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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4 16:30 수정 : 2005.02.04 16:30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정치부장이었던 나의 기자 경력은 고작 7년 정도였다. 그나마 정치부 기자 경력은 4년을 넘지 못했다. 그것도 이미 13년 전인 1975년 해직당해 기자직을 떠나 있었는데, 그동안 정계도 세대교체가 일어나 낯익은 정치인들도 거의 없어 실제로는 경력이라 할만한 것이 못되었다.

당시 편집국 선배 그룹을 형성했던 해직기자들의 형편은 대체로 나와 비슷했다. 그러나 선배 데스크들을 탄탄하게 받쳐준 중견기자들은 잘 나가는 신문사 기자로서 월급을 2분의 1 또는 3분의 1로 깎이면서도 한겨레로 자리를 옮겼던 현직 경력기자들이었다. 이들 덕분에 신문은 그럭저럭 모양을 갖추긴 했지만, 부차장 등 데스크들의 경력부족으로 한겨레신문을 펼쳐들면, 아마추어 티가 물씬 풍겼다.

특히 데스크 칼럼이 그랬다. 독자들은 칼럼을 통해 뉴스의 깊은 흐름을 알고 싶어 하며, 전문가의 해석과 견해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란 짧은 경력에 긴 공백기간을 가졌던 해직기자 출신 데스크로서는 힘겨운 일이었다. 심지어 당시는 정치의식이 넘쳤던 많은 데스크들이 자기가 맡은 전문분야와는 상관없이 칼럼의 주제로 무조건 정치를 다뤘다.

그렇다고 이들이 독자들보다 정치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독자들도 다 보았을 텔레비전이나 신문 뉴스를 계기로 잡아 자신의 정치철학을 풀어내는 식이었다. 이런 경우 칼럼은 흔히 “어제 텔레비전 토론을 보니…”하고 시작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때만해도 독자들이 시원한 질타와 비판의 소리에 굶주려 있던 시절이라 한겨레의 아마추어리즘은 곧 활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지금의 언론은 신랄한 비판 기사만으로는 환영받을 수가 없다. 독자들은 이제 목소리 큰 비판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비판을 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독자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는 신문도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던지고, 프로들이 만드는 신문답게 표현을 절제하고, 깊이 있는 분석 기사를 내 놓아야 한다.

지난 2일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한 경제전망 기사는 깊이 있는 분석과는 거리가 먼 기사다. 신문들은 대체로 정부나 전문기관들이 발표한 거시경제 지표들을 분석하는 것으로 기사를 꾸몄는데, 더 중요한 것은 이 숫자들에 파묻혀 있는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를테면 단순히 자동차 판매대수가 늘었다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소형차와 고급차 등 차량 가격에 따른 판매 추이가 어떤지도 밝혀야 한다.

지난 2일치 한겨레 1면 머리기사는 프로가 만들었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의 절제되지 않은 표현을 썼다. 민주노총의 임시 대의원 대회가 폭력사태로 유회됨으로써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무산되었다는 이 기사는 컷 제목이 “민주노총 대의원회 폭력 ‘얼룩’”이었다. ‘노사정위 참여 무산’과 ‘대의원회 폭력’ 중 무엇을 이 기사의 포인트로 생각하는가는 편집자의 가치판단에 따라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대의원들이) 의사진행 방해 과정에서 난동에 가까운 행동을 벌여 대다수 대의원들의 분노를 샀다”는 표현은 균형을 크게 잃었다. 우선,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이 없다. 대의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했는지, 대의원들과 인터뷰한 대목도 없었다. 게다가 이런 식의 표현은 신문지면에서는 이미 퇴장당한 거칠고 주관적인 상투적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기자와 신문이 민주노총의 내부 파벌 중 어느 쪽 편을 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신문은 지금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협공 속에서 어떻게 생존의 활로를 찾느냐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텔레비전은 영상과 직접적 전달력, 인터넷은 속보성과 무제한적인 기사의 양으로 압박해 온다. 신문은 보도의 정확성과 절제된 표현, 분석력 등 뉴스의 질로써 승부를 걸어야 한다. 신문이 자신의 무기를 스스로 던져버리면 살아남기가 어려운 엄중한 상황이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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