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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4 18:17 수정 : 2005.02.04 18:17

지율 스님이 단식 100일째를 맞은 지난 3일 주요 일간지들의 관련 기사.



지율 단식에만 초점…천성산 문제 공론화 외면
단식 100일 맞춰 감성 자극 기사 생산에 머물러

“단식이 아니라 환경가치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춰달라.”

지율 스님이 단식기간 중에 기자들한테 했던 당부는 지켜지지 않았다. 대부분 언론들은 3일 밤 지율 스님이 단식을 풀 때까지 급박한 어조로 스님의 상태를 전달하는 데 급급했다. 한 비구니의 목숨을 건 투쟁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천성산 문제와 관련해 언론이 합리적 공론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피디연합회보>가 3일 내놓은 방송뉴스 모니터 보고서를 보면, <한국방송>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등 방송 3사는 지율 스님이 청와대 부근에서 단식을 계속하다 종적을 감춘 지난달 22일이 돼서야 메인뉴스에서 관련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스님이 단식을 시작한 지 87일째였다. 이어 30일 스님이 정토회관에서 머물면서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는 기사와 정치인 30여명이 ‘지율스님 살리기에 나섰다’는 사실 등이 보도됐다. 단식 100일째인 3일 밤, 방송사들은 지율 스님이 단식을 풀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관련기사로 △천성산의 환경적 가치 △공사진척 상황과 향후 전망 등을 짚긴 했다. 그러나 피디연합회보는 “방송 3사의 메인뉴스에서는 단식일수, 스님의 잠적, 주변의 우려만을 부각시켰을 뿐 스님이 단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인 생명의 소중함이나 그 간의 과정은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 유력언론에서 지율스님 문제를 2개면에 걸쳐 크게 다룬다고 해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당장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100일째 되는 날 기사를 쓰겠다는 거예요.”

지율 스님 쪽 관계자가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우리 언론의 천박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신문은 방송뉴스보다 심층보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되는데도 이를 외면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2일 낸 모니터 보고서를 보면, <중앙일보>는 지난달 25일 ‘생각뉴스’에서 짧막하게 지율 스님이 행방을 감췄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2일 <단식 99일 지율스님 건강 악화 청와대 설득도 실패>에서 스님의 현재 상태를 보도하는데 그쳤다. <조선일보>는 중앙에 비해 양에서는 앞섰지만 <지율스님 어머니 “내딸 살려주세요” 청와대 앞에서 호소>(1월28일치)<“지율스님 삶의 희망 버려”> 등 깊이있게 이 문제를 짚어주기보다는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바빴다. 여론형성을 주도하는 유력 신문들이 환경문제를 지율 개인의 ‘100일 캘린더(달력)’ 기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동아일보>는 지율스님과 정부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도 <경부고속철도공사 미룰 수 없다>(1월31일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현 정부 들어 대형 국책사업이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끌려다니며 표류하는 일이 잦다”며 사실상 ‘터널 관통공사 재개’를 촉구했다.

이에 반해 한국방송의 <시사투나잇>, 에스비에스의 <세븐데이즈>, 문화방송의 <생방송 화제집중>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에서 △지율 스님의 단식 요구조건 △정부의 입장 △터널공사 과정 등을 다각도로 보여줬다는 점이다. 신문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방송에 내준 꼴이 됐다.

지율 스님과 정부는 3일 △환경영향 공동조사 3개월 실시 △이 기간 조사에 영향을 끼칠 행위 금지 △지율스님의 단식 중단과 건강회복 등에 합의했다. 국민들은 언론이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지 않는’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고 천성산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모색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김영인 기자 yi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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