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12 16:12
수정 : 2005.12.12 16:24
‘긴급출동SOS24’에 소개된 사연 중에 아주 특이한 경우가 있다. 정신병에 시달리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그의 자식들에 관한 사연이 바로 그것.
누군가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느 한 사람-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망상에 사로잡히면 그 주변의 사람들-자식들-도 서서히 그의 망상을 공유하게 된다고 한다. 정신과에선 그것을 '공유정신병'이라 일컫는다.
‘쓰레기가족이 된 4남매’란 제목으로 소개된 사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학교 과정까지 마친, 나이에 비하면 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중년의 어머니가 멀쩡한 수돗물을 폐수라고 주장하며 갖은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어머니는 네 자식들을 쓰레기 같은 집안에 가둬두다시피 하며 집안살림을 꾸려 나가고, 자식들은 집이라는 한정되고 단절된 공간 속에 놓여 서서히 어머니의 망상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성인이 되기까지 단 1년을 앞둔 큰딸마저 어머니의 망상을 공유, 망상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말하는 사실을 망상으로 치부한다.
더욱 특이한 경우로, 13세의 '영훈'이라는 아이는 가벼운 영양결핍을 제외하곤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자신에게 타인의 관심이 집중될 경우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그렇지 않은 경우엔 다리를 전혀 절뚝거리지 않는단 사실이다.
사회적 통념상 사람들은 교육수준, 나이와 이성적인 판단력은 정비례한다고 믿고 있다. 교육수준, 나이와 상관없이 어머니는 애초부터 난치성의 정신병을 앓았다 하더라도 이성적 판단이 충분히 가능한 나이의 자식들까지 어머니의 망상을 공유한다는 건 선뜻 납득하기가 힘들다. 단절된 공간에 놓였다 하더라도 자식들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어머니를 설득하거나 제압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또 하나의 사실은, 성인이 되기까지 단 1년 앞둔 큰딸대신 아홉 살의 막내딸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표현을 했으며 어머니가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상 막내딸이 어머니의 망상에 비교적 덜 노출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큰딸과의 나이차를 생각한다면 자매로서의 사회 통념적인 역할이 서로 뒤바뀌었거나 아예 무너져버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어쩌면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일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거짓을 진실이라 믿으면 진실이 되고 진실을 거짓이라 믿으면 거짓이 되며, 그 믿음이 외부의 간섭 없이 지속된다면 칼을 대고 약을 쓰지 않는 이상 고칠 수 없는 신체적인 질환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닐까. 정신적인 요인이 뇌에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 뇌는 신체적인 이상을 보이며 난치성의 신체적 정신질환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그들은 위중해 보였고, 쉽사리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긴급출동SOS24’ 제작진과 관계기관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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