 전국으로 전파를 내보내기 위한 송출 인력과 조직 시스템을 혁신해 공동으로 운영하면 거액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방송사 내부에선 밥그릇 싸움으로 추진하지 못한다. 밖에서 물꼬를 터줘야 한다. ‘아키바’(arqiva) 같은 영국의 송출 대행 공사를 참조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은 문 닫고 망하는 언론이 없지만 앞으로 평범한 신문은 예외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 전 사장은 반트럼프 최전선에서 불을 뿜었던 미국 <뉴욕 타임스>의 부수 급증에서 시사점을 찾았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3주일 만에 13만부가 늘었다. 이 신문이 100% 불편·부당한 신문은 아니지만 충성독자 확보가 중요함을 보이는 상징적인 사안이다.” 그는 뉴욕 타임스의 보도 준칙은 공정성, 정직성, 진실성 등을 강조하며 취재원을 충실하게 밝히고 오보 땐 날짜 하나라도 정정기사를 내보내는 것과 견줘 “우리 언론은 오보를 바로잡는 데 인색하다”고 질타했다.

기성 언론에 대해선 비관적이지만 시민들의 움직임에는 낙관적이다. 그는 “‘종말’이라는 것은 낡은 체제에서 벗어나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이 포함된 말”이라며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를 보면 무림의 고수들이 많다. 언론은 시민들과의 관계 설정을 고민하고 집단적 지혜를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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