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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3 15:32 수정 : 2005.12.14 11:27

몇해전에 일본 공영방송인 NHK 교육방송의 아침 유아프로그램에 <영어로 놀자>가 방송되었다. 현재도 계속 방영되는 <영어로 놀자>는 평일 아침에 약 10분간씩 방송된다. 매주마다 영어의 간단한 단어 하나를 키워드로 선택해 그 소리나 글자, 뜻을 아이들에게 쉽게 알려준다. 외국인만이 등장하는 이 시간에 일본어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키우기위해 일찍부터 어린아이들을 영어에 노출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모국어인 일본어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영어로 놀자>가 방송된 뒤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일본어로 놀자>이다. 언뜻 들으면 무슨 아이들에게 일본어의 글자를 가르치는 프로그램 같지만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매일 아침에 <영어로 놀자>가 방송된 후 곧바로 <일본어로 놀자>는 곧바로 10분간씩 방송되고 있다. <일본어로 놀자>는 아이들에게 일본어의 아름다운 소리를 접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시간에는 아직 일본어의 글자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재미있게 일본어의 다양한 소리를 따라하게 한다. 여기에 이용되는 재료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주로 시), 그리고 라쿠고와 같은 전통예능의 대사 등 아주 다채롭다. 또한 지방 사투리의 음도 사용된다. 아이들은 평상시 일상 속에서 접하지 못한 다양한 일본어의 소리와 만난다. 이 소리가 문학작품 속의 시인지 전통예능의 라쿠고의 음인지 아이들은 모른다. 그러나 재미있는 일본어의 소리라는 것은 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의성어나 의태어를 따라하며 아이들은 등장인물의 몸동작을 보며 깔깔댄다. 일본어의 아름다운 음을 알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지루해 하지 않고 즐겨본다. 어른들이 봐도 재미있는 소리가 많이 나온다.

이렇게 일본 아이들은 매일아침 교육방송을 통해 영어와 일본어를 함께 접한다. <영어로 놀자>와 <일본어로 놀자>에서 영어와 일본어는 프로그램 제목대로 아이들의 놀이의 도구이다. 그렇나 두 가지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두 프로그램을 비교해보면 <영어로 놀자>는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영어로 익히게한다. 반면에 <일본어로 놀자>는 일상적인 내용과 거리가 있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깨끗한 일본어와 현재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르게 말하는 일본어의 여러 소리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일본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일본어를 모어로 배운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살아갈 아이들은 이제 일본어 속에서만 안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인식이 일본에서도 팽배하다. 공영방송에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으로 <영어로 놀자>를 만든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모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일본어로 놀자>를 만들어 일본어의 아름다움 소리를 어린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심어주려는 발상도 높이 살만하다. 아이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영어를 가르쳐주면서 일본어의 다양한 소리를 알게 하자는 것이다. <일본어로 놀자>는 일본어를 이용해서 자국의 문화를 아이들에게 놀이의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영어를 실용적인 면에서 배우게 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한글날이 국경일로 승격된 지금,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인가. 문자인 한글의 우수성만 따지고 문법의 오류만 지적하고 있다가 자칫 한국어의 소리를 곱게 가꾸어 가는 일에 소홀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한글은 이 땅에 살던 민중들의 소리가 있었기에 만들어졌다. 한글을 갖게 됨으로해서 우리는 그 소리를 제대로 기록하여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옛부터 전해온 우리의 소리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곱게 물려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소리의 다양한 모습을 어떻게 아이들이 골고루 맛볼수 있도록 해줄 것인가. 조금전에 놀이잔치에 나간다고 탈춤흉내를 내면서 얼쑤얼쑤하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일본어로 놀자>가 생각났다. 이웃나라의 <일본어로 놀자>를 그대로 흉내내자는 것은 아니나 어린아이들이 전통예능의 소리나 각 지방의 사투리, 그리고 고전문학에서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나 소설 속에 쓰여진 한국어의 소리를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한글날의 국경일 승격과 더불어 하나쯤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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