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없는 임기웅변이 위기 부채질”
드라마·보도·예능 등 전방위적 문제 노출“악습 끊고, 밑바닥에서 시작하자” 내부 목소리 지난 2일은 <문화방송> 44돌이었다. 그러나 축하 분위기는커녕 초상집 분위기였다. 올 들어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문을 여섯 차례 발표한 데 이어 어제는 ‘피디수첩’ 취재윤리 위반으로 또 한차례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최문순 사장 취임 이후 9개월 내내 거론돼온 위기감이 최근 극에 달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프로그램들의 부진이다. 고소영과 비를 주연으로 쓰려던 드라마 ‘못된 사랑’이 불발됐고, 문근영을 문화방송의 ‘잔 다르크’로 기용하겠다던 원대한 계획도 좌절됐다. 또 인정옥 작가와 표민수 피디, 고현정을 내세운 드라마 ‘내가 나빴다’의 방영 계획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의 알몸 노출 실수도 문제가 적지 않았다. 이 밖의 드라마들도 시청률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조기종영이 줄을 잇고 있다. 보도국은 올초 구치백 파문으로 시작해, 안기부 엑스파일 보도 문제로 홍역을 치른 뒤 간부들의 브로커 홍씨 비리 연루로 해고되는 일까지 빚었다. 예능국도 문제가 많았다. 상주참사를 막지 못한 도의적 책임을 비롯해 신설과 폐지를 거듭하며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는 예능오락 프로그램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듯 보인다. 인사의 난맥상도 엿보인다. 드라마국장과 예능국장을 교체하고, 제작본부장을 특임이사로, 부사장을 제작본부장 겸임으로 배치한 인사에, 어떤 원칙이 있는지 의문이다. 문화방송 자회사인 ‘엠비시 프로덕션’의 국외사업권 회수 조처와 제작·유통 분리안도 충분한 논의와 협의 없이 돌출돼, 파열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결과는 11월 광고 수주액 집계에서 <에스비에스>보다 30억원 적은 433억원이라는 수치로 나왔다. 주간 시청률 집계에서 20위에 드는 프로그램이 ‘꼭 한번 만나고 싶다’ 하나밖에 없는 등 경쟁력 상실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 문제는 장기전략과 철학의 부재라는 지적이 많다. 과거 광고주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리미엄 채널이라는 이미지에 기대어, 문화방송 스스로 뿌리 깊은 위기의 원인에 대한 해법보다는 임기응변에 매달리며 좌충우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방송의 한 피디는 “간부들의 보신주의적 행태가 문화방송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며 “과거의 오만과 자부심을 모두 버리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직원은 “위기의 직접 원인은 프로그램 경쟁력의 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과거의 악습을 반복하며 제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간부들의 고질적 행태가 더욱 깊은 문제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위기돌파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여러 악재 속에서도 효자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굳세어라 금순아’의 성공뿐 아니라, ‘대장금’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일으킨 한류 바람 등은 문화방송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또한 예능 부문에서도 ‘!느낌표’는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까지 충실히 맡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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