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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2 16:42 수정 : 2006.01.20 17:39

탁기형 사진기자

[제2창간] 한겨레 스타 ③ 탁기형 사진기자

독자 여러분 앞에 내놓는 세번째 한겨레 스타는 탁기형 사진부 기자입니다. 탁 기자는 이전 호에 소개드렸던 조연현(종교)·김양중(의료) 기자처럼 전문기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독자 김명숙님을 포함해 여러 분들이 “‘한겨레의 명품’ 지면을 통해 만나고 싶다”고 신청을 해주셨습니다. 평소 <한겨레>를 통해 익숙해졌거나 이 지면을 통해 만나고 싶은 기자들이 있으면 제2창간 소식 편집팀(02-710-0189, bhkim@hani.co.kr)으로 연락주세요. 애독자들이 부름을 받은 기자들이 기뻐할 겁니다.

‘맨드롱따또’. 뭐야? 무슨 뜻이지? <인터넷 한겨레>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자~ 오늘 그 의문이 풀립니다. 자신의 ‘갤로그’(gallog.hani.co.kr/khtak56)와 ‘필진 네트워크’(wnetwork.hani.co.kr/khtak)에 독특한 시각을 담은 사진과 글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주인공, 바로 사진부 탁기형(50) 기자의 필명입니다.

소풍·수학여행 사진 전담 소년
현상작업 직접 본 뒤 ‘유레카’
나이·직함 무색하게 현장 누비고
갤로그·필진네트워크 활동도 ‘짱’
“제 사진에 미소 지으면 행복”

제주도 사투리인 ‘맨드롱 따또’는 “(먹기 좋을 정도로) 적당히 따뜻할 때”를 뜻합니다. 사람의 성격에 적용하면 ‘따뜻한 사람’ 정도가 되겠지만, 조해일의 소설 <맨드롱 따또>에서는 주인공의 따뜻하고 무렁한 품성은 군대 집단의 폭력을 자극하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탁 기자는 왜 ‘맨드롱따또’라는 필명을 선택했을까요?

그는 “군대 시절 전 ‘고문관’이었어요. 매번 지적받고, 뒤처지고, 적응 못하고…. 군대에 있을 때 선임병이 왜 저를 ‘맨드롱 따또’라고 불렀는지 모르겠어요. 갤로그나 필진 네트워크 문을 열 때 주저하지 않고 이 단어를 갖다 쓴 것도 저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여서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맨드롱 따또’만큼 그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한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잘 웃고, 다정다감한… 한마디로 따뜻한 사람입니다. “젊을 때는 성격이 급하고, 과격했다”는 그의 항변(?)이 무색하게 지금의 그는 후배들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부담없는 선배이자 든든한 형(오빠)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 속에는 ‘정’과 ‘사랑’이 넘쳐나고, 꾸미지 않은 진실이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가족과 동료, 동식물, 눈과 하늘 등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풍경과 인물이 담겨 있는데도,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그의 철학만큼이나 그가 찍은 사진에는 감동뿐 아니라 얘깃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눈이 내리는 사진 밑에 “그날 밤은 눈이 이렇게 내리더이다”, 연탄 캐비닛 사진에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과 멀어졌던 연탄. 가끔 연탄불의 따뜻함이 그리워집니다”, 낙엽이 쌓인 등성이에 돗자리를 펴고 식사를 하는 가족의 사진에는 “가는 가을을… 조금이라도 잡고 싶습니다. 더불어, 이 사진을 보며…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 봅니다” 등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사진 찍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제게 주어진 일이 항상 사진찍기였고, 집 근처에 있는 사진관 주인 아저씨를 꼬셔 현상하는 모습을 본 뒤 평생 사진과 인연을 맺어야겠다고 결심했죠.”

물론, 그가 사진과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30년 전만 해도 ‘예술’ 혹은 ‘딴따라’는 터부시되는 분야였잖아요.” 그렇지만 부모님도 그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졸업 후 한때 무용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사진만큼 사회를 한눈에 보여줄 만한 도구가 없다고 여긴 그는 보도사진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뒤 사진기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이후 <세계일보>와 <서울신문>을 거쳐 95년 <한겨레>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한겨레> 입사 뒤에는 6년 남짓 사진부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도 그는 유용주의 ‘노동일기’가 연재될 때 직접 현장 사진을 도맡아 찍었고, 세상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때만큼 불행(?)했던 시절이 없었다고 하네요. “동료 사진기자들이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고맙고 즐겁게 일했지만 내근 임원을 맡은 이상 현장취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길이 없었으니까요.” 편집국장이 바뀔 때마다 일선 기자로 복귀하고 싶다고 하던 그의 뜻이 받아들여진 것은 2002년. 지금 그는 청와대 출입(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활발하게 일해야 할 때 사무실에 묶여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진을 마음 놓고 찍을 수 있는 지금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감정이 메마르지 않기를 매일 기도해요. 거리를 다닐 때, 산에 오를 때, 회사 공원이나 출퇴근하면서 접하는 것들을 사진에 담는 이유는 신문에서 보여줄 수 없는 ‘따뜻한 사진’만큼 우리의 정서를 담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또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동안 찍고 싶었던 사진을 많이 찍어,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조그마한 소망도 있고요.”

신문에 들어가는 사진 외에 갤로그와 필진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그는 요즘 더욱 바빠졌습니다. 신문 마감이 끝난 뒤나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꼭 이곳에 들러 그날 찍은 사진과 사진을 찍을 때 느낀 감상을 엮어 공개하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찍은 사진을 선별해 올리고, 의견글이나 방명록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요. 어떨 때는 귀찮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을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제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우울할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이 정도의 노력은 행복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에 불과하니까요.” 사진 선택의 기준은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진이 1순위 가는 것 외에는요.”

김미영/온라인뉴스부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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