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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3 16:46 수정 : 2005.12.13 20:32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논조 “재검증은 없다”에서 “재검증해야”로 급선회


황우석 박사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을 둘러싼 논란이 11일 서울대의 ‘재검증’ 발표와 이에 대한 <사이언스>의 환영으로 일단락되고 있다. “재검증은 없다. 후속논문으로 검증받겠다”던 황 교수팀이 “성실히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히자, 언론과 여론의 태도가 “차분히 검증 결과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언론들의 보도태도다. ‘피디수첩’ 보도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던 다수의 언론은 “재검증하면 기술이 유출된다”며 “과학계에 검증을 맡기거나 황 교수의 후속논문으로 검증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대가 재검증 방침을 밝히고 사이언스가 이를 환영하자 “재검증밖에 없다”거나 “재검증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등으로 입장을 바꿨다.

과학자의 자존심 때문에, 사이언스의 권위 때문에 “재검증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던 황 교수팀과 대다수 언론은, 황 교수와 사이언스의 태도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사이언스는 국내 언론들과 황교수가 전하던 바와 달리 12일 “우리는 권위있는 학문기관이 이 문제에 관해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한국 언론들은 왜 이렇게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을까? 황우석 연구를 둘러싼 언론의 보도 변화를 살펴본다.

황교수만 “검증 불가”에서 “검증 수용”으로 바뀐 게 아니라 언론도 급선회
조선일보 “…DNA조사를 통한 검증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황우석 연구 논란 검증밖에 없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이 지난달 22일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복제 관련해 첫 의혹을 제기한 뒤, ‘피디수첩’을 비판했던 <조선일보>의 12일치 사설 제목이다. 지난달 조선일보의 사설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5일치 ‘황우석 연구가 윤리 논란을 피할 수 있으려면’이란 사설을 통해 “언론을 비롯해 정부와 시민단체, 기업 등은 황 교수가 연구 외적인 부담에서 벗어나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황 교수팀이 매매된 난자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한국 생명공학, 시련 딛고 더 높게 도약해야’라는 사설을 써 황 교수팀을 적극 옹호했다. 이 사설에서는 “(난자를 제공한) 황 교수팀 여성 연구원을 비난할 수는 없다. 보상금이 지급되기도 했지만 당시는 그걸 금지하던 법이 없던 때”라고 대신 해명까지 해줬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런 태도는 서울대가 황 교수 논문을 검증하기로 한 뒤 정반대로 바뀌었다. 조선일보는 12일치 사설에서 “논란이 여기까지 왔다면 DNA조사를 통한 연구의 진실 여부 검증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며 “황 교수팀이 검증을 회피하는 것처럼 비치게 되면 그 자체가 의문을 깊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은 이날치 3면에서도 92년 복제양 둘리도 재검증을 거쳐 논란이 끝난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국민일보, “재검증 한다면 문제 심각해질 것”에서
‘조사 엄정하고 투명하게’

조선뿐 아니라 국민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매일경제 등 대부분의 언론들도 황 교수의 ‘입’에 따라 보도와 논조가 춤을 췄다.

<국민일보>는 10일치 ‘황우석 논란 냉정해지지 못하면…’이라는 사설에서 “<사이언스>에 게재되면서 관련 전문가들이 정밀한 검증과정을 거친 논문에 대해 ‘과학적 검증’을 거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그런 권위와 국민적 여망이 간단히 무시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13일자 <국민일보> 사설
그러나 사흘 뒤 사설에서는 “서울대가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진상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적절한 선택”이라며 “핵심이 DNA 지문 중복 문제인 만큼 반드시 DNA 조사를 거쳐 진실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국민일보는 더 나아가 “DNA 검사분석 과정에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불필요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며 “미 피츠버그대에 파견나간 연구원이 ‘2개의 줄기세포 사진을 가지고 11개의 줄기세포 사진을 만들었다’는 ‘중대 증언’을 정말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세계일보, ‘“진위 의혹 근거 없다”는 사이언스지’에서
“서울대 재검증 조용히 지켜볼 때”

<세계일보>는 10일 사설에서 “사이언스지의 도널드 케네디 편집장이 ‘황 교수의 연구논문이 맞다는 걸 확신’해 논문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진실게임’도 결론이 나고 있는 셈”이라며 했지만, 13일치 신문 사설에서는 “황우석 교수가 서울대에 줄기세포 연구 관련 재검증을 요청한 것은 DNA 지문 조사 결과를 두고 계속 의혹을 제기하고 ‘PD수첩’ 녹취록까지 인터넷에 흘러간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합당한 선택”이라고 꼬리를 내렸다.


13일자 <세계일보> 사설

<서울신문>도 애초 ‘과학논문 검증은 과학계 몫이다’(12월5일자), ‘MBC사과로 끝날 일 아니다’(6일자), ‘줄기세포 논란 방치 바람직한가’(10일자)등의 사설과 8일치 ‘염주영칼럼-황우석 재판이 남긴 것’에서 황 교수 논문의 검증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문화방송과 국내 과학계를 비판하는 논조를 유지했지만, 12일치 신문에서는 워싱턴 특파원발 기사로 “황교수 연구 문제점 정보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13일치 사설 ‘줄기세포 검증 뒷말 없게 철저히’에서는 “이번 검증이야말로 전문성과 권위를 가진 조사위원 및 연구기관에 의해 객관적이고 투명하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13일자 <서울신문> 사설.

매일경제 “황교수 후속 연구에 검증 맡겨라”에서 “더이상 논쟁 말고 검증 기다려야”

경제신문도 다르지 않았다. <매일경제>는 10일치 신문 사설에서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연구 내용에 대해 비전문가인 MBC 피디수첩팀이 검증하겠다며 의혹을 제기하니 개탄스럽다”며 “과학에 대한 검증은 과학자에게 맡겨야 하며, 황 교수의 이미 발표된 논문의 토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후속 연구 성과를 내는 일이 최선의 검증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13일치 사설에서는 “줄기세포 진위에 대한 검증은 후속 연구 성과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차선책이나마 검증을 받게 된 이상 검증 결과를 놓고 다시 논란이 빚어지는 일이 없게끔 철저하고 신뢰성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발 뺐다. 사설은 “위원회를 구성하는 일부터 서울대 내·외부를 가리지 말고 고도의 전문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인사를 고루 기용해 첫 단추를 잘 끼우 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사 대상 범위와 검증 방법을 정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작업 등에서 사이언스 나 영국의 네이처지, 미국 피츠버그대 등 외국 전문기관의 의견을 반영하는 노력에도 소홀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도 13일치 사설 ‘의혹, 확실한 매듭짓는 재검증돼야’에서 “그동안 후속논문 발표를 통해서만 줄기세포의 연구성과를 다시 평가받겠다고 밝혀온 황 교수팀이 서울대에 논문 재검증을 스스로 요청한 것은 논란을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이라며 “규명의 핵심인 DNA 분석에 반드시 외부 전문가도 참여토록 함으로써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사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검증은 없다”던 오명 부총리, 그리고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지난 8일 황우석 교수를 병문안하고 나오며, “더이상 검증 문제를 거론하지 말자”던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도 재검증 결정에 침묵하고 있고,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비롯해 학장들도 태도의 변화를 보였다. 애초 서울대는 학장단 회의에서 “서울대가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학은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우세했었다.

다만, 과기부는 “황 교수의 연구 결과에 대한 서울대의 재검증 방침으로 연구 지연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우려하며, “서울대가 조사위 구성에 정부의 참여를 요청하더라도 과학계 자체의 검증문제인 만큼 이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황 교수 논란이 후속 연구과정에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방침을 밝혔던 청와대도 12일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진위 논란과 관련해 최근 새롭게 제기된 문제에 대해 “정부가 과학계를 지원하는 문제라면 재검증 문제는 과학계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며 대응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누리꾼, “재검증 결정 환영한다”

재검증 불가를 주장했던 누리꾼들도 일단 재검증 결정에 환영한다는 반응이 많다. 누리꾼들은 “황우석 교수의 재검증 결단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정말 옳은 결정이었다”, “재검증이 한국 과학계에 불명예를 안겨 줄 수도 있었던 우려를 씻고, 그동안 의혹과 혼란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도들도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일단 재검증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다음> 토론방에서 ‘hyunmin’는 “과학자의 논문에 의문을 표시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의문점에 대해 납득이 갈 만한 설명과 확실한 근거 제시는 필요하다”며 “사태를 이렇게까지 만든 것은 황 교수의 부적절한 대응이 크다”고 밝혔다.

11일 서울대가 재검증 결정 방침을 정한 뒤에는 재검증 절차에 들어갔으니 논란을 중단하고, 결과를 지켜보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구마라떼’는 “어차피 재검증에 들어갔으니, 이젠 정말 지켜볼 때”라고 했으며, ‘dark저주’도 “검증하고 있으니, 조용히 지켜보자”고 충고했다.

일부는 재검증 과정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쑤기’는 “재검증의 공정성을 위해 서울대가 아닌 객관적인 전문기관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며 “재검증이 황 교수 죽이기나 문화방송 살리기가 아닌 진실을 밝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썼다.

<네이버> ‘lynn_0315’처럼 “논문 진위를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혹해소를 위해서는 DNA 검사부터 해야 하지 않나”라거나, ‘kw315’처럼 “서로 윈윈하기 위해서는 이틀이면 검증이 되는 DNA 검사를 해 논란을 빨리 종시시켜야 한다”는 조언글도 눈에 띄었다.

상황이 달라지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언론의 보도태도도 달라지고 여론도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에서 불거진 몇몇 의혹을 둘러싼 논란에서 언론의 보도 태도와 여론의 변화가 비단 새롭게 드러난 사실 때문이었는지, 황 교수의 입장 선회에 따라 달라진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부언론 '황교수 엄호' 지나쳐 잇단 오보 생산

일부 언론들은 황우석 교수를 옹호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오보를 잇따라 내보내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9일치 신문에서 피츠버그대 연구원 가운데 일부가 미국 영주권을 신청했다고 보도하며 줄기세포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치 기사에서 “연구원들은 황 교수팀과 기술 보안 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상태로, 이들이 미국 연구소에 잔류하면서 줄기세포 연구를 한다면 이를 제지할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셈”이라며 “이들은 또한 황 교수팀과 기술 보안 유지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황교수팀 연구원 미국 영주권 신청"...피츠버그대 `사실무근'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뒤, <에스비에스> 등 다른 언론들도 이런 내용을 확인 없이 인용보도했다. 노컷뉴스는 연구원 가운데 2명이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언론들은 연구원의 영주권 신청에 따라 황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복제 등 연구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위험을 한껏 고무시켰다. 하지만 이 기사가 근거 없는 오보로 드러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섀튼 교수의 제인 더필드 대변인은 8일 “파견된 한국인 연구원3명의 체류 신분에는 변화가 없으며 대학쪽이 이들의 영주권 신청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촉구했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피디수첩 제도 전에 이뤄진 일 논문 제출도 시간 거슬러 꿰맞추기 오보

조선일보는 이에 앞서 6일치 4면에 ‘황교수 휘청하는 사이…세계 첫 논문 일에 선수 뺏겨’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황우석 교수팀이 피디수첩의 협박·회유 취재에 시달리는 사이 일본이 줄기세포 관련 분야에서 또 다른 세계 최초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며 “5일 황 교수팀에 따르면 황 교수팀은 최근 개의 자연교배 수정란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으나 최근 연구가 외적인 요인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진행되지 못해 논문을 게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논문은 피디수첩의 취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제출된 논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련보도는 ‘오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도 <와이티엔> <세계일보> <동아일보> 다른 언론들은 이 소식을 앞다퉈 인용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8일치 사설에서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은 MBC PD수첩 사태로 일손을 놓고 있다”며 “연구진, 기업, 국가들이 분초를 다투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한국만 ‘1등 때리기’가 무슨 ‘시대정신’이라도 되는 양 횡행하고 있고, 결국 경쟁국들만 이롭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설 제목도 ‘황우석 때리기로 일본 돕는 사람들’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이승경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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