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0 05:00
수정 : 2019.02.20 05:00
‘이종 결합’ 유료방송시장 격량 예고
LGU+, 케이블 1위 CJ헬로 지분 인수
SKT, 티브로드 합병 추진…KT도 검토중
공정위, 미디어 결합 긍정적 반응에
첫 심사 앞 ‘공적 책무’ 이행 목소리
시민사회·학계에선 부작용 우려
”유료 방송의 지역채널 보유 등
공공성 강화 중심 엄정 심사해야…
방송산업 구조 변화 혁신안 필요”
통신자본이 방송자본을 흡수하는 엘지유플러스(LGU+)의 씨제이(CJ)헬로 지분 인수가 지난 14일 이사회를 통과함에 따라 유료방송 시장에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의 티브로드(케이블 2위) 합병 추진과 케이티(KT)의 딜라이브(케이블 3위) 인수 검토 등 인수합병 이슈가 줄을 잇는 가운데 방송-통신 이종 플랫폼 간의 첫 결합 심사를 앞두고 방송의 공공성·지역성·다양성 등이 훼손되지 않도록 규제기관의 엄정한 심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위기의 케이블방송 케이블방송 1위 사업자인 씨제이헬로(옛 씨제이헬로비전)는 2015년 당시 통신사 1위 에스케이텔레콤과 인수·합병 계약까지 체결했으나 독과점 우려로 공정위의 불허를 받은 전례가 있다. 이번에 달라진 점은 통신사 3위와의 결합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업계 1위인 씨제이헬로가 또다시 손을 털 정도라면 케이블산업에선 어떤 위기가 닥친 것일까.
케이블방송은 유료방송의 맏형으로, 지상파 방송의 직접 수신이 어려운 지역에서 공공성과 지역성 보장이라는 책무를 안고 1995년 출범했다. 2002년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가세에 이어 2008년엔 통신사 운영의 인터넷방송 아이피티브이(IPTV)가 후발주자로 뛰어들며 유료방송 3파전 시대를 열었다. 2011년에 케이블 가입자의 33%에 그쳤던 아이피티브이는 이동전화와 초고속인터넷, 방송을 묶은 결합상품을 무기로 2017년 11월부터 케이블 가입자를 추월하며 유료방송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통신사에 방송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케이블업계는 한때 ‘원 케이블’ 전략으로 독자적인 통합 등 회생책을 적극 모색했지만 위기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 여기에 넷플릭스 등 동영상온라인서비스(Over-The-Top·오티티) 급부상도 위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케이블방송의 특장은 전국 단위인 아이피티브이와 달리 권역별로 지역채널을 보유해 지역성을 구현한다는 점이다. 지역의 문화·역사·교육 등의 뉴스와 정보를 전하고 지역의 운동회와 노래자랑 등을 주민들과 공유하는 ‘마을미디어’ 구실을 요구받는다. 특히 지방선거 때는 그 지역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촘촘히 전하는 선거방송으로서의 몫도 있다. 이런 방송의 지역성 보장은 지역분권화,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보호, 지역 경제발전 등에 방송이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엘지유플러스가 합병 대신 지분 인수를 택한 것은 정부의 승인을 쉽게 받으려는 우회적 방식으로, 최대주주만 바뀌고 케이블방송의 지역채널이 당분간은 유지될 가능성이 있지만 궁극적 합병을 대비해 ‘지역성 보장’을 승인 조건에 달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기현 종합유선방송협의회(SO) 회장은 “지역성 보장은 방송철학을 구현하는 데 중요하다. 지역방송 사업권을 어떻게 보호하고 활성화할지 투명한 메시지로 전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 공공성·공익성 심사를 이번 미디어기업 결합은 유료방송 3, 4위로 독과점 우려가 극심했던 이종플랫폼 1위들의 짝짓기와 다르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승인에 낙관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엘지유플러스의 씨제이헬로 인수 이후 전국을 기준으로 할 때 유료방송 시장의 점유율은 24%에 그치지만, 씨제이헬로가 전국 78개 권역 중 23곳에서 지배 사업자이니만큼, 특정 지역에선 시장 독점의 우려는 여전하다. 미디어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독점 기준이 되는 시장 획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시민사회와 학계에선 이를 계기로 정부가 방송산업에 대한 큰 그림, 혁신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단순히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몸집 불리기에만 집중하면 유료방송업계가 결국 통신사 중심의 3강 체제로 정리되고 콘텐츠를 공급하는 케이블 플랫폼이 사라진다면, 결국엔 콘텐츠 제작에 수백억원을 쏟아붓는 넷플릭스 등과의 경쟁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우려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처럼 규모의 경제로만 접근하지 말고 유료방송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보여줘야 한다. 지역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육성책을 내놓고 유료방송으로서의 새로운 가치, 공적 책무, 이용자 편익 확대 등을 전제로 승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지난 14일 성명을 내어 “정부는 유료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인수합병 심사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 미디어 혁신성장을 위한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외국에서도 동종, 이종플랫폼 간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공정경쟁 제한, 시장 지배력 확대, 이용자 후생 제한 등을 중심으로 꼼꼼한 심사를 한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선 방송사 인수합병 규제에 대해 공익성 등의 가치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 유럽에선 이용자 보호에 방점을 둬 유료방송 간의 합병 승인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정량 평가만이 아닌 방송의 공공성, 지역성, 다양성,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 정성적 평가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전범수 한양대 교수는 “미국은 기업의 효율성에 주목하지만 공익성의 끈도 놓지 않는다. 이 두가지의 균형을 맞추도록 양면 전략을 쓰며 구체적 조건을 내건다”고 전했다.
국내 유료방송은 저가 시장이어서 이용자에게 당장 가격 상승 압박보다 결합상품의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벌통신기업이 수익 위주의 방송 편성을 펼쳐 콘텐츠의 공익성이나 다양성을 외면해 이용자 후생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통신기업 중심으로 3분할이 예고되는 유료방송 시장이 독과점 체제로 진입하면 공익적 콘텐츠의 축소가 우려되고 결국 공영방송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짚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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