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6 17:19
수정 : 2005.12.07 10:14
<한겨레>가 “문화방송 ‘피디수첩’ 보도 옹호 황우석 깎아내리기에 동조했다”고 비판
김대중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나’
6일치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보통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보고 내가 11월26일치 1면에 쓴 기사가 혹시 잘못됐나 몇 차례나 다시 읽어봐야 했다. 김 고문은 이 칼럼에서 <한겨레>가 “문화방송 ‘피디수첩’ 보도를 옹호하고 나아가 황우석 깎아내리기에 동조했다”고 비판했다. 그 근거로 “<한겨레>가 문화방송의 사과가 있기 전 ‘피디수첩의 내용이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됐다’며 피디수첩에 대한 공격을 마녀사냥식 공격으로 못 박았다”고 했다.
‘피디수첩’이 지난달 22일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연구원 난자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뒤 황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보도내용이 사실임을 밝혔다. 당시 모든 언론사가 이 내용을 보도했고, <조선일보> 역시 윤리 논란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하는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이에 앞서 11월21일치 사설에서는 “연구에 쓰인 난자의 제공자들에게 보상금을 준 사실이 드러난 것은 커다란 타격”이라며 연구 과정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피디수첩’보다 앞서 윤리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겨레>가 ‘사실로 확인됐다’고 한 피디수첩의 보도 내용은 황 교수도 인정한 윤리문제였다. 또 <한겨레>가 비판한 것은 황 교수의 업적이 아니라 일부 누리꾼들의 비이성적인 대응이었다.
김 고문은 97년 자신의 칼럼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 가운데 ‘인민주의자(populist)’를 ‘인기주의자’로, ‘김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는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를 ‘김대중 경제정책이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등으로 오독해 인용해서 입길에 오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본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한겨레> 사회부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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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보통 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
‘황우석과 MBC PD수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상한 현상을 목도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좌파 매체와 좌파 성향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MBC PD수첩의 보도를 옹호하거나 더 나아가 ‘황우석 깎아내리기’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한겨레신문은 MBC의 사과가 있기 전 “PD수첩의 보도 내용은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며 PD수첩에 대한 비판을 ‘마녀사냥식 공격’으로 못박고 황 교수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매국(賣國)’ 행위로 몰아간다고 비판했다. 이것을 보고 ‘반가운 기사’라며 “막상 MBC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고 댓글을 단 노무현 대통령도 같은 줄에 섰다.
오마이뉴스의 한 기자는 “그동안 은폐를 위해 거짓말을 거듭해야 했던 황 박사”를 비난하면서 “아직도 철저하게 개발독재 논리에 젖어 있는 우리는 진정 민주화되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태를 ‘광신적 민족주의’와 ‘결과 만능주의’의 결합이라고 극언한 기사도 있다. 민노당의 한 간부는 “PD수첩은 잘못한 것이 없고 시의적절한 프로였다”며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을 ‘양계장의 닭’에 비유했다.
서프라이즈도, 프레시안도 황 교수팀의 연구 업적을 비난하며 PD수첩을 옹호했다. 지난 1일 열린, 민언련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도 ‘국익을 내세워 진실에 침묵하는 기이한 현상’ ‘기자정신의 패러다임마저도 변질’ ‘PD수첩의 보도는 지극히 정당했고 뒤늦게나마 윤리 문제를 제대로 보도’ 등 PD수첩 옹호로 일관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당혹스러워했다―“도대체 MBC가 저렇게 황 교수를 깎아내려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모처럼 세계적 과학자로 발돋움하는 황 교수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이 그렇게도 못마땅하단 말인가?” “연구 성과 자체가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면 당연히 규탄돼야 하지만 과정상의 실수나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을 교정하는 선에서 지적하는 애정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가?”
....(중략)...
황 교수에 대해 작은 애정을 지닌 대다수 보통사람(네티즌)들은 어쩌면 지난번 선거에서 개발독재와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이 정권을 탄생시킨 주역들인지도 모른다. PD수첩이 협박 수단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황 교수 연구 업적을 깎아내리려는 것에 분노하는 ‘보통마음’들은 한국의 축구에서 자존심을 되찾으려 광화문을 물들였던 ‘붉은 악마’들의 바로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국익’이란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의지와 노력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어떤 결과에 대한 배타적 손익계산이 아니지 않겠는가. 이들은 이제 ‘보통사람 깎아내리기’까지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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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김대중 칼럼이 오독한 <한겨레> 11월26일자 1면 보도이다. 이 기사는 불법으로 매매된 난자와 연구원의 난자가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것이 문제가 되어 황우석 교수가 이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한 직후의 상황에서의 작성된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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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1월26일자 기사
<피디수첩>에 사이버 뭇매…‘일그러진 애국주의’ 번진다
광고 기업 불매운동에 PD 가족사진 공개도…“국익도 중요하지만 이성적 토론 고민해야”
황우석 교수팀의 윤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비이성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22일 황 교수팀의 난자 채취 문제 등을 보도했던 <피디수첩>에 대해 마녀사냥식 공격을 가하고 나섰다. 또 황 교수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을 ‘매국’ 행위로 몰아가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언론학자 등 전문가들은 사회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려면 비이성적·감정적 애국주의에 빠지지 말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성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24일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통해 <피디수첩>의 보도내용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많은 누리꾼들은 이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보내는 업체들의 명단과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올려 ‘불매운동’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각 업체들에 항의전화 등이 빗발쳐, 25일 이 프로그램의 12개 광고주 가운데 11개 광고주가 광고 중지를 요청했다.
누리꾼들은 또 인터넷에 이 프로그램 담당인 ㅎ아무개 프로듀서의 가족 사진을 공개하고 “가족들을 다 죽여라”는 등의 글들을 올렸다. 이로 인해 이 프로듀서 가족들은 바깥 출입도 하지 못하고 있다. 황 교수와 관련해 윤리 문제를 제기했던 민주노동당 게시판에도 이날 오후 현재 200건 이상의 비난 글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누리꾼들이 익명성에 기대 감정적 민족주의를 분출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황 교수 연구의 공과를 신중하게 따지지 못하는 언론의 태도가 이런 과격한 반응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엔지오학과 교수는 “누리꾼들의 반응이 사안의 실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안을 보도한 특정 방송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공격하면서 감정적인 민족주의를 배설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사이버상의 익명성을 이용해 여론몰이에 동조하기보다는 사실과 의견을 정확히 분리해서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애초 언론이 황우석 교수의 난자에 대한 의혹을 전혀 다루지 않고 찬양 일색으로 ‘황우석 신드롬’만 키운 것이 문제”라며 “국민들이 <피디수첩>에 대해 보이는 맹목적이고 국수적인 반응의 책임은 결국 일차적으로 언론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한국언론정보학회장)는 “<피디수첩> 보도는 언론의 책무인 비판기능에 따라 당연히 보도했어야 할 사안으로 본다”며 “지금 당장은 비판이 쏟아지지만 멀리 보면 황 교수 연구에 건강성을 보태는 계기가 될 것이며,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막연한 국익 논쟁보다는 윤리 문제와 여성의 건강권 등 중요한 사안에 대해 차분히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척수를 다쳐 장애인이 된 김종배(미국 피츠버그대 재활기술학과 연구원) 박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줄기세포연구로 큰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척수손상인’이라고 밝히고 “개인적으로는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지만, 인권과 윤리 문제를 무시하고 무조건 난자를 기증하자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분명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선희 정혁준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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