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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6 18:39 수정 : 2005.12.26 18:39

‘홍세화가 만난 한겨레 독자’ 유성여고 3학년 전소영양

[제2창간] 홍세화가 만난 한겨레 독자 - 유성여고 3학년 전소영양


홍세화가 만난 독자의 이번 주인공은 특별합니다. 입시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막 지나온, 대전 유성여고 3학년 전소영양입니다. 전양은 ‘한겨레신문사에 견학 가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이메일에서 자신을 한겨레의 열렬한 독자라며 “시간을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친구랑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니까 신중하게 고려해 주세요. 예비 대학생에게 한겨레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라고 썼습니다. 만남은 12월14일 견학 뒤에 이뤄졌습니다.

홍세화=지금까지 만난 독자 중 가장 젊은 벗이네요. 반가워요. 부모님이 한겨레 독자셨나요?

전소영=공부하다 한겨레를 만났어요. 모의고사 언어영역 지문에 학벌사회에 관해 비판적인 글이 실렸거든요. 책을 샀더니 한겨레가 적혀 있더군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한겨레21과 한겨레를 보게 됐어요.

=정말 자발적인 독자시군요.

=집에서는 중앙과 동아를 봤어요. 상품권과 자전거 때문에요. 한겨레를 정기구독하자고 했더니 엄마가 농담처럼 “이상한 신문, 운동권 신문을 왜 보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일단 비교해 보자고 제안을 드렸고, 실제로 세계화,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기사들을 비교해서 보여 드렸어요. 이젠 한겨레만 보지요.

=고3이라 신문 들여다볼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 텐데요.


=솔직히 제가 공부 잘하는 학생은 아니거든요. 학교 가는 차 안에서 그리고 점심시간에 주로 봤어요. 모든 기사를 꼼꼼히 보지는 못하고 주로 역사에 관한 기사를 봐요. 을사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이 옳은 표현이라는 것도 한겨레를 보고 알았죠.

=주변 친구들은 어때요. 신문을 많이 보나요? 수능이다, 입시다 해서 억압돼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신문이나 책 보기가 어렵지 않나요? 학생에게 “책 읽을 시간 있으면 공부를 하라”는 말이 관철되는 황당한 사회인데요.

=자습 시간에 주로 책을 봐요. 그 시간에 암기하고 한 문제라도 더 풀라는 얘기 많이 들었죠. 책이나 신문 보는 친구들 많지 않아요. 디지털 세대잖아요. 인터넷으로 포털사이트에서 메인 뉴스만 보죠. 사회 이슈 문제보다는 연예인 사생활 얘기가 많죠. 저는 종이가 좋아요. 읽고 곰곰이 사색할 여유가 있잖아요.

=소영양은 일찍부터 종이와 친했던 것 같군요.

=성격이 좀 내성적이에요. 여러 사람들과 모여 얘기하는 것보다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줄곧 도서반에서 활동했고요. 학생들이 책과 멀어지는 데는 주변 환경 탓도 있는 것 같아요. 학교 도서 목록이 열악하거든요. 학생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 그리고 같은 책이라도 새로 쓰인 좋은 책들을 많이 갖춰야 하는데 헌책방에서 헌책을 잔뜩 사다가 넣는 일도 있어요.

=젊은 세대가 책을 안 읽어 걱정이에요. 심지어 대학생도 마찬가지예요. 인터넷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아요. 그중 하나가 책과의 친화력을 잃게 만드는 거죠. 라디오, 텔레비전이 보급될 때도 책의 효용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책은 여전히 인류 지혜의 보고이며 세계와 만나는 창이죠. 인터넷에서 피상적, 선정적인 정보에 익숙해지면 책의 깊은 맛을 잃어버리죠. 종이신문이 매개체가 될 수 있어요. 일상 속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이 책과의 친화력을 유지시켜주는, 그런 면에서 종이신문의 중요성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논술 공부에도 도움이 많이 될 거고요.

=논술은 답이 없다,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논술 강의는 그렇지 않아요. 강사는 이런 답을 써야 한다고 알려준대요. 수시를 보는 친구들은 논술 비중이 크거든요. “사고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잔재주만 느는 것 같다”고 얘기해요. 대학이 요구하는 수준의 논술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요. 문제를 보면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사고 수준을 뛰어넘는 것 같아요. 대학교수들이 지식 자랑 하려고 하나 생각할 정도로요.

=교육이 사고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암기에 치우쳐 있지요. 글읽기를 안 하는데 어떻게 쓸 수 있겠어요. 책을 읽어야 정리해서 쓸 수 있는 토대가 생기지요. 그런데 훈련 과정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에서 논술을 요구하는 이상한 현실이에요. 황석영 선생 알지요? 그분은 “엉덩이 힘으로 쓴다”고 말해요. 그만큼 많이 읽고 써봐야 한다는 거죠. 우리 교육과정은 그런 점을 등한시하고 있는데 대학에서는 변별력을 가른다며 논술을 요구하는 파행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논술이 또 하나의 짐이 되고 암기하고 요령을 습득하는 식이 되지요.

=시사평론반에서 토론을 하면, 이건 아닌데 할 때가 많았어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강자가 추앙받는 것은 당연하다고들 해요. 학생 자신이 사고하는 게 아니라 교사, 부모, 대중매체의 영향이죠. ‘넌 이렇게 생각해야 해’ 하는 식이요. 신문 사설을 보고 자기 생각을 써오라고 하면 제목은 ‘나의 생각’인데 신문사나 논설위원의 입장을 그대로 베껴요. 일단 생각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을 써보라고 하니 어려운 측면도 있지요.

=한겨레 보면서 미흡하다고 생각한 점은 없었나요?

=한겨레 보시는 선생님들 말씀을 전할게요. 전에는 진보적이었는데 요새는 너무 객관적, 중립적이라고 하시던데요. 변했다는 거죠. 미흡한 점이 있긴 하겠지만, 비판보다는 지지가 필요한 때라는 말씀에 공감해요. 한겨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저한테는 좋은 점만 보이던걸요.

=얼마 전 수원에서 독자분을 만났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겨레가 진보적 신문인가. 진보라는 테두리는 조중동을 보수라고 볼 때 가능한 것이다. 한겨레는 상식적인 신문이다. 진보와 보수로 나눌 게 아니라 비상식·비정상 신문과 상식·정상 신문으로 나눠야 한다.” 공익성, 공공성, 진실이 가르는 잣대여야 된다는 말씀이었어요.

=최근에 황우석 박사 관련 기사를 비교해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애국심, 진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고요.

=소영양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요?

=역사학이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어요. 인문과학이 좋은데 주변에서는 나중에 취직에 도움이 되는 곳에 가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공부 많이 해야겠네요.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요. 제 아들도 흔히 말해 돈 안 되는 아리스토텔레스 공부해요.

=견학 신청을 하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제가 평소 존경해온 홍 선생님까지 만나 너무 좋았습니다.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좋은 시간 알차게 보내세요.

정리 김보협/제2창간운동본부, 사진 탁기형/사진부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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