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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9 10:17 수정 : 2019.03.19 10:56

후원제 도입, 류이근 편집장 인터뷰

<한겨레21>이 2019년 3월 ‘후원제’를 출범시킨다. 구독 수익과 광고 수익으로 양분된 <21> 재정에 ‘후원 수익’이라는 새로운 물적 토대가 생기는 일이다. 후원제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는 것일까? 구독제랑 후원제는 무엇이 다를까? 당장 <21> 독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후원제는 후원 의사가 있으면 구독료 외에 후원금을 <21>에 내는 것이다. 기존 구독제가 변경되거나 전환되는 것이 아니다. 구독하던 분들은 계속 구독하면 된다. 다만 기존 구독자 중에 <21>에 더 투자하고 싶은 분들이나, 여러 이유로 구독은 안 하지만 포털이나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21> 콘텐츠를 만난 비독자들이 스스로 정한 후원금을 별도의 후원 계좌로 보내는 것이다. 뉴스에 직접 비용을 낸다기보다는 <21>의 가치에 동의하고 <21> 보도를 지지하는 이들이 자신의 의사를 후원으로 표시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운영 방식에 대한 설명은 단순하지만 사실 그 의미는 간단치 않다. <21>에는 ‘후원 수익’이라는 제3의 물적 기반이 생기는 일이고, 기존 독자에게도 ‘후원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느냐보다 왜 하느냐에 독자와 뉴스룸의 공감과 공유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뉴스룸에선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질문이 독자들에게서 분출할 것이다.

류이근 편집장은 독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적임자고, 또 대답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책임자다. <21> 후원제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3월12일 한겨레신문사 4층 출판국 한겨레21부 회의실에서 독자를 대신해 류이근 편집장을 대면했다. 편집장 인터뷰로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 분들은 <21> 독자전용폰(010-7510-2154)으로 문자를 남기거나 전자우편(ryuyigeun@hani.co.kr)으로 문의하면 류 편집장이 직접 답변할 계획이다.

하반기 경영계획과 ‘만리재에서’ 통해 공식화

<21> 편집장으로 올 때 후원제 시행을 염두에 두었나.

아니다. 후원제를 알고는 있었지만 시행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2014년 몸담은 한겨레 창간 25주년 미래기획 태스크포스(TF)팀에서 콘텐츠 유료화로 한겨레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했는데, 후원제는 주목 대상이 아니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후원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이었다.

<가디언>의 실험이 성공하면서 후원제가 디지털 시대 미디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한국 독자들은 30여 년 전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만들기 위해 후원제에 동참한 경험이 있다. 바로 <한겨레신문> 창간이다. 1988년 <한겨레신문>은 국민 후원금으로 창간됐다. 주식을 사는 형식을 띠긴 했으나 국민주 신문은 일종의 후원제다. 한겨레 구성원은 후원제 성공을 경험한 것이다.

반면 후원제와 관련된 실패의 경험, 아픈 기억도 있다. 2005년 제2창간운동 역시 일종의 후원제였는데, 당시 모금한 돈이 한겨레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데 재투자되지 못했다. 부대 비용 등을 빼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 언제 <21>에 후원제를 도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나.

편집장이 된 직후인 지난해 5월 <시사IN> 고제규 편집장을 만난 뒤였다. <시사IN>이 당장 망할 것도 아닌데, 나름의 명분을 갖고서 후원제를 시행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후 마치 돌다리를 두들기며 걷듯이 조심스럽게 생각을 진척시켰다. 그러다 2018년 하반기 <21> 경영계획을 짜면서 ‘후원제 모델 시행 검토’를 포함시켰다.

후원제를 공식화한 것은 제1240호 ‘만리재에서’(뻔뻔해질 수 있을까)였다. 하반기 경영계획은 ‘만리재에서’를 쓰기 전의 일 아닌가.

불씨를 간직하고서 발화를 어떻게 시켜야 하나 고심하던 때에 독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름’을 부어주었다. 2018년 11월9일 있었던 ‘2018 #독자와 함께’ 행사도 발화제 구실을 했다. 당시 한 독자가 ‘현재 잡지 값 4천원을 5천원으로 올려도 기꺼이 내겠다’고 했다. 사실상 후원이었다. 후원제가 뉴스룸 안팎에서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사실 ‘만리재에서’를 쓸 때도 정말 조심스러웠다.

왜 조심스러웠나.

두 가지다. 사내에서는 제2창간운동으로 실패한 후원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후원제를 하는 것에 부정적 여론이 있었다. 사외적으로 독자에겐 기존 구독하는 것 외에 플러스알파로 또 손을 벌리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만리재에서’ 언급한 독자가 전자우편으로 “뻔뻔해져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숙제를 해결해준 것처럼 고마웠다.

제2창간운동 실패를 트라우마라고까지 할 수 있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지향했던 신뢰받는 매체로서, 한겨레가 제2창간운동으로 도약할 수 있을 듯한 기대감이 내부에 있었다. ‘우리를 후원해달라’는 건 당시에도 어렵게 다시 꺼낸 요청이었는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제 더는 후원받을 수 없게 됐다, 중요한 기회를 놓쳐버렸다, 남은 카드가 없다, 구성원들이 그런 정서를 공유했던 것 같다.

지난해 11월9일 서울시 종로구 문화공간 온에서 ‘2018 #독자와 함께’ 행사가 열렸다.

구독자 아닌 후원자를 찾아서

<21> 구성원으로서 나의 트라우마는 이런 것이다. 2017년 대선 직후 있었던 ‘덤벼라 문빠’ 사태를 겪으면서 미운털이 박혔다고 생각했다. 좀 위축됐고, 구독도 어려운데 하물며 후원이 가능할까 생각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독자들을 주목하고 싶다. <21> 독자는 아니지만 우리의 가치를 아는 비독자들에게도 지속가능한 <21>을 위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최근 후원제를 하면 돕겠다는 의사를 설 퀴즈큰잔치 응모엽서에서 밝힌 독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후원제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닌데, 먼저 손을 내민 독자들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2018년 7월부터 ‘독편3.0’이 출범했고, 독자들과 카톡방 등을 통해 직접 소통했다. 그 결과인가.

후원제를 생각한 것은 독편3.0이 출범하기 이전이지만, 독편3.0을 하면서 탄력받은 게 사실이다.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할 기회가 상당히 많았다. 200여 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것만 서너 차례 된다. 독자 70여 명이 참여한 독편3.0 카톡방에서 독자들과 직접 소통한다. 한두 달에 한 번꼴로 독편3.0 독자들과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나기도 했다. 2018년 11월9일에는 #독자와함께 행사를 했다. 독자들과 더 많이 소통하면서 독자들과 뭔가를 함께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독편3.0 카톡방에서 제1240호 ‘만리재에서’를 거론하면서 몇몇 독자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한두 명이라도 그런 독자가 있다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후원제 참여자가 소수여도 좋다는 말인가.

후원자가 100명, 10명, 단 한 명이라도 우리한테는 자산이다. 규모로는 따질 수 없다. 후원자는 <21>의 ‘가치’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존재 자체가 <21>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매체 생존을 위해 구독자를 늘리는 방법도 있지 않나. 구독과 후원은 뭐가 다른가.

매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종이 구독자 수를 늘리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뉴스에 돈을 내지 않는다. 광고도 디지털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처럼 종이 구독자를 늘리는 일에 매달리다보면 <21>은 궁극적으로 소멸할 것이다. 외국 언론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기존 종이 매체 구독 확장에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디지털 구독자 수를 늘리거나, <가디언>처럼 아예 후원제로 개편한다. <가디언>은 구독도 후원의 형태로 본다.

구독과 후원이 다른 점은 비독자 참여 여부인 것 같다.

최근 한 비독자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시간이 없어서 잘 읽지 못하는데 <21>이 쌓이는 게 싫어서 구독을 끊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1> 보도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기에 후원은 하고 싶다고 했다. 2018년 7월 현재 <가디언> 후원자가 100만여명인데, 대부분 <가디언> 구독자가 아니다.

리워드는 양질의 저널리즘

<가디언>은 100만 명인데 <21>은 단 한 명의 후원자라도 좋다니, 후원제로 지속가능한 생존 기반을 만들겠다는 포부에 견주면 목표치가 너무 낮은 것 아닌가.

우리가 지금 시작하는 후원제는 후원자들한테 맡겨놓았다고 보면 된다. 1~2년도 아니고 25년 동안이나 좋은 보도를 해왔다. 지금도 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할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우리 힘만으로는 어렵다. 독자의 힘이 필요하다. 독자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방식으로 구독하는 것 말고 후원이란 새로운 방법이 생겼다고 알리는 것으로 일단 시작하려 한다.

광고 수익이 반 토막 나는 외국 언론에 견줘 한국 언론의 광고 사정이 나쁘지 않고, 이것이 한국 언론의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있다. 후원제의 시작이 좀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당장 폐간을 걱정할 정도로 절박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가디언>이 당장 망할 것 같아서 후원제를 시작했을까? 아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양질의 저널리즘, 양질의 매체가 소멸할 것이 자명하다. 그건 <21>이라는, <가디언>이라는 개별 매체가 없어지는 수준을 넘어서는 사회의 위기다. 후원제 도입은 이런 인식을 공유하는 이들의 실체를 확인해 이들을 모은다는 의미도 있다.

광고 의존도 심화는 위험한 신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얘기했다. 한국 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보다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문제다. 광고주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후원자한테 의존하는 게 저널리즘의 본질, 정도, 초심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다.

후원금은 어떻게 쓰이나.

용처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했다. 철저하게 탐사, 기획, 심층 보도 등 취재에 재투자되도록 한정할 계획이다. 수입·지출 내역은 독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다.

후원자에게 보상도 있나.

일종의 ‘리워드’(사례)를 고민하고 있는데 우선은 좋은 보도가 독자들이 가장 원하는 리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게 후원제의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아니겠나. 후원은 결국 <21> 저널리즘의 질도 더 끌어올릴 것이다.

누가 <21>을 후원할까. <21> 독자들과 소통해보니 그들의 공통점이 있던가.

빠른 정보 흐름 속에서 자기만의 필터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단지 사람들이 많이 볼 것 같다는 기준 하나로 우열이 나뉘는 포털의 뉴스를 소비하는 대중은 포털의 필터를 추종하게 된다.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에 공짜뉴스는 편하고 좋지만, ‘확증편향’과 ‘혐오’라는 해악을 낳았다. 대중이 포털로 공짜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와 기자가 ‘기레기’로 비하되고 뉴스가 가짜뉴스로 폄훼되는 시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21> 독자는 뉴스의 질을 따지는 이들이고, 양질의 보도에 연간 18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기꺼이 내는 사람들이다.

우리 힘으로 안 된다면 빌리자

<21> 뉴스룸에선 후원제 시행을 걱정하는 의견도 있는데.

독자에게 이중으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해야 할 때다. 우리 미래를 준비할 때, 우리 힘으로 안 된다면 독자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당장 거창한 성과가 안 날 수도 있다. 우리는 좋은 보도를 지속할 것이고, 그때마다 <21> 후원제의 모멘텀이 생길 것이다. <21> 후원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성역 없고 타협 없는 <21>의 보도가 백년, 천년 갈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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