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경제학이 시장 뿐 아니라 사회전반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학문임을 유의하기 바란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는데 '공공선택학파'의 '합리적 무시 이론'이 가장 적절할 듯 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선택학파'(Public Choice School)는 '신제도학파'에 기원을 두고 있다. '신제도학파'는 시장 뿐 아니라 법이나 전통, 관습과 같은 제도가 각국의 경제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주장했다. '공공선택학파'는 이 주장을 이어받아 정치나 사회의 영역에서도 시장에서처럼 이기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 진다고 보았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당선'이란 목적을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대기업과 같은 특수집단과 정경유착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예로 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합리적 무시' 이론이란 어떤 것일까? 사실 '합리적 무시' 이론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우유회사들이 '담합'과 정치권에 대한 '로비'를 통해 우유값을 100원 올렸다고 가정해보자. 우유가 만약 전국적으로 10만개 팔린다면 우유회사들은 단 100원의 인상으로 1,000만 원을 더 벌어들이는 셈이니 수지맞는 장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100원이 올랐다고 그 동안 계속 마시던 우유를 그만 마실 리 없다. 대부분은 왜 가격이 올랐냐고 투덜거리지만, 곧 그 가격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부당한 우유값 인상으로 우유회사가 1,000만원이나 되는 돈을 착복했는데 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인상된 가격을 받아들일까? 먼저,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왜 우유값이 100원이 올랐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더욱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 그리고 노력을 써야 한다. 게다가 분명 정보를 얻기 위해 쏟아야 하는 비용은 100원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우유회사에 항의전화를 거는데만도 100원이 넘는 돈이 쓰일테니 말이다. 이런 판국이니 진실폭로를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은, 인상된 가격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이 큰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우유 소비자들은 우유회사들의 가격인상에 대해 '항의'하기보다는 '합리적 무시'를 하게 된다. 인터넷 여론의 영역은 '합리적 무시'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필자가 '한토마'에 PD수첩의 취재행태는 문제지만, 윤리 문제와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이 문제의 본질인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글을 쓴다고 하자. 아마 필자는 최대한 욕을 먹지 않기 위해 2~3시간을 들여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반말은 기본이고 욕설,모욕성 인신공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인터넷 여론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합리적 무시'를 하게 된다. 왜냐면, 괜시리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느니 '글방'에서 독자들에게 주장을 하는 것이나 오프라인에서 직접 사람들 만나면서 이야기하는게 시간과 노력이란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처럼 글방에 글을 쓰거나 오프라인에서 사람들 만나 토론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사람은, 설사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난자의 연구이용과 생명체 복제에 대해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저 마음 속에 묻고 있을 뿐이다. 괜히 리플 달았다가 욕이나 실컷 먹느니, 그냥 무관심한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터넷 공간에서 리플 하나 안 달았다고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건 아니기에 기분 나쁜채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한판 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는 오프라인에서 누군가 생명체 복제에 대한 반대 서명운동을 벌인다면, 기꺼이 서명에 동참할 것이다. 참 좋은 일 하신다고 격려의 말을 건네면서. 서명을 한다고 그 자신이 욕을 먹거나 인신공격 당할 일은 전혀 없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서명을 할 것이다. 이제 그의 자세는 '합리적 무시'에서 '합리적 참여'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왜 인터넷 여론이 사회 전반의 현실 여론이 되지 못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인터넷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여론조작에 대한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필자가 돈이 많아져서 100명에게 하루에 10만원씩 일당을 주고 한 명당 글을 100개씩 올리게 한다면, 필자 한 사람의 의지로 인터넷 게시판은 하루에 무려 1만개의 글로 도배되게 되는 것이다. 혹은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떤 단체가 100명의 조직원에게 하루 100개의 글을 쓰도록 한다면, 그것 참 골치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미 각 극우 단체들에서 누차에 걸쳐 '강력한 인터넷 투쟁'을 선포한 것을 알고 있다. 극우 단체 뿐 아니라 정치단체의 집단적 인터넷 개입은 항상 인터넷 여론 조작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인터넷을 접하고 사는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물론 필자는 지금 안티 PD수첩 여론에 인위적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증이 없으므로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이 앞으로 아예 벌어지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살인미군 처벌을 위한 촛불시위와 탄핵반대 시위를 거치면서 네티즌 여론의 보수편향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하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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